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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문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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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한성

Advisor
박성창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김기림비교문학세계문학상호텍스트성영미 모더니즘T. S. 엘리엇역사 감각매슈 아널드교양(문화)I. A. 리차즈번역태도파시즘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국문학전공), 2014. 2. 박성창.
Abstract
1930년대 한국 문단의 예술 형상화 방식은 크게 주관으로의 경사, 객관으로의 경사, 텍스트 지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심리학에 기초를 둔 주관으로의 경사는 개개인의 주체에 중심을 두어 작가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교양, 지성, 모럴의 논의를 낳았다. 객관으로의 경사는 사회적 역할을 중심으로 텍스트가 사회현상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모방(Mimesis)의 차원에서 문제시하였다. 텍스트 지향은 텍스트의 구성, 이미지, 구조에 초점을 두어 텍스트 내에서 예술 지향성을 드러내었다. 김기림 텍스트는 예술작품을 하나의 건축물(Autonomy)로 본다는 점에서 예술적 구현에 충실한 예술 지향주의와 거리가 멀다. 리차즈가 활용한 심리학에 관심을 보인 김기림 텍스트는 주관을 지향하지만, 사회 현실이라는 객관 역시 의식함으로써 주관과 객관 사이를 끊임없이 횡단한다. 김기림 텍스트는 (신)고전주의에다 문명비판이 가미된 것으로, 작가 자신의 주체적 인식에다 사회적 역할의 필요성이 고려되었다.
이 논문은 주제에 따른 구성방식을 택하지 않고 연대기적 방식을 설정했다.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초기부터 후기까지 김기림의 예술 세계에서 한결같이 흐르는 문제의식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림을 모더니스트 혹은 주지주의자로 보는 기존 시각은 식민지 시기 김기림을 모더니스트로, 해방기의 김기림을 민족주의자로 분리했다. 해방기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상황에서 김기림 텍스트의 전위적 성격이 식민지 시기만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해방 이후 발생한 격변이 김기림에게 민족과 새 나라를 노래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민족의 문제를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세계사적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시집 기상도(1936)에서 보여주었던 세계의 기상을 살피는 기사의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했다. 이 시기의 주요 작업인 기존 평론을 선별한 시론(1947)과 시집 새노래(1948)에서는 민족에 대한 애정과 세계사의 동시대적 보편을 따르는 저자의 노력이 함께 맞물려 있다. 식민지 시기 김기림과 해방 이후 김기림이 염두에 둔 문제의식과 추구한 목적은 한결같았다. 특수한 사회·정치적 상황은 표면으로 드러날 뿐 그의 텍스트 밑바탕에 흐르는 문제의식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본문(II, III, IV부)의 첫 부분인 II부에서는 1936년 4월 동북제대에 입학하기 이전 김기림 텍스트와 외국문학 텍스트 사이의 동시대성에 기초한 수평적 상호텍스트성을 다루었다. 초창기 텍스트에서 비록 이상주의에 기반을 둔 형상화 방식이 나타났지만, 그는 점차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는 리얼리즘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기존 가치를 비꼬는 풍자와 더 이상 여성을 자애로운 어머니와 순종적인 아내로 그리지 않은 현실 묘사를 통해, 낭만적 성격에서 벗어나 리얼리즘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얼리즘 세계로 진입한 김기림은 동시대 텍스트와 다양한 상호관계를 맺게 되는 데, 그는 다양한 외국어 텍스트와 자신의 텍스트를 상호텍스트하면서도 참조한 텍스트의 층위를 구분했다. 여러 텍스트 가운데 중심에 놓인 것은 영미 모더니즘 텍스트로, 특히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는 김기림에게 문명비판의 영감을 주었다. 황무지에서 쇠바퀴가 은유하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기상도에서 역사의 순환으로 나타나, 억눌려 있었던 식민지 조선의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메타포로 활용되었다. 이런 논의는 쇠바퀴의 원리로 순환하는 기차가 지닌 매혹과 한계로 확대된다. 「철도연선」의 함경선 철길은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것으로, 바다를 향한 동경과 대지를 벗어날 수 없는 열패감의 양가감정이 드러나 있다.
II부에서 김기림 텍스트와 외국문학 텍스트 간의 관계를 주로 다루었다면, III부에서는 문학텍스트뿐만 아니라 영문학의 학술비평, 신문기사, 여행기 등이 그의 텍스트와 어떤 상호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영문학 텍스트를 식민지 조선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다. 그는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1939.10)에서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를 인용하여, 선배시인과 후배시인 간의 세대갈등이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런 세대 간의 갈등은 문예사조의 시대적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그가 연애시를 거부하고 문명 비판적 시를 쓴 이유는 1920년대 선배시인의 이상주의 및 센티멘탈 로맨티시즘 경향을 비판적으로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으로서의 책무는 단지 연애감정을 아름답게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아름다움에서 떼어놓고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남녀 간에 벌어지는 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데 있었다. 기상도에서 여성은 더 이상 이상적인 육체의 소유자가 아니라 손님의 손을 이끄는 뒷골목의 창부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에 이어 국제정세를 담은 신문기사가 그의 시에 어떻게 상호텍스트되어 있는지도 검토해보았다. 무솔리니 파시즘의 에티오피아 침공과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망명 소식을 담은 신문기사 등 여러 텍스트가 직조된 「쥬피타추방」에서 서구문명의 거대조류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李箱을 통해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를 조명하였다.
II부과 III부에서 공시적 관계에 놓인 수평적 상호텍스트성이 두드러졌다면, IV부에서는 수평적 상호텍스트가 민족문학을 건설하려는 통시적인 수직적 상호텍스트와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를 살폈다. 해방기는 김기림에게 민족문학 건설의 시발점이 되는 시기로, 그는 시론, 시의 이해, 문학개론, 문장론신강, 과학개론에서 과거의 지식을 정리·조합·번역하여 민족문학에 걸맞게 텍스트를 정립하려 했다. 일관성이 없고 평론의 형태에서 벗어난 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글, 일본 신감각파의 흔적이 드러난 글을 선집 시론에 수록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정리한다. 1939년 동북제대 영문과 학사논문이 「부록」으로 번역된 시의 이해(1950)를 통해서도, 김기림이 지난 학문적 성취를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한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는 텍스트 정리 작업에 이어 해방기의 혼란을 안정시키기 위해 교양 및 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19세기 말 매슈 아널드가 교양을 통해 무질서의 영국을 안정시키려 하였던 것처럼, 김기림 역시 문화를 통해 해방기의 무질서를 극복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는 해방된 조선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가미된 서구 교양의 과학적 정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과학의 합리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해방기 조선에서 발아하고 있는 파시즘으로, 그는 민족의 분열을 꾀하는 세력이 감정을 자극하는 파시즘의 배타주의로 민족의 장래를 호도하는 현실을 우려하였던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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