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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폭피해자의 일본 히바쿠샤(被爆者)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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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오은정

Advisor
황익주
Major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Issue Date
2013-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한국원폭피해자사회적 고통일본 원폭피해자 구호정책히바쿠샤(被爆者) 범주의 경계과학정치관료제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류학과, 2013. 8. 황익주.
Abstract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한 전체 피폭인구의 약 10%에 달한다고 보고되는 조선인 원폭피해자들은, GHQ(연합군사령부)의 전후 재일조선인 귀환 정책에 따라 원폭의 급성기 장해에 대한 치료도 끝나지 않은 1945년 늦가을과 초겨울에 집중적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현 한국원폭협회의 전신인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가 결성됐다. 그러나 핵의 피해자로서 내 몸을 변상하라는 이들의 호소는 유일피폭국 일본에서도, 원폭으로 해방을 맞은 자국에서도, 그리고 조금 더 일찍 전쟁을 끝냄으로써 더 큰 희생을 막았다는 입장을 표명해온 미국에서도 외면되어 왔다. 하지만 오랜 사회적 망각과 정치적 배제 속에서도 자신들의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투쟁의 한 결과로서 오늘날 한국원폭피해자들은 일본의 국내법인 원폭원호법에 근거해, 피폭자건강수첩을 받은 히바쿠샤(被爆者)라면 누구라도 일본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피폭자건강수당 등을 지급 받을 수 있는 독특한 관계 및 지위에 놓이게 되었다.
본 연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을 경험하고 한국으로 귀환한 이들이 일본의 원폭피해자구호정책에서 상정하는 히바쿠샤의 범주로 편입되는 과정을 역사인류학적 시각에 바탕 해 재구성한 민족지적 사례연구다. 또한 이는 일본과 한국에서 이루어진 현지조사, 한국의 각지에 거주하는 원폭생존자들과의 생애사 인터뷰, 그리고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보관중인 호적과 문서기록 조사에 기초해 수행되었다. 이를 통해 본 논문에서는 우선, 통시적으로는 일본의 원폭피해자구호정책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한국원폭피해자들은 어떻게 일본의 원폭피해자구호정책의 장에서 상정하는 히바쿠샤의 범주 속에 편입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는지를 검토했다. 나아가, 공시적으로는 오늘날 한국원폭피해자들이 소위 피폭자건강수첩을 교부 받아 히바쿠샤가 되면서 겪게 되는 경험과 그 의미를 관료제적 경계 통제라는 측면에서 고찰했다.
논문의 전반부에서는 일본 원폭피해자구호정책의 제도화 과정에서 과학과 정치, 그리고 관료제가 상호 작동하는 방식과 그 실행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일본 원폭피해자구호 정책의 제도화 과정에서 히바쿠샤 범주의 경계가 구성되어온 과정은 피폭의 건강영향에 대한 과학적의학적 연구들에 의해 기초가 마련되고, 일본의 국내외적 정치의 장에서는 과거의 제국 일본이 수행한 전쟁과 식민 지배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전후(戰後) 과거 피식민자들의 원폭피해에 대한 보상요구에 대해서 히바쿠샤의 자격은 일본국의 영토적 경계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에게는 부여되지 않는다는 이른바 시정권(施政權)의 논리를 들어 배제시키고, 자국 원폭피해자들의 원호 확대 요구에 대해서는 원자폭탄의 피해가 전쟁으로 인한 '일반의 피해'와 구분되는 '특수한 피해'인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수인론(受忍論)과 균형론(均衡論)을 내세웠다. 이는 원폭피해자에 대한 구호정책이 과거 일본국이 수행한 전쟁이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그 피해를 초래한 원인도 주체도 명시하지 않은 오직 원자폭탄에 의한 생물학적 손상에 대한 보상에 한정되는, 일종의 생물학적 시민권(biological citizenship)으로서 틀 지워짐을 의미했다.
