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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로 인한 묘지와 도시 사이의 거리 변화에 관한 연구 : A Study on the Change of Distance betwee the Cemetery and the City caused by Moder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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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기세호

Advisor
백진
Major
공과대학 건축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근대화묘지봉안당납골당모리스 메를로-퐁티기 드보르거리(距離)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건축학과, 2017. 2. 백진.
Abstract
죽음은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죽음은 인간 삶의 최후에 발생하는 단발성의 사건으로만 그치지 않고 항상 삶 그 자체와 긴장을 유지한다. 그러나 현재의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의 삶은 죽음과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의학이 발달하고 평균 수명이 늘었지만 죽음 자체를 피할 수는 없는데, 어째서 도시에서는 죽음을 관장하는 공간들을 찾아볼 수 없는가? 왜 현대 도시에서 죽음(의 공간)은 삶(의 공간)으로부터 멀어졌는가? 다시금 도시 내부에 죽음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앞으로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 질문이다.
죽음의 의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묘지는 공통적으로 죽은 자들의 안식처인 동시에 산 자들과의 대면의 장소였다. 때문에 묘지의 배치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를 표현하는 방법이었고, 도시의 안팎에 걸쳐 나름의 영역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배치의 과정에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거리(距離), 결국 도시와 묘지 사이의 거리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데 거리에는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말처럼 질적 측면(깊이)과 양적 측면(너비)이 존재하고, 묘지와 도시 사이의 문제 역시 거리 개념의 이러한 두 측면 사이의 긴장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글의 본론에서는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진 파리와 서울이라는 두 도시의 묘지를 역사적으로 비교하였다. 두 도시의 묘지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묘지를 대하는 태도, 즉 묘지에 대한 거리감의 문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근대 이전의 파리와 서울의 묘지의 배치와 쓰임새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문화권임에도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묘지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가까이 위치하였고, 죽은 이들은 계속해서 산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종종 묘지의 관리를 위한 권력자들의 개입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존재했지만, 도시가 묘지를 대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죽은 자와의 관계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 산업화로 인한 도시 구조의 근본적 변화는 묘지의 문제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기차의 등장으로 세계는 축소되고, 공간은 균질해졌으며, 도시는 전례 없이 팽창했다. 그리고 그처럼 거대해진 메트로폴리스는 이제 유기적 전체가 아니라 네트워크로서 경험된다. 사람들은 도시 전체를 경험하지 못하고 교통수단을 통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바로 이동하기 때문에 도시는 파편적으로 느껴진다. 그러한 상황에서 묘지는 제도적 통폐합을 거쳐 도시 바깥으로 추방되고, 도시가 더 커지면 다시 도시 안으로 편입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는 전 세계 대부분의 근대화된 도시에서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현상이었으며, 파리와 서울 역시 시기와 주체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파리와 서울은 그러한 전체적 흐름을 공유하면서도, 묘지 개혁의 최종적 단계에 해당하는 대규모 원거리 묘지 설립에 대한 대응 방식의 차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도시 풍경을 갖게 된다. 파리는 프랑스 혁명 당시부터 시작된 묘지 개혁이 19세기 중반에 들어 더더욱 박차를 가하면서 도시 바깥에 대규모 묘지의 신설 계획이 세워진다. 하지만 오스만 남작의 과감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은 여전히 죽은 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파리 시민들의 강한 반발로 결국 무산되었다. 이 때문에 파리는 19세기의 개혁으로 탄생한 묘지들이 여전히 도시 안에 남아 있으면서 시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 이후의 신규 묘지들 역시 최대한 도심 가까이에 만들면서 삶의 가까이에 두고 있다. 이렇게 해서 파리는 근대 이후의 도시 상황 속에서도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새로운 거리감을 찾아낸 셈이다.
반면 서울은 해방 이후 전쟁을 비롯한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묘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거기에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강한 개발 압력으로 인해 그나마 도시 안에 있던 일제 강점기의 공동묘지들마저 모두 도시 밖으로 이전하게 된다. 그로 인해 현재 서울에는 일반 시민이 쓸 수 있는 공설 묘지, 혹은 봉안당이 전혀 없으며, 도시 풍경 속에서 묘지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서울의 묘지는 이제 일상생활로부터 단절되고 네트워크상의 하나의 노드(node)에 불과하게 되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새로운 거리감을 조율할 틈도 없이 묘지들이 모두 추방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제 서울은 공적 차원에서 묘지나 봉안당의 신규 설립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오래된 관계가 모두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약 20여 년 전부터 서울 안에도 다시 죽은 자들을 위한 장소가 조금씩 생기고 있는데, 공적 차원이 아닌 사적 차원에서 종교 시설에 부설되는 봉안당의 형식으로 다시 묘지가 도시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 서울의 묘지는 공적 차원에서 도시 밖으로 추방된 묘지와, 사적 차원에서 다시 도시 안에 만들어지는 종교 시설 부설 봉안당의 두 가지 형태로 이원화 되어 있다.
특히 종교 시설 부설 봉안당 중에서도 도심지에 가까이 위치하는 성당 부설 봉안당은 현재 도시민의 일상 가까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장묘 시설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 시설들은 사회적 인식과 법규적 제약 등으로 그 잠재된 가능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은 겉으로는 완전히 추방된 듯 보이는 서울의 장사 시설이 제한적으로나마 다시 서울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즉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 시설들은 앞으로 서울 안에 새로운 묘지 혹은 봉안당을 마련할 때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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