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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시대 정치적 글쓰기 연구
A Study on the Politicical Writings in Jeongjo’s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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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백승호
Advisor
이종묵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3-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正祖金鍾秀蔡濟恭政治的 글쓰기문학과 정치JeongjoKim JongsuChae JaegongPolitical writingPolitics and Literature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국문학 전공, 2013. 2. 이종묵.
Abstract
본 논문은 正祖時代 정국을 주도하던 인물들이 정치담론을 형성하는 데 활용한 글쓰기에 관한 연구이다. 정조시대에는 君臣 간의 글쓰기를 통한 정국운영이 활발했고, 나아가 각 정파 사이의 정치담론 경쟁 또한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다. 문치국가인 조선에서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정당성, 즉 명분과 의리를 얻는 것이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글쓰기는 바로 그 정당성을 획득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정조는 즉위 초기에 외척으로 인해 왕권 기반이 약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여러 세력을 포섭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조는 국정 운영과 통치의 차원에서 이러한 상황을 조정하고 특정 정치 세력의 당리당략이 아닌 국가의 공론에 여러 정파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글쓰기를 활용했다.
정조시대에 글쓰기로써 정치담론을 생성하고 정국을 주도한 인물로 정조가 義理主人이라고 인정했던 金鍾秀와 蔡濟恭이 있다. 김종수는 同德會의 일원으로 척신을 물리치고 홍국영의 유배를 청하는 글을 올림으로써 의리주인으로 인정받았다. 채제공은 영남만인소를 배경으로 思悼世子에 대한 임오의리를 주장함으로써 의리주인으로 인정받았다.
김종수는 이미지와 상징을 구축하는 글쓰기를 통해 淸流 담론을 형성하였다. 이를 통해 山人을 표방하고 隱者의 이미지를 쌓아나갔다. 그는 노론이라는 집권 세력에 속해 있었지만 영조대 후반 세력을 얻었던 외척세력과 그에 협조하는 완론 탕평파를 비판하면서 은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였다. 시에서도 완적이나 도연명의 전고를 자주 썼다.
또한 김종수는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대명의리와 신임의리를 굳게 지키는 집단, 즉 노론 山林處士 집단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였다. 그는 李胤永 등 노론 청류와의 교유를 회고하는 글을 써서 그들과의 동류의식을 표하며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는 글쓰기 전략을 취하였다.
김종수와 동류 문인들은 고아한 취향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즐겨하였다. 그들은 서화 골동 취향을 드러내고 모임의 명칭도 ‘雅集’이라고 부르는 등 고결한 청류의 이미지를 부각하였다. 이것은 본인들의 모임이 고아한 아취가 있는 모임이라는 것을 표방한 것이다. 김종수는 이와 같은 청류 이미지를 청류 담론으로 발전시켜 척신정치를 비판하고 사류로서 공론을 주도할 명분을 얻었다.
채제공은 글쓰기를 통해 정파를 결속하였다. 채제공은 許穆을 존숭하는 글쓰기를 통해 古를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는 허목으로부터 파생된 상고의 이미지를 남인의 세력 결속과 명분 획득 등에 정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남인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채제공은 淸南을 중심으로 시회를 열되, 탁남, 북인 등을 규합하여 남인 세력의 외연을 넓혔다. 그는 己戊餘種이라고 불리는 남인 세력에 청남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그는 또한 시회에서 시문을 단련하여 동당의 후배 가운데 많은 문과 합격자를 배출하였다.
채제공은 중앙 정계에서의 상대적 열세를 嶺南 남인의 지지로 극복하였다. 그는 영남 남인의 묘도문자를 작성하면서 영남 남인이 소외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능력에 따라 영남 인재들이 등용되었던 과거의 사례를 당위로서 제시하였다.
