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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의 經世 의식과 산문세계
柳梦寅的经世意识与散文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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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홍백
Advisor
이종묵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柳夢寅經世 의식經世論글쓰기光海君大北派安邊三十二策大家文會國語戰國策莊子佛經兵書兵法先秦兩漢 古文六經節義自得議論模擬寓言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국문학전공), 2014. 2. 이종묵.
Abstract
본고는 16세기 말~17세기 초에 활동한 於于 柳夢寅(1559∼1623)의 經世 의식과 산문세계에 대한 연구다. 그의 경세적 모색이 당시 조선 현실에 대한 개혁 의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주목하고 이것이 그의 산문 작품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며 그 특징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본고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예비적 고찰, 산문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 문학사적 조망이 그 셋이다.
예비적 고찰은 크게 두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유몽인의 문학적, 정치적 생애에 대한 검토이다. 먼저 ‘수학기의 다각적 모색’에 대한 검토를 통해, 《六經》의 自得을 강조하고 先秦兩漢의 簡易한 古文으로의 복고를 주장하는 그의 학문적ㆍ문학적 태도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음을 살폈다. 이어서 ‘사환기의 활동과 정치적 부침’에 대한 검토를 통해, 경세론의 배경에 세 차례의 使行 경험과 三道 순안어사, 함경도 순무어사, 평안도 순변어사 등을 역임한 경험이 놓여 있었음을 살폈다. 아울러 《大家文會》의 간행 및 明 복고파 문학에 대한 유몽인의 비평적 관심 또한 수학기에 형성된 고문관 위에서 다시 經略 宋應昌과 명 사신 朱之蕃을 접반하면서 일정하게 촉발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살폈다. 이어서 ‘은거기의 정신적 갈등과 저술’에 대한 검토를 통해, 유몽인이 말년의 금강산 은거기에 어떠한 정신적 고뇌 속에서 저술을 통해 후세에 전해지고자 한 ‘立言垂後’의 욕망을 갈구했고 나아가 그것이 달성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근원적 불안 속에서 선계로 도피하고자 했는지 살폈다.
두 번째 예비적 고찰은 유몽인 산문의 형성 배경인 그의 경세론과 학문관, 문학관에 대한 검토이다. 먼저 ‘국방과 통상의 경세론’에 대한 검토를 통해, 유몽인이 17세기 초반 後金 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고자 〈安邊三十二策〉을 비롯한 여러 저술을 통해 북방 방어책과 사회경제 개혁안을 다각도로 모색하였음을 살폈다. 특히 兵書를 재해석하여 물화의 유통과 무역의 활성화 및 수레와 벽돌의 사용을 강조하는 중상적, 제도적 개혁안을 입론하고 明代 중국의 선진 문물 수용을 통한 당대 조선의 사회경제적 개혁을 주장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두 번째로 ‘개방적 사유와 自得의 학문관’에 대한 검토를 통해, 그가 학문적ㆍ사상적 측면에서 朱子의 경전 해석을 회의하면서 六經을 중시하고 나아가 陽明學과 老莊, 佛敎의 사상을 유연하게 수용했음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유몽인의 사상적 개방성이 그의 글쓰기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살폈다. 세 번째로 ‘法古와 경세의 문학관’에 대한 검토를 통해 유몽인의 문학적 관심이 다양했음을 확인하고 명대 복고파 문학과의 관련 하에 선진양한의 고문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살폈다. 이를 통해 선진양한 고문이 단지 창작 상의 모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의 정치적 문맥에서 시의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유몽인이 평소 節義를 중시하고 朋黨을 비판하며 결국 광해군을 위해 立節할 수 있었던 정치적 태도의 바탕에 고문에 대한 연찬이 놓여 있었음을 살폈다.
이상의 예비적 논의를 마친 뒤, 유몽인의 산문세계를 본격적으로 검토하였다. 주제 면에서 크게 ‘당대 조선 현실의 비판과 성찰’, ‘중국 현실의 주체적 인식과 수용’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이러한 경세적 모색이 각각 어떠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먼저 유몽인이 당대 조선의 정치적, 학문적 현실을 어떻게 비판하고 성찰하는지 검토하였다. 산문 분석은 다음 세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반어와 문답을 통한 정치현실 비판’이다. 유몽인은 반어의문문을 사용한 設疑的 의론과 自問自答式 의론, 대화체 의론 등을 통해 당시 조선의 붕당 문제를 비판하고 올바른 선비의 교유가 무엇인지를 역설하는 한편, 조선 관료생활의 폐단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하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써 학문과 문장, 절의를 강조하였다.