그런데 일본의 원폭피해자구호정책의 장에서 히바쿠샤 구호의 문제가 각종 생의학적 지식들로 구성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피폭자건강수첩을 교부하는 히바쿠샤 인증의 관료제적 통제 과정에서는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기록과 기억 등과 같은 요소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피폭자건강수첩의 교부를 받은 자라고 정의된 히바쿠샤의 법적 규정은 히바쿠샤라는 용어가 단순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를 지칭하는 한 차별화된 이름이나 생물학적 상태에 대한 규정에 그치지 않으며, 국가로부터 인증 받은 공식적 자격을 부여하는 관료제적 실천 속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일본 원폭피해자구호정책에서 히바쿠샤의 범주가 과학과 정치 그리고 관료제적 상호작용을 통해 상징적이면서도 물질적인 기반을 갖는 경계로서 구축되었음을 나타낸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한국원폭피해자 운동의 역사와 이들이 일본 원폭피해자원호정책의 장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관료제적 통제의 경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한국원폭피해자들의 보상 요구가 한일회담 과정에서 배제된 이후 한국원폭피해자로 결집하게 되는 정치사회적 배경과 과정을 검토했다. 나아가, 이들이 자신들의 구호에 대한 책임을 한국 정부가 아니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요구하게 되고,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국가 간 보상의 형태가 아닌 일본 국내법인 원폭원호법의 초국경적 적용을 운동의 목표로 상정해 나가게 된 과정을 조명했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는 이 연구가 한국원폭피해자들의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들이 간과해왔던 몇 가지 측면에 주의를 기울였다. 우선, 소송의 결과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연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과 담론의 차원에서 이들을 조명하는 연구들이 간과해온 한국원폭피해자들의 역사적 경험을 피폭의 시점이나 피해자화(victimization)하는 관점에 고정시키지 않고, 이들의 경험이 탈식민 이후 미소냉전체제가 자리 잡기 시작한 한반도의 상황 속에서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군사정권, 탈냉전 등 한국의 격동적인 근현대사 흐름 속에서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들이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연결되는 과정 또한 외교적·정치적·법적 차원의 보상 책임과 요구에 대한 응대로만 해석하지 않고, 이들이 해방 이전부터 축적해온 사회문화적 요소들 속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피폭자건강수첩의 교부 과정은 한국원폭피해자들의 역사적 경험이 관료제적 통제 과정 속에서 심사되는 과정이기도 한데, 본 연구에서는 이를 한국원폭피해자들과의 생애사 인터뷰를 통해 얻은 구술자료를 통해 과거 식민자와의 재회라는 맥락에서 드러내고자 했다.
한편 본 연구는 일본 원폭피해자구호정책에서 히바쿠샤의 경계가 설정되고 통제되는 과정에 있어 기존의 사회과학 연구에서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문서를 매개로한 관료제적 실행과 그 효과에 주목했으며 한국원폭피해자들이 피폭자건강수첩을 교부받는 과정에 이르는 사회문화적 맥락들도 조명했다. 한국원폭피해자의 피폭자건강수첩 교부 과정은 일본의 원폭피해자구호정책이 원폭의 피해를 입은 이들을 구제한다는 목표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료제적 실행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원폭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었을 이들에게 가장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며, 결과적으로 피해자 구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러한 관료제적 실행의 문턱 효과는 자국 정부가 구호의 주체로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원폭피해자들의 자조(自助)적 구호 및 투쟁단체로 활동해온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회원 통제 방식과 맞물리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시공간에 대한 감각이나 원폭피해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지 않은 이들, 그리고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연줄망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이들인 고아, 강제 동원된 징용·징병자, 여성 원폭피해자들에게 가장 높게 경험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는 한국원폭피해자의 역사를 일본 원폭피해자구호정책의 장과의 연결 속에서 분석하는데 있어 위와 같이 특정한 범주의 외연으로서 '경계'라는 개념을 채택하면서, 한편으로는 과학과 정치, 그리고 관료제적 상호 작용 속에서 '경계'가 구성되는 역사적인 차원을 조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계가 특정한 형태로 본질화되고 자연화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일본 정부는 피폭자건강수첩의 교부자로서 문서와 기록, 그리고 기억의 진술을 통해 피폭의 여부를 판단해 히바쿠샤의 자격을 인증하는 유일한 독점적 권위를 가진 심사자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히바쿠샤의 범주적 경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그 지위를 완전하게 누리지는 못했다. 일본의 원폭3법에서 피폭자건강수첩을 교부받은 자라고 규정된 히바쿠샤의 경계가 피폭에 대한 과학 연구의 미완결성과 행정관료제적 통제 과정에서의 기록과 기억의 상호구속과 간섭, 그리고 과거의 피식민자이자 국경 밖의 재외국인피폭자들이었던 한국원폭피해자들의 물리적이자 상징적인 월경 행위에 의해 지속적으로 침식되고 변형되어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러한 침식과 변형은 부분적이고 한정적이다. 정책의 형성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특정한 형태의 범주는, 그 범주를 규정하는 경계가 갖는 구성적이고 투수(透水)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법적·행정적 실행과 관료제적 실천 속에서 굴절되고 변형되어 고체화된 형태로 구조화되어 간다.
