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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윤리학 연구 - 덕과 정념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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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재환
Advisor
김상환
Major
인문대학 철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데카르트윤리학정념관대함자유의지관대함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철학과 서양철학전공, 2017. 2. 김상환.
Abstract
데카르트는 그동안 윤리학과는 거리가 먼 형이상학자, 인식론자, 혹은 자연학자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윤리학만을 다룬 저작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윤리학에 관한 책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데카르트가 실천적인 문제에 무관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첫 출간저작인『방법서설』부터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보낸 편지, 크리스티나 여왕에게 보낸 편지, 샤뉘에게 보낸 편지를 거쳐 최후의 저작인『정념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윤리사상을 곳곳에 남겨놓았다. 물론 이처럼 데카르트가 여기저기에 자신의 윤리사상의 흔적을 남겨놓았다고 해도 자신의 ‘윤리학’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그 동안 데카르트 학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데카르트의 윤리학을 가능한 한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윤리학의 핵심 중의 하나는 최고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이다. 왜냐하면 최고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따라 삶에서 우리 행위의 옮고 그름, 목적과 수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최고선이 덕(의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덕은 “우리 행위의 목적으로 설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덕이 최고선이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은 데카르트 윤리학의 핵심이 바로 덕 개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실천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다. 데카르트에게 행복은 “정신의 완전한 만족과 내적인 충족”인데, 데카르트는 이렇게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최고선인 덕을 실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덕의 실천 자체가 우리 행위의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충분하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에게 덕은 무엇인가?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덕은 “우리의 이성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을 수행하려는 확고하고 지속적인 의지”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덕 개념은 데카르트 철학 내에서 매우 독특하다. 데카르트의 덕 개념을 해명하면 데카르트 철학에서 판단(또는 지성)과 의지와의 관계와 역할이 잘 드러날 것이다. 또한 데카르트 윤리학에서는 복수의 덕이 아니라 하나의 덕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개념과도 차별적이고, 행복이 최고선은 아니지만 최고선인 덕이 행복의 충분조건이라는 점에서 스토아 철학의 덕 개념과도 차이가 난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덕 개념은 1645년 이후 텍스트에서 주로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덕 개념을 포함하여 데카르트의 윤리 사상은 데카르트의 철학적 여정에서 이른바 데카르트 ‘후기 철학’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1636년 최초의 출간저작인『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임시도덕morale par provision’을 내어놓는다. 만약 데카르트가 이 ‘임시도덕’의 내용을 자신의 윤리 사상으로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면, 데카르트 윤리학은 데카르트 ‘후기 철학’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전기 철학’부터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임시도덕의 두 번째 준칙은 데카르트의 덕 개념과 일치한다. 또 세 번째 준칙은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과 의존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데카르트 윤리학의 핵심과 공명한다. 이를 통해서 데카르트의 ‘임시도덕’이 1645년 이후 데카르트가 제시한 윤리사상을 이미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데카르트 ‘후기 윤리학’의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 최후 저작인 ‘『정념론』의 윤리학’을 살펴봐야 한다. 데카르트는 1644년 이후 ‘정념passion’의 문제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관심으로 탄생한 책이 바로 최후의 저작이자, 데카르트의 저작 중에서 데카르트의 윤리 사상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정념론』이다. 데카르트가 정념의 문제에 몰두한 이유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충분조건이 덕인데 이 덕과 반대되고 따라서 덕을 실천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정념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게 덕은 의지를 잘 발휘하는 것인데, 그 의지는 우리에게만 속해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의지를 잘 발휘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념은 우리를 삶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만든다. 왜냐하면 정념에 휩쓸린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정념에 의해서 결정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위대한 영혼’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가장 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영혼이고, 따라서 어려움이 클수록 큰 만족감을 느끼는 영혼이다. 그런데 정념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이러한 정념을 극복할 때 큰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위대한 영혼’은 정념을 ‘정복maîtriser’하면서 자기 자신의 ‘주인maître’으로 남아있게 된다. 물론 ‘위대한 영혼’도 바깥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 사건은 통제하지 못하지만 그것들이 자신에게 일으키는 감정은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데카르트가 말하는 ‘『정념론』의 윤리학’은 정념의 통제, 혹은 ‘습관을 통한 재설정’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동물 정기와 나쁜 정념의 연결 관계를 우리의 의지를 통해서 바꿀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정념의 노예가 아니라 ‘위대한 영혼’으로 고양된다. ‘위대한 영혼’은 결국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정념을 통제하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존재이다. 한편 의지를 통해서 동물정기와 정념의 연결 관계를 바꿈으로써 우리는 의지의 자유를 경험한다. 이러한 자유의지의 경험은 데카르트 윤리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관대함générosité’과 연결된다. 데카르트 철학에서 이상적인 윤리적 행위자인 ‘관대한 사람’은 자신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고 우리의 윤리적 삶은 이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만 달려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겠다는 결의를 갖는 사람이다.
데카르트의 ‘윤리학’이 ‘철학의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라면, ‘관대함’은 ‘윤리학’이라는 가지에서 열리는 마지막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관대함’을 ‘다른 모든 덕들의 열쇠’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윤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대함’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관대함의 정념이 먼저 우리 안에서 발생하고 그 후에 그 정념이 덕이 된다. 즉 데카르트에게 관대함은 ‘정념-덕’이다. 또 데카르트는 관대함이 욕망의 “일반적인 치료책”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관대함을 통해서 우리는 무관심한 대상이었던 자유의지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그 결과 ‘나에게만 의존하는 것’인 자유의지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오직 ‘나에게만 의존하는 것’만을 욕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관대한 사람’은 ‘정당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관대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귀속될 수 있는 것이 자유의지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이러한 무한한 자유의지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경이감을 갖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관대한 사람’은 “자연적으로 훌륭한 일[큰일]에 이끌린다.”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자신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대함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겸손’ ‘존경’, ‘친절’과 같은 덕스러운 성품을 가지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데카르트는 관대함이 ‘다른 모든 덕들에 이르는 열쇠’라고 말한 것이다. ‘관대한 사람’은 ‘관대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덕스러운 품성을 갖출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의 ‘관대함’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이것을 잘 사용하겠다는 결의를 통해서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여러 가지 덕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관대함’을 통해서 평등주의의 미덕을 우리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또 ‘관대함’이 자기 자신의 ‘정당한’ 인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선한 행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관대함은 ‘코기토의 완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코기토를 완성한 후에 ‘외출하는 코기토’의 근거가 된다. 즉 데카르트 윤리학의 핵심은 자기 자신의 완성이 아니라 타자로 향하는 것이다. 한편 ‘관대한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정념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과도한 정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이처럼 ‘관대한 사람’은 정념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정념은 나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고, 따라서 ‘관대한 사람’은 정념 때문에 “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함을 맛볼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데카르트 윤리학의 핵심 개념들을 고려해 볼 때, 데카르트 윤리학을 덕윤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동시에 데카르트의 덕윤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덕윤리와 스토아 덕윤리의 반복이나 재진술이 아니라 데카르트 덕윤리만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데카르트가 고대 철학자들의 덕윤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윤리학은 그의 형이상학이나 자연철학과 달리 새로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형이상학과 자연학의 근대성만큼 새롭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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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Philosophy (철학과)Theses (Ph.D. / Sc.D._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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