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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기 가야금병창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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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소영

Advisor
황준연
Major
음악대학 협동과정음악학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가야금병창20세기 전반기오태석이소향심상건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 음악학, 2014. 8. 황준연.
Abstract
20세기 전반기는 근대적 사회로 전환되는 시기로 음악사회도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전통음악계에 큰 변화가 대두되었다. 새로운 극장에서의 공연, 유성기음반 발매, 방송활동 등은 이전의 시기와 다른 전통음악의 상황을 조성하였다. 20세기 초를 전후하여 등장한 가야금병창은 그러한 변화과정에서 탄생하였다.
가야금병창은 1910년대 전후에 중앙무대 극장에서 정기적인 공연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판소리, 단가, 민요 등 기존의 음악과 다른 색다른 연주 방식을 보여준 가야금병창은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독립된 음악 형태로 자리 잡았다.
가야금병창의 형성 시기는 정확하지 않고, 대략 19세기 말∼20세기 초로 추정된다. 초창기에는 심정순과 박팔괘가 연주자로 활동하였는데, 그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아직 가야금병창이 전성기를 맞이하기 전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유성기음반의 발매, 국악 방송 운영 등으로 가야금병창 공연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1930년대 전반기에 이르러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20세기 전반기 가야금병창의 음악적 특징을 밝히기 위해 당시에 가야금병창을 주도하던 심상건·이소향·오태석이 부른 악곡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20세기 전반기에 가야금병창이 기존의 판소리와는 구별되는 고유한 음악 형태로 정립되었고, 노래와 가야금반주의 이상적인 결합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이었음을 밝혔다. 연주자 한 사람이 판소리(또는 민요, 잡가)와 가야금의 조화로운 연주를 하는 형태는 기존의 판소리나 산조의 연주와는 또 다른 감흥을 주었고, 더욱이 당대에 이름난 명인· 명창들 중에 많은 이들이 가야금병창을 연행하여 완성도 높은 음악을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야금병창은 사설의 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 기존의 사설에서 길이를 축소하고 변용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였다. 연주자에 따른 차이도 있었는데, 심상건은 자연풍경을 노래하는 부분을 보다 자세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확대하였고, 이소향은 유사하게 반복되는 부분은 취하지 않거나 축소하였다. 특히 오태석은 사설을 운용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대목에 따라 언어적 유희가 돋보이는 구성을 했다. 음악적인 면에서 보면, 비교적 기존의 악조와 장단 등은 유사하게 진행했다. 다만 심상건과 이소향은 기존 악곡의 악조와 장단을 그대로 준용한 데 비해, 오태석은 악조 변화로써 자신의 음악 세계를 나타내었다.
선율적 측면에서 소리와 가야금반주의 관계를 보면 가야금병창 연주자의 공통적 요소와 개별적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소리 선율을 근간으로 가야금반주를 구성하는 것은 본고에서 분석한 연주자에서 공히 나타나는 기본 속성이다. 그러나 세분적인 부분에서 소리와 가야금반주의 결합을 이루는 방식에는 차이가 컸다. 심상건의 경우, 가야금반주는 단순히 보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리보다 비중이 큰 경향을 보였으며, 반주 선율에서 그의 독자적 음악성을 드러내었다. 소리와 반주간의 헤테로포니적 선율 진행을 시도하는 한편, 가야금반주를 전주 또는 간주로 적극 활용한 특징이 있다. 심상건이 가야금병창을 부를 때에 연주했던 반주선율은 훗날 그가 가야금산조를 만들 때에 활용되었을 것으로 간주된다. 이소향의 경우는 본래 판소리, 민요 등을 불렀던 창자였기 때문에 그가 부른 가야금병창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기악연주자였던 심상건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이소향은 주로 소리선율에 비중을 두어 가야금이 반주의 역할 안에서 소리의 여운을 주거나 사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소리와 가야금병창에 모두 능했던 오태석은 훗날 병창 전문가로 명명될 만큼 가야금병창을 통해 그의 음악적 기량과 예술성을 발휘하였다. 오태석의 가야금병창은 소리와 가야금반주의 조화로움을 극대화시켰으며, 악곡 내에서 소리와 가야금반주를 조화롭게 구성하여 선율의 균형감을 조성하였다. 요컨대 심상건·이소향·오태석이 이들 가야금병창의 연주자에서 나타나는 강한 개성과 음악적 차이는 판소리의 창제나 산조의 유파에 버금가는 특징을 이루었다.

20세기 전반기에 가야금병창이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던 배경의 기저에는 새로운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전통음악계 내부에서 공연 양식의 변화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판소리 창자들이 새로운 공연방식으로 분창을 시도했지만,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과 달리 가야금병창은 대중들에게 이미 친숙해있던 기존의 판소리, 단가, 잡가, 민요 등을 활용하여 새로운 공연방식을 선보임으로써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1930년대에 조성된 구악(舊樂) 부흥운동은 가야금병창이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구악(舊樂) 부흥운동으로 주요 공연에서 가야금병창이 연주되는 빈도가 늘어났고, 그에 따라 가야금병창 연주자도 늘어났다. 연주자들 저마다 독자적 음악성을 발휘함으로써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획득하였다.
음악계 내의 경쟁 구도 속에서 1930년대에 가야금병창이 전성기를 이룰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구악(舊樂) 부흥운동을 단순히 전통으로의 회귀가 아닌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적극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심상건·이소향·오태석 등 이름난 명인, 명창에 의해 발휘된 가야금병창은 그것이 독립된 공연 형태로 확립될 수 있는 데에 기여한 바도 크다. 이들 명인은 새로운 시도와 레퍼토리의 확장을 통해서 20세기 전반기에 가야금병창의 외연 확장과 동시에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고, 그 영향을 받은 후속 가야금병창 연주자들이 생겨나 그들의 음악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세기 전반기의 가야금병창은 소리와 가야금연주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독자적인 예술성을 갖춘 중요한 음악 형태로 확립될 수 있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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