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게르만 관습법에서 본 고대한국의 관습법
Early Korean Customary Law from the Perspective of Germanic Barbaricum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Jakub Taylor
Advisor
송기호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5-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관습법바바리아고대한국법의례중심주의불문법구두문화속인법주의판례주의복고주의민회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5. 2. 송기호.
Abstract
본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중세 유럽 기원의 프리즘을 통해 고대 한국의 관습법을 살펴보는데 있다. 이는 한국학에서 지금까지 묘사되지 않았던 관습체계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고대 한국 관습법의 고유성에 관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1. 한국의 轘刑에 대한 묘사와 笏의 사법적 이용을 보면, 중국 규정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많은 법적 요소들의 해석이 중화 표현적·價値觀的인 왜곡으로부터 온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고유한 관습법의 요인일 가능성이 희박하지 않다.
2. 관습법의 기원에서 묘사되고 관습법에서 사용된 대부분의 사형제도는 溺死刑과 火刑인데, 이 두 가지 모두 바바리아와 유사하지 않은 점이 있다. 즉, 게르만인들에게 溺死刑보다는 淀刑이 나타나고 있고 火刑은 주로 公衆刑으로써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대 한국에서 火刑은 叛及謀逆罪와 관련이 깊지만 부차적으로는 음란죄로 처했던 형벌이다.
3. 전쟁과 관련된 관습법적 절차는 매우 의례적이었다. 幡[はた]와 謠/言舉[ことあげ, 게르만인의 barditus 암송과 유사성은 알 수가 없음]에 관한 의식법은 일본열도 뿐 아니라 반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 전쟁법은 관습적인 복수제도의 부분임이 정확히 지적된다.
4. 고대 한국 관습제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것 중의 하나는 牛馬를 죽이는 것을 罪로 인식하는 것이며, 사형 형벌에 준하는 減輕罰(英: palliative)을 준다.
5. 神判的 節次도 운영되며, 독특한 유형으로 활 쏘는 것을 포함했다. 이는 재산을 분배하거나 무죄를 주장할 때도 사용된 방법이다.
6. 정약을 맺을 절차적인 呪文에 있어서는 적어도 後漢時代 부터 반복 표현이 사용될 수 있었다.

한편, 유럽 바바리아 관습법과 고대 한국 관습법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나타나고 있다.
1. 종교의식 장소로서 특별한 장소인 늪은 -한국의 경우, 가설적으로- 사형을 실행하는 곳이었다. 고대 한국 및 바바리아의 사형제도는 의식적인 종교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법제는 천상과 지하의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로 이해되고, 종교의식의 불순함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양쪽의 火刑은 竝科刑으로써 실시하고 있었다.
2. 도구를 가지고 의식을 행하는 儀官의 모습은 바바리아와 고대 한국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3. 竝科刑罰制는 folk polydoxy제도하에 복합의식으로 묘사되었다.
4. 친족의 명예에 대한 범죄로서 淫亂罪의 중요성이 시사되었다. 고대 한국에서 그밖의 기록은 木簡의 교환이나 현존하는 법 관습이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5. ‘賠償’主義制度가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피해자 가문의 명성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대부분의 범죄에 대한 속죄금이 지불되었을 가능성이 언급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제도의 ‘진화론적인’ 발달과 더불어 온 것이 아니라 復古主義制度 樣相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6. 신판결투 및 流水神判의 존재는 양쪽 관습법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7. 占치는 제도는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관습법 제도의 부분이었다. 占에서 卜筮 및 짐승을 이용하는 것은 바바리아와 고대 한국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8. 미결정된 것에 대한 의식은 歡呼와 vapnatak儀式을 포함할 수 있었다.
9. 만장일치를 유지하기 위해 제비뽑기나 –고대 한국의 경우 가설적으로- 강제된 용납이 이루어졌다.
10. 조건 저주와 사법적 저주 제도가 존재했다. 저주의 방식은 僞證罪의 경우 차용자의 배신 및 위증자의 무기에 관한 사고를 포함할 수 있었다. 또, 저주할 때에 유추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온 상징적인 행동이 나타나고 있었다 [예컨대: 흙덩이 돌리는 의식].
11. 제한된 혈통집단의 개념이 존재했다. 즉, -한국의 경우, 가설적으로- 여러 관습법적인 의무 중에서 복수(형벌 집행), 人命金 분배, 재산 상속, 맹세제도 등이다. 그러한 집단 내에서 계급에 따른 의무의 합리적 분배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12. 증거를 모으는 과정이 효율적이지 않았다. 형벌의 즉각적 집행 또는 사건의 기각이 더 빈번했다.
13. 관습법의 실행 기관은 差層的인 구조제(分節構造制, 英:segmentary system)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규모 민회집단의 기능은 천연자원의 개발을 합리화하고 公衆刑主義的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규모가 더욱 큰 민회집단은 방어·교섭적인 기능도 실행하고 있었다.
14. 민회에서 귀족층은 公評하는 기능을 발휘했다. 민회의 정치적인 기능은 갈수록 없어져 諸率/諸加會議로 옮겨졌다.
15. 民會所에서는 聖地와 관련된 곳으로써 犯染의 위협으로 피를 흘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평화질서의 개념 존재를 認證하고 있는 것이다.
16. 유럽 바바리아 및 고대 한국의 대규모 定期民會는 보름달 및 초승달이 뜨는 날에 소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7. 토지를 먼저 합법적으로 이용했던 것에 따라 사유권을 얻었던 관습법적인 규칙이 나타나고 있다.
18. 정약을 맺을 때에 磐石도 의례적으로 이용된다.
19. 순장에 있어서 관습법적인 양상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순장자 친족의 신분적인 상승, 둘째, 종교의식에서 범죄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관습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냄으로써 일반적으로 주요 준거가 되는 것으로 추론된다.
1. 법적으로 祭儀化된 것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습법의 口碑이다. 그것은 증인이나 법 암송자의 역할을 하는 늙은 長老의 중요성에서 기인되었다. 법 절차의 序論으로서 origo gentis 낭독은 가능했다. 절차형식과 진행에서 呪文을 暗誦文으로 사용한 것으로 묘사된 것이 존재했다.
2. 屬人法的인 성격이라 할 수 있으며, 공동체의 강력한 지역적 상황에 반대하지 않는다.
3. 판례에 의해 입증된 몇 가지 요소들이 존재했다.
4. 復古主義의 부분으로서 報復主義, 報償主義 및 互惠性의 사례가 사서에서 많이 나타난다. 또, 관습법은 同害主義的인 성격보다 행위학파의 정의에 준한 反映主義的인 성격이 더욱 강했다.
5. 대부분의 경우 형벌의 조건적인 집행제도는 一罪多刑制度 下에 실시된 和議/調整의 節次를 投影한 것이다.
6. 범죄에 상응해 형벌에 처하는 방식이 유추된다. 그것은 관습법의 반영주의적인 요소가 고려된 것이다.
7. 관습법의 성격에 있어서는 정태성에 역점을 두게 되며 관습법 실행 기관에 있어서는 순환성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고대 한국 관습법에 대한 비교 연구에서 Wenskus의 방법론을 이용하게 된 것은 지역적으로 광범위한 연구가 -사료의 부족으로-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한편, 시대적인 범위는 넓게 취급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좋으며, 토포스 전파를 중심으로 한 해석이 더욱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밖의 관습법의 특징은 앞으로 더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본고는 바바리아와 고대 한국의 관습법 사료를 통해 관습법의 개념에 대한 논의를 제기한 첫 단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740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Ph.D. / Sc.D._국사학과)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