두 번째는 ‘大北 권세가에 대한 우의적 풍자’이다. 유몽인은 〈水鏡堂記〉ㆍ〈月波亭記〉ㆍ〈恩波亭記〉 등의 미려한 문체의 기문을 통해 광해군대의 북인 권세가인 李大燁ㆍ柳希發ㆍ趙國弼 등을 우의적으로 풍자하거나, 논쟁적 성격의 詩作 행위와 自註 등을 통해 廢母論을 제기한 권세가 柳希奮을 우의적으로 비판하였다.
세 번째는 ‘寓言을 통한 자득의 道 추구’이다. 유몽인은 불경이나 선사어록 등의 우언 글쓰기 방식을 활용하여 당대 조선의 학문적ㆍ사상적ㆍ문학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당시 조선에서 유학과 문장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지표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어서 유몽인이 중국의 군사ㆍ사회ㆍ경제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는지 검토하였다. 산문 분석은 다음 두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로는 유몽인이 동시대의 명대 사회를 조선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개괄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명대 중국은 유몽인에게 있어 몰주체적이고 맹목적인 事大의 대상으로 한정되지 않는, 꽤나 다채로운 部面을 지니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상례나 복식 내지 한자음과 같은 지역적ㆍ민족적ㆍ문화적ㆍ언어적 층위에서의 풍속에 있어서는 비록 중국의 것이라도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몽인이 강조한 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사회경제적ㆍ군사제도적 낙후성을 쇄신하기 위한 주체적 비교 규준이자 현실적 전범으로서의 중국이다. 유몽인은 조선이 배워야 할 것은 중국의 언어나 풍속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군사적ㆍ경제적 측면에서의 명대 사회의 선진적 제도와 문물임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로는 명대 중국에 대한 유몽인의 이러한 인식 태도가 구체적인 작품과 글쓰기 방식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형상화되는지 검토하였다. 당시 조선 지식인사회의 일반적인 세태는, “倣中國하여 나라와 백성을 풍족하게 하는 일을 건의하여 국속을 일변시키고자 하는 선비가 하나도 없을”만큼 개탄스러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유몽인은 동시대 지식인사회에 ‘방중국’의 당위와 구체적인 방식을 소개하고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활용하였다. 이를 위해 유몽인은 의론적 글쓰기를 비롯하여 모의적 글쓰기, 우언적 글쓰기 등을 다채롭게 활용하여 당시 조선의 급선무라 할 수 있는 방중국의 시의적 사안을 효과적으로 주장하고 전달하고자 하였다. 곧 당대 조선의 사회경제적 낙후성을 비판하고 명대 중국의 선진문물 수용을 주장하는 사안을 동일하게 논하더라도, 그 핵심 논지를 때로는 직설적으로 의론하거나 때로는 《國語》를 모의하여 전달하거나 때로는 《장자》식 우언을 활용하여 에둘러 드러낸 것이다.
이상의 두 방향에서 산문작품을 분석한 다음, 포괄적인 시야에서 유몽인 산문을 조선 중기 한문학사 안에서 조망하고자 하였다. 전술한 경세적 모색과 글쓰기 방식은 비단 유몽인 문학만의 독자적인 특징은 아니었다. 이는 동시대 여러 문인지식인의 문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면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야를 넓혀, 동시대의 지성사ㆍ문학사 안에서 유몽인의 경세 의식과 산문세계를 검토하였다. 먼저 유몽인과 동시대의 趙憲과 李德馨, 李睟光, 張維, 申欽, 許筠 등의 지식인은 모두 전란을 전후로 한 선조ㆍ광해군 연간의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당대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북방방어책과 상업 유통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경제적 개혁안을 공통적으로 입안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상적ㆍ문학적으로 미묘한 차이가 발견되었다. 유몽인은 조헌이나 이덕형보다는 사상적으로 개방적이고 선진 고문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이수광, 장유, 신흠, 허균의 입장에 가까웠다. 반면에 유몽인은 송유를 비판하고 양명학에 일정하게 영향을 받았지만, 양명학을 학문적ㆍ사상적으로 깊이 받아들인 장유와 신흠 내지 왕학 좌파에까지 관심의 폭을 넓힌 허균보다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할 수 있다. 또 이수광, 장유, 신흠, 허균 등은 유몽인과 마찬가지로 《周易》 및 《장자》와 불경 등의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제각기 활용하였다. 그러나 유몽인은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단지 붕당 비판이나 정신적 위안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군사적ㆍ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개혁안을 모색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편으로도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 유몽인 산문의 위상을 조선 중기의 문학적 지평 위에서 음미할 수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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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Ph.D. / Sc.D.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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