When Enola Gay dropped "Little Boy" and "Fat Man" which were targeted at Hiroshima and Nagasaki, almost 10 percent of casualties were ethnic Koreans who had migrated for a living or who had been forced to migrate under the Japanese colonial Empire's wartime mobilization. According to the General Headquarter(GHQ)'s Repatriation Policy of non-Japanese from Japan, tens of thousands of Korean atomic bomb survivors hastily returned to their "motherland", Korea, without any appropriate treatments. There was no medical support system for them under the turbulent period of post-colonial/post-war Korea. It was 20 years later from their returning home that the Korean Atomic Bomb Victim's Association was founded in South Korea as a social organization for their own relief and the political action with the aim of getting compensation from not only the Japanese government but also Korean and the US government. In the divided peninsula, a key site of the Far-east Asia's Cold War politics, however, their voices had been intentionally and unintentionally silenced due to both military dictatorship's suppression and social ignorance. Nevertheless, their desperate struggles continued through Japanese civic groups' supports and solidarities. After several decades of legal proceedings in Japan, they can have financial supports from Japanese government if they get a Hibakusha Tetchou (被爆者手帖) which is a certificate recognizing a person as was exposed to the bombs. It, however, is not post-colonial/post-war compensation but a Japanese domestic support law's application beyond border.
As a historical and ethnographical case study of Korean atomic bomb survivors, this article intends to examine the history of Korean atomic bomb survivors focusing on the involvement with Japanese Hibakusha support policy. I conducted ethnographic fieldwork in Japan and Korea, in-depth interviews of more than 60 Korean survivors using a oral life history method, and analysed the archival documents of family records kept in the Korean Atomic Bomb Victim's Association that have more than 2,600 members of survivors.
In the first part of the article, this study identifies the relations and interplays of science, politics, and bureaucracy that are key factors to form a legal boundary of Hibakusha in Japan. Being based on various scientific and medical researches, the boundary was bureaucratically determined by political justification for unbalanced post-war compensation and by strong administrative rules. The historical process that constitutes Japanese Hibakusha support policy shapes structures of the legal and bureaucratic boundaries of Hibakusha specifically, which involves a territorial boundary and connotes symbolic and political meaning
In the second part, from the historical aspects this article presents how and why Korean atomic bomb survivors in South Korea become Japanese Hibakushas. A Korean survivor who wants to be supported needs to get a Hibakusha Tetchou from Japanese government, which requires complicate paperworks of official documents and/or verifiable memories. This study demonstrates Korean survivors' ambivalent emotion aroused by facing the former colonist nation.
Finally, by emphasizing on the sociocultural embeddedness, especially in the aspects of human networks based on family and local community, this study argues that the exclusion in the Japanese Hibakusha support policy occurs at the level of both bureaucratic red tape and sociocultural practices of the Korean survivors' bureaucratic encounters. The administrative procedures have more exclusive effects for socioculturally weak and alienated survivors such as orphans, forced draftees, and women isolated from the family network.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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