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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러의 칸트 윤리학 이해에 대한 비판적 연구 : A Critical Study of Scheler's Understanding of the Ethics of 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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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정대성

Advisor
박찬구
Major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칸트 윤리학형식실질이성의무사회윤리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윤리교육과, 2014. 2. 박찬구.
Abstract
윤리학은 삶의 근본적 의미를 묻고, 도덕규범의 근거를 탐구한다. 그러나 학문의 지나친 세분화와 학파 사이의 갈등은 윤리학의 중요성을 반감시킨다. 이에 윤리학과 서로 다른 학문 사이의 통섭이, 그리고 그에 선행하는 윤리학 내부의 통섭이 요구된다. 본 연구는 칸트(Immanuel Kant)와 셸러(Max Scheler)의 윤리학 상호간 논박을 다루면서 통섭-변증법적 통일- 가능성을 모색한다. 셸러는 칸트 윤리학을 혹평하면서, 실질적 가치윤리학과 인격주의 윤리학의 건립을 주창한다. 본 연구는 셸러의 칸트 윤리학에 대한 비평이 과연 칸트 사상의 분명한 이해로부터 전개되는지 비판한다.
칸트의 윤리학이 공허하고 결실이 없는 형식주의라는 셸러의 비평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부당하다. 첫째, 형식은 칸트 사상 전반의 중추 개념으로, 인간 존재양식의 보편적, 본질적 구조이다. 둘째, 실천이성은 보편화 가능성 검사를 통해 비도덕적 준칙이 상실케 하는 도덕성의 실질을 파악할 수 있다. 셋째, 셸러의 윤리학에도 -가치의 위계가 일종의 형식이며, 도덕적 선을 감정의 지향 방향으로만 규정하므로- 형식이 핵심적 구조로 드러난다. 셸러의 주장과는 달리, 가치의 위계서열은 가치의 적용범위나 중요성을 분별하는 주체인 이성의 주재를 전제할 때 객관성이 견지된다. 형식은 실천이성의 활동으로 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고, 덕(德)을 상론하므로, 칸트 윤리학은 실천적이다.
셸러는 칸트의 정언명법이 모든 경험에 타당한 도덕의 인식론적 원리로서 너무 장황하다고 비평한다. 그러나 정언명법은 도덕의 근거를 도덕형이상학에 의해 도덕의 기초를 세우는 과정에서 밝힌 도덕원리로서, 준칙을 비판할 수 있는 준거이다.
셸러는 칸트 윤리학이 도덕성을 합법칙성으로만 이해한다고 비평하지만, 칸트 윤리학에서 선은 순수한 실천이성의 열망 대상으로, 덕은 의무이자 목적인 것으로 논구된다. 셸러는, 정언명법이 가치 갈등 사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고, 실질적 가치들에 동일한 서열을 부여하며, 결과를 결정하는 유일한 가치는 합법칙성일 뿐이라면서 정언명법이 빈약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은 다음의 근거로 비판된다. 첫째, 칸트 윤리학에서 가치와 목적은 서로 치환 가능한 개념이고, 칸트에게 윤리학은 목적의 체계로 규정되며, 의지의 도덕성을 다루기 위한 개념인 준칙에 행위자의 실질적 목적이 반영된다. 둘째, 합법칙성은 최고의 서열을 지닌 실질적 가치가 아니라, 이성이 가치들을 목적으로 통합하여 의지를 형성할 때 도덕적 견지에서 준수해야 할 형식적 조건이다. 셋째, 칸트 윤리학은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로 가치의 위계를 구분한다. 넷째, 정언명법을 정초하는 이성은 자유의 근거이며 타산적 합리성과 구별된다.
실질적 가치가 윤리학을 타락시킬 것이라고 칸트가 암시한다는 이유로, 셸러는 칸트 윤리학이 감정에 의해 파악되는 비형식적이고 실질적인 가치를 모두 폐기함으로써 실질적 윤리학의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비평한다. 그러나 칸트는 실천이성이 아닌 감성에 의해 실질적 가치가 목적이 될 때 도덕적 자유가 훼손될 수 있음을 지적할 뿐, 순수한 실천이성에 의해 실질적 목적이 수립될 수 있음을 밝힌다. 그는 순수한 이성의 목적에 해당할 경우 도덕성(Moralität)을, 감성의 목적으로서 타인의 자유와 조화를 이룰 때 합법성(Legalität)을 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가치에 주목하지 못하여 공허하다는 셸러의 비평과는 달리, 칸트 윤리학은 하나의 가치론으로 해석될 수 있을 정도로 가치와 관련하여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한다. 셸러의 비평과는 달리 경향성의 대상이 아닌 목적이나 가치를 근거로 윤리학을 수립할 가능성을 칸트는 보여준다. 즉 칸트 윤리학에서 덕은 목적이면서 동시에 의무인데, 목적은 가치를 내포하고, 의무는 경향성을 규제한다.
