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도시 장소 상실과 기억의 재생산

Abstract

현대 도시에서 장소는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변하고 있다. 경관을 탈바꿈하기 위해 이루어진 개발 사업은 장소의 정체성을 약화시켰고 장소에 녹아있는 기억은 사라졌다. 장소를 통해 이익 창출을 원하는 진영과 삶의 터전으로 유지하려는 진영이 대립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이와 같은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다큐멘터리 분야가 두드러진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는 200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흐름으로 장소를 재현했다. 이전에는 장소가 단순히 배경이자 인물을 위한 필수적 요소였다면, 최근에는 장소 내 기억과 상실감 같은 감각을 형상화하여 장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시간에 따라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장소의 시간을 교란시켜 매순간 새로운 시간을 제시하며 장소를 미학적으로 배치한다. 본 연구는 새로운 방식의 장소 이해와 재현을 통해 장소 상실과 장소의 기억을 재생산하는 장소 다큐멘터리를 해석했다. 다큐멘터리의 새롭고 다양한 시각을 통해 장소가 품고 있는 기억을 바라봄으로써 현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소 계획 과정에 대해 재고했다. 장소는 인간과 사회의 실천 체계로 삶의 모든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총체적 경험의 장이다. 하지만 개발로 인한 장소의 획일화·상품화는 장소의 정체성을 훼손했고 결국 장소 상실이 발생했다. 장소 상실은 장소에 녹아있던 기억도 사라지게 했다. 기억은 장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갖지만, 제한적이기 때문에 매체에 의해 드러난다. 영상매체는 연속 기록을 통해 추상적인 기억을 재현하여 부재한 대상을 시각화하고 영화적 요소를 통해 극대화하기 때문에 장소의 기억을 보여주기에 효과적이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리얼리즘, 정보 전달력, 영화적 효과를 통해 장소 상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장소의 공간적·조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연구는 도시 개발로 인해 장소 상실을 겪은 특정 대상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과 장소를 둘러싼 갈등이 장소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은 배제하였고, 장소 고유의 기억과 감정을 재생산하는 직접적인 감응의 매개로 역할하는 작품을 선정하였다. 최종적으로 <춤추는 숲>,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범전>, <할매-서랍> 총 네 작품을 선정했다. 해석은 크게 다섯 단계로 이루어졌다. 먼저 다큐멘터리에서 다루는 장소의 기본 정보를 파악하고, 다큐멘터리 관련 자료를 조사했다. 다음으로 영화적 요소를 통해 작품을 해석하고, 이를 에드워드 렐프가 제시한 장소 정체성의 요소로 재해석했다. 앞의 네 단계를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장소 계획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바를 제시했다. <춤추는 숲>은 장소 계획 과정에서 행정 기관과 장소 안의 사람들이 충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쳤는지 되묻고,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는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장소의 기억을 함의할 수 있는 복원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한다. <범전>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조성된 장소는 인간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할매-서랍>은 장소의 문화와 생활을 고려한 장소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장소 계획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소 상실을 포착하여 잃어버린 기억을 재생산한다. 장소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장소 계획 과정의 대안과 방향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다큐멘터리가 비추는 장소를 통해 더 나은 장소 계획 과정에 기여할 수 있으며, 향후 꾸준한 담론과 연구 과제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