당시 정조는 宗統을 부정할 수도 생부에 대한 사적인 정을 포기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었다. 정조는 정치적 구상을 간단히 글로 남기고 이것을 신하들이 더욱 구체적으로 구현하도록 하였다. 김종수는 정조가 즉위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반대 세력을 제거할 때 그에 필요한 논리를 마련한 인물이다. 채제공은 정조가 사도세자에 대한 私情을 표할 때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준 인물이다. 김종수는 청류라는 명성을 이용하여 대의명분을 표하거나 조정의 의리를 진작시키는 글을 올렸다. 채제공은 평소 남인의 세력을 결속하는 글쓰기를 수행하였는데 이러한 결속을 바탕으로 사도세자에 대한 崇奉 여론을 조성하였다.
김종수는 노론 청류 세력을 義理의 주도 세력으로 확립시켰고, 채제공은 정파로서의 세력이 미약했던 남인을 탕평정국의 일원으로 세력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요컨대 그들은 글쓰기를 통해 본인과 정파의 이미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축하고 이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본인과 정파의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반면 다른 정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규정하여 분별과 배제의 논리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김종수와 채제공은 각각이 속한 정파인 노론 청류와 남인 세력이 정국을 주도할 당위성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This dissertation studied on the political leaders’ writings, which formed the political discourses in Jeongjo's Era. In this period, the competition of political discourses between King Jeongjo and senior officials was very active. Because Joseon was highly civilized, it was important to get justification in order to lead the political situation. The writing was one of the important means to acquire the power. The royal authority had been weakened by the maternal relatives family, so King Jeongjo tried to win some politically influential groups over his side. In this situation, the writing was well used as a governing tool.
King Jeongjo called Kim Jongsu and Chae Jaegong as the masters of justice. They made political discourses and led the politics through the writing. Kim Jongsu was a member of Dongdeoghoe and he purged some hostile royal relatives and Hong Gugyeong. Chae Jaegong supported Namin when they appealed to the king that the loyalty of Crown Prince Sado should regain his honor.
Kim made clear and noble literati discourses through writings. He tried to make a hermitic image. He belonged to Nolon which was the ruling party at that time but he was far away from the center of power. He differentiated himself by criticizing Tangpyeong party that followed the royal relatives. He used the hermitic identity for the political purpose. He used to be a younger member of Nolon Sanlim hermits who had loyalty to Ming and King Yeongjo. He used his friendship as a political asset. He expressed comradeship in his writings to identify himself as a clear and noble literati. Kim and his comrade literati were willing to show the noble taste in their writings. They enjoyed antiques and paintings. They named their meeting Ajib which meant that they preferred elegant and refined values. He elaborated the clear and noble literati discourses to get the justification for leading the political situation.
Chae Jaegong tried to unite the political factions. He built a reputation by writings which showed the reverence for Heo Mog and the Early Ancient identity. He used Early Ancient Identity in order to unite Namin factions and to get political justification. This made his position stable as the party leader. He opened a poetry club to extend the Namin party. He embraced Tagnam, Bugin through making Cheongnam scholarship. In his poetry club, many government officials were produced. He overcame the political inferiority by the support of Yeongnam literati. He wrote many memorial inscriptions of Yeongnam literati and deplored their isolation in politics. He insisted that Yeongnam literati should be appointed as officials according to their abilities.
King Jeongjo was in a dilemma because he could not deny royal genealogy as well as give up his personal affection to his biological father. So he wrote short writings to hide his feeling and he made officials wrote long writing to express the king’s real intention. Kim provided the political logic of the king’s legitimacy and ousted the king’s enemy. Chae appealed to public opinion when the king wanted to enhance the royal formality to Crown prince Sado. Kim used his fame as a clear and noble literati to advocate political justification and boosted the officials’ spirit in royal court through writing. Chae conducted the writing to unite political Namin factions. As the result he succeeded to lead the reverence for Crown prince Sado.
Both of them succeeded to enhance their own party’s power and to built their image of integrity. They established their party’s identification and tried to exclude counter party though political writings. The writing was essential to get the political justification.
keywords : Jeongjo, Kim Jongsu, Chae Jaegong, Political writing, Politics and Literature.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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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Ph.D. / Sc.D.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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