셸러의 비평과는 달리, 칸트는 쾌락과 감정을 반대하거나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덕의 근거로 적합하지 않음을 말할 뿐이다. 전(前)비판기에는 칸트도 도덕적 감정을 윤리학에서 중요한 요소로 다룬다. 그러나 감정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속성 때문에 도덕의 객관성과 항상성을 보장하기 어렵고, 도덕성은 도덕법칙에 부합한 동기에 달려있다는 근거에서, 도덕적 감정은 이성이 도덕법칙을 따를 때 수반되는 현상으로 규정된다.
칸트는 인식이 경험과 이성의 한계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는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객관에 대한 주관의 인식 한계가 주관의 특성에 기인함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선험적 요소의 규명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하며, 윤리학에 있어서도 도덕의 현상을 가능케 하는 선험적 요소에 대한 규명에 주력한다. 그리하여 그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윤리학을 수립하려 한다. 존재론이나 인식론 차원에서 주관적 관념론으로 분류될 수 있는 칸트의 철학은 객관적이고 명증적인 도덕의 정립에 도달한다. 셸러는 법칙을 수립하는 이성의 역할을 부정하고 판단중지와 본질직관이라는 현상학의 방법으로 객관적 사태가 주관의 의식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따라서 그는 도덕의 체계 정립에 있어서 사태에 대한 직관과, 그 해석에 있어서 심오한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과연 보편성과 필연성을 위한 비판의식을 견지하는지 의구심이 남는다. 이와 관련하여 셸러의 가치 윤리학은 철학사적 관점에서 칸트의 윤리학보다 더 객관적이지는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랑과 공감의 보조적 의의를 인정하고 실천이성에 따른 겸허한 심정을 주장하므로, 셸러의 비평과는 달리, 칸트 윤리학은 감정이나 심정을 무의미하게 여기지 않는다. 칸트 윤리학에서 도덕이 의욕의 실질적 대상이 아니라 의무로서만 다뤄진다고 셸러는 비평한다. 그러나 칸트 윤리학은 의욕의 주체가 순수한 이성일 때 도덕성이 보장될 수 있음을 지적할 뿐, 의욕의 실질적 속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셸러의 비평과는 달리, 칸트 윤리학에서 경험이 도덕의 영역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의지의 도덕적 규제를 위한 단초가 경험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고, 경험은 도덕법칙의 적용과 도덕의 교육을 위한 판단력을 연마해주기 때문이다. 이성은 가치에 대해 맹목이어서 목적과 수단을 설정하기 어려운데도 실천이성이 쉽게 해낼 것으로 단정한다고 셸러는 비평한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감각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성을 의식하여 초월적 자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능동적으로 목적을 통합하고 수단을 개발할 수 있다.
비합리주의자로서 셸러에게 본래적 인간은 생명과 정신의 중심으로서, 감정적으로 가치를 감지하고 지향하는 전인적 인격이다. 합리주의자로서 칸트에게 본래적 인간은 법칙의 표상에 따라 경향성을 초월하고 목적을 통합할 수 있는 실천이성 즉 예지적 자아이다. 그런데 이성을 도덕의 주체로 규정하지 않으면 도덕의 객관성이나 보편성, 항상성을 보장할 수 없다. 이성은 현실의 총체적 인식 위에서 실천 의지를 형성하는 능동적, 초월적 주재자로서, 감정과 정서, 의욕을 의식할 수 있다. 따라서 칸트 윤리학이 이법의 지배에 의한 타율이라는 셸러의 비평은 부당하다.
셸러의 비평에 따르면 칸트 윤리학의 실천이성은 인격의 윤리적 통찰과 의욕의 자율을 정초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언명법으로 검토되어 도덕성을 획득한 준칙은 자발성과 도덕적 판단을 내포하므로 의욕과 통찰의 자율을 보장한다. 셸러의 비평에 따르면 칸트 윤리학의 이성은 감정과 인간성을 배제하고 사유주체의 일반적 속성만을 지니므로 이성으로부터 기계적 반복성 이외에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완성과 타인 행복의 추구를 덕으로 규정하는 칸트 윤리학이 감정과 인간성을 배제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실천이성이 도덕적 준칙의 규정 범위 내에서 행위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의 기계적 반복성은 부정된다. 칸트처럼 인격을 실천이성으로 간주하게 되면, 행위의 필연적 동일성이 나타날 것이라고 셸러는 비평한다. 그러나 이 비평은 이성의 본질이 자유여서 인과적 필연성을 초월한다는 칸트의 주장을 간과하고 있으며, 실천이성을 수학적·자연과학적 이성(지성)으로만 오인하는 데 기인한다. 칸트 윤리학에서 이성적 질서에 들어설 때 가능한 자유는 현상계의 인과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주체의 현상 초월적이고 창조적인 속성이다.
실천이성이 자유로운 도덕적 실천을 위해 주어진다고 규정하는 점에서 칸트 윤리학은 선을 향한 의식의 지향적 성격을 드러낸다. 칸트의 사상은 도덕법칙을 선험적으로 함의하는 실천이성의 초월적 토대를 해명하기 때문에, 칸트 윤리학의 이성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셸러의 비평은 거부된다. 이성은 자유를 가능케 하는 선험적 통일이므로 셸러의 비평과는 달리 노예적 복종의 가능성은 불식된다.
인격의 선험적 속성은 셸러의 주장과는 달리, 칸트와 셸러의 공통적 사상 지평이다. 셸러는 현상학적 방법에 의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인격의 선험적 속성을 직관한다. 반면 칸트는 이성이 도덕법칙을 따를 때 자연 필연적 인과성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의 가능성이 나타남을 지적하면서 실천이성(인격)의 선험적 속성을 옹호한다. 칸트 윤리학에 인격의 개체성과 구체성이 반영되지 못한다는 셸러의 비평은 준칙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준칙은 행위자의 실질적 행위 원칙으로서 삶의 태도와 주관적 지향을 내포할 수 있으므로 인격의 개체성과 구체성을 반영한다. 실천이성에는 감정적·의지적 측면이 결여되어 도덕의 주체로 부적합하므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인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셸러는 혹평한다. 그러나 이성의 주재로 도덕이 실천될 때에도 감정과 정서는 이성에 의식될 수 있으며, 실천적 측면에서 이성은 목적을 분별하고 통합하여 의지를 형성하는 능력이다.
칸트 윤리학은 도덕 원리를 정립할 때 사랑을 도외시하고 의무만으로 점철시킨다는 셸러의 비평은 다음의 근거로 부당하다. 첫째, 평범한 사람에게 도덕은 행복이라기보다는 의무로 느껴진다고 보는 편이 건전하고, 둘째, 의무라는 선별 기준이 없다면 비도덕적이거나 도덕과 무관한 목적을 비판할 수 없으며, 셋째, 의무는 인간적 제약 아래 드러나는 선의지의 표상이다. 도덕성은 도덕법칙의 표상에 따라 순수한 이성이 목적을 설정할 때 생기는 도덕적 동기에 달려있는데, 이때 도덕적 동기는 인간적 제약 때문에 의무로 드러나므로, 칸트 윤리학에서 의무를 강조한다. 의무는 순수한 이성이 규정하는 목적이므로 시간을 초월한다. 셸러의 가치 윤리학은 목적의 표상이 없는 의무를 아우를 수 없다는 점에서 칸트 윤리학을 대신할 수 없다.
의무가 도덕의 본질로 적합하지 않다는 셸러의 주장은, 실현하기가 더 어려울수록 서열이 높은 가치라는 자신의 설명으로 설득력을 잃는다. 왜냐하면 셸러의 설명은, 선의지가 인간적 제약에 의해 의무로 느껴진다는 칸트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셸러는 아름다운 마음에 의한 도덕이 의무에 의한 도덕보다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의 근거로 비판된다. 아름다운 마음은 의무감에 얽매이지 않는 선의지일 뿐, 도덕적 실천의 내용은 의무에 의한 실천과 다르지 않으며, 의무는 선의지가 인간적 제약 하에 인식되는 현저한 방식일 뿐, 선의지의 본질이 아니다. 칸트 윤리학의 의무가 가능을 내포한다.라는 명제에 셸러는 반대하면서 그것의 역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셸러는 칸트의 명제를, 이미 규정된 가능의 영역을 의무가 변경시킨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는 선험적 동기가 의지를 규정하는 경우를 예외로 하면서, 도덕의 영역을 인간의 의지 활동으로 변화가 생길 수 있는 범위로 한정하므로 이 해석은 오해이다. 한편 셸러는 도덕의 실천에서 의무보다는 가능을 앞세워야 이상적인 윤리학인데 칸트 윤리학은 이에 역행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언급은 도덕형이상학의 타당성을 부정할 수 없고, 도덕형이상학이 현실에 적용될 때 고려해야 할 경험적 인간학의 내용으로 포함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의무를 가능의 명제형식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의무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의 윤리학은 순수이성에 바탕을 두고 사랑과 공감에 의한 도덕 실천의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셸러는 비평한다. 그러나 칸트는 공감과 사랑이 도덕적 실천에서 수행하는 보조적 역할을 인정한다. 공감과 사랑은 가치와 목적의 인식을 도울 수 있다. 셸러는 사랑을 도덕의 궁극적 원리로 보고 있지만, 사랑은 수용된 가치에 대한 비판에 무능하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 한편 셸러에 있어서 더 높은 가치란 인식하는 주관에 대해 덜 상대적인 것을 의미하며, 사랑은 가치에 대한 시야를 확장시키는 활동성이다. 또한 칸트 윤리학에서 선의지는 주관의 욕구 능력의 충족과 무관하게 선한 의지로서 대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원천이다. 셸러 윤리학의 사랑 개념은 선험적 이성의 법칙성에 합치될 때에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선의지를 함의하지 않은 사랑은, 조건적으로 선한 것이므로 도덕성(합법칙성)이 아니라 합법성의 가능성만 함의한다.
셸러는 칸트의 윤리학이 개인의 사회 전반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비평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은, 한편으로 정언명법의 기능적 측면-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게 하며 이성적 공동선을 직관하게 하는-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 정언명법이 형성되는 칸트 사상의 전개과정에서 도덕의 근거로서 전비판기의 가상적 공동체와의 통합이 비판기의 동기의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부당하다. 칸트 윤리학에서 도덕성의 주체는 무제약적 실천이성이므로 도덕적 실천에서 개인적 측면이 우선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그는 국가를 하나의 인격으로 파악함으로써 공동체에 인격성이 부여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칸트는 온전한 자유의 실현을 위해 내적 자유의 차원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외적 자유의 문제로 나아간다. 외적 자유(외적 합법성)는 내적 자유(도덕성)를 가능케 하는 토대이며, 그 정당성을 위해 자연법(도덕성)에 의존해야 한다. 반면 실정법이 모두 자연법으로 채워진다면 이성의 자유를 박탈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실정법을 규제하되 구성하지 않는다. 칸트는 법의 도덕성을 논하고 있으므로, 사회 구조와 제도의 도덕성을 개선하려는 사회윤리의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셸러는 사회 문제에 대해 구성원의 책임이 연합될 수 있는 연대성이 인격에 내포됨을 주장하면서, 칸트 윤리학이 연대성(連帶性, Solidarität)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평한다. 그러나 칸트는, 이성적 존재로서 악으로부터 선으로 나아가려는 인류의 노력이 세계동포적인 연대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가 가능하기 위한 선험적 원리로서 구성원들의 상호 자유의 조화라는 통일된 의지를 제시한다. 통일된 의지는 개인적 의지의 자의성과 개별성을 규제한다. 통일된 의지는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정의, 나아가 세계평화 실현의 기초가 된다. 칸트 철학에서 공통감(共通感) 이론은 칸트 사상이 도덕의 개인적 지평에만 갇혀있지 않음을 보인다. 공통감은 표상에 대한 감정을 보편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며, 공동체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의사소통의 조건이다. 칸트의 연대성 개념-구성원 자유의 조화라는 통일된 의지-은 그가 제시하는 보조성 개념의 근거이다. 그는 국민의 보호와 사회적 약자 배려를 위해 국가에 책무를 부여함으로써 보조성 개념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 교육과 정치 이념에 관한 칸트의 시각에서도 사회 윤리적 관점이 드러난다. 교육은 실천이성의 자유, 즉 도덕성 향상이라는 공적인 목적에 봉사해야 하며, 정치 제도의 형식은 도덕성이 실현될 수 있는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미루어보건대 인류의 미래를 향한 염원으로서, 복지국가의 이상 실현을 위해 교과 내용에서 사회윤리 관련 내용이 증강되어야 한다.
셸러의 윤리학과 인간학은, 칸트 윤리학의 핵심인 도덕형이상학이 부당함을 증명하지 않으며, 도덕형이상학을 대체할 수 없다. 칸트 윤리학에 대한 셸러의 비평에 칸트 사상의 전체적 이해가 선행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셸러의 비평은, 인류 역사상 인간의 정신력을 집중적으로 발양하고 최고의 찬연한 문화를 보여준 이상주의 시대의 선구로서 칸트 사상의 위상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한다. 셸러의 현상학적 접근은 인간성의 탐구에서 현대 과학의 성과를 반영하면서도 자연주의적 접근방법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층적 본질을 탐구하고 실존적 구원을 지향한다. 그렇지만 그의 철학적 인간학과 심층심리학은 인간학의 일부로 규정된다. 셸러의 윤리학은 가치 시야의 확장에 기여하는 사랑의 활동성을 규명하였다. 그러나 의무에 합당하지 않는 사랑은 보편적인 도덕을 정초할 수 없다. 그의 종교현상학은 가톨릭 신앙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만년의 다신론 도입으로 아쉽게 무산된다. 칸트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이상적 종교상을 제시한다. 셸러의 인간학은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이 현실에 적용될 때 필요한 수단과 방법의 개발에 기여한다. 도덕의 본질을 인간의 초월적 본성으로부터 객관적인 법칙에 의거해 밝혀내는 학문이 도덕형이상학이고,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 필요한 것은 경험적 인간학이다. 그런데 시급한 것은,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도덕형이상학의 재건이다.
칸트 윤리학은 도덕과 도덕교육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에 도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줄 수 있다. 도덕의 교육과 실천의 어려움은 도덕적 실천으로 누리는 시간 초월적인 행복-경험적 원인에 기인하지 않는 도덕적 행복-을 감성적 자극으로 이용함으로써 경감되어야 한다. 그러나 행복은 도덕의 정언적 규범성을 대신하는 동기가 될 수 없다. 교사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편협할수록 도덕 수업의 감화력과 설득력은 낮아지므로 교사의 인간학적 소양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요청된다.
학생의 도덕성 고양을 위해 이성을 발휘하여 예지적 자유를 각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예지적 자아의 본질은 순수한 이성이므로 칸트 사상의 내용으로부터 이성의 활성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첫째, 이성에 의하여 인생의 유한성을 직관하고, 추구할 목적을 생각하게 하여 의식의 도덕적 각성을 도모할 수 있다. 둘째, 목적의 도덕성을 분별하는 능력인 이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언명법으로 삶의 태도를 반성하는 연습을 제시할 수 있다. 셋째, 최고의 통일 능력인 이성의 발휘를 위해, 행위의 목적을 도덕법칙에 통합시키는 사고 연습이 필요하다. 넷째, 이성의 시간 초월적 활동이 후회와 죄책감을 낳는 근거이므로, 후회와 죄책감의 기억을 상기시켜 이성에 민감하도록 할 수 있다. 다섯째, 이성에서 비롯되는 목적과, 이성 이외의 인간성에서 비롯되는 목적을 분별할 수 있도록 연습시켜야 한다. 그러면 목적의 근거에 따라 행위평가의 준거가 달라짐을 알게 할 수 있고, 이성의 고차원성을 체감(體感)시킬 수 있다. 법칙수립적, 합목적적, 유기적 이성은 도덕교육방법론-구성주의, 인격교육(덕교육), 공동체주의-을 규제하지, 구성하지 않는다. 도덕교육방법론은, 도덕의 궁극적 근거인 이성의 활동을 가능케 하는 근거이다.
교사의 가치관과 태도는 학생의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교사는 진실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자비심을 가지고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피교육자의 실천이성 각성과 자아실현의 노력을 위해 교육자에게 인격을 목적 자체로 대우하고 인간에 대하여 자비심을 가지는 태도가 요구된다.
도덕의 교육자, 즉 인간은 무제약적 이성의 체현자이어야 한다. 무제약적 이성의 체현자는 덕(인격)을 갖추고 공동체와 더불어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는 인간일 것이다. 분별력과 예지력 및 도덕법칙의 수립, 실천 능력으로서 이성은 삼라만상을 규제하지, 구성하지 않는다. 삼라만상은 이성의 활동을 가능케 하는 근거이다. 무제약적 이성은 도덕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며, 무제약적 이성의 탄생을 위한 최적의 산파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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