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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이미술협회(1954-1972)의 활동과 재구축전의 국제적 의미 : 具体美術協会(1954-1972)の活動及び再構築展の国際的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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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가은

Advisor
김정희
Major
미술대학 협동과정미술경영
Issue Date
2016-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구타이미술협회(具体美術協会)구타이 재구축전앵포르멜 미술일본 전위미술전후 일본미술일본미술 비평구타이미술의 동시성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미술경영, 2016. 2. 김정희.
Abstract
국 문 초 록

본 연구는 1954년 일본 간사이(関西) 지방에서 결성되어 1972년까지 일본 안팎에서 활발하게 미술 활동을 전개한 구타이미술협회(具体美術協会, 이하 구타이로 칭함)에 관한 연구이다. 이 그룹은 결성 전부터 이미 간사이 지방에서 전위적인 미술활동을 추진하였던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1905-1972)에게 작품의 비평과 미술적 조언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젊은 미술가들이 미술에서 혁신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면서 형성되었다.
그룹 결성의 초창기 멤버로는 결성 전부터 요시하라 아뜰리에에 정기적으로 방문했었던 시마모토 쇼조(嶋本昭三), 야마자키 츠루코(山崎つる子)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55년 0회(제로회)에서 활동하던 시라가 카즈오(白髪一雄), 다나카 아츠코(田中敦子), 무라카미 사브로(村上三朗), 카나야마 아키라(金山明)가 그룹에 합류하면서 초기 구타이의 중심 멤버가 되었다.
구타이 그룹은 일본 내에서도 수도인 도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간사이 지방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는 구타이의 활동 거점이 당시 미술계 내에서 주변적으로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하여 구타이의 활동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일문과 영문이 병기된 잡지 『구타이(具体)』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고 발행하여 일본 안팎의 영향력 있는 미술가와 비평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였다.
구타이는 앞서 설명하였듯이 그룹 결성 초기부터 미술에서 혁신성과 독창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존의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야외전과 무대전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진흙에서 뒹구는 행위나 나무에 물감을 채운 비닐을 거는 작품 등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을 확장시킨 작품들을 선보였다. 또한 구타이는 잡지 『구타이』에 작품 도판과 전시 당시의 사진 자료 등을 게재하고 멤버들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수록함으로써 자신들의 미술에 대한 태도와 작품의 내용을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까지 전달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구타이의 미디어를 활용한 노력은 프랑스 비평가이자 앵포르멜 미술개념을 제창한 미셸 타피에(Michel Tapié, 1909-1987)에게까지 전해졌다. 1957년 그의 일본 방문과 함께 그와 뜻을 함께한 구타이의 멤버들은 그가 주도하는 앵포르멜 미술의 틀에 부합하는 회화작품을 중점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958년 구타이는 미셸 타피에의 소개로 뉴욕 마사 잭슨 갤러리(Martha Jackson Gallery)에서 첫 외국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이 전시에서 그룹은 야외전과 무대전에서 보여준 초기의 실험적인 작품보다는 추상회화 작품을 위주로 전시하였다. 이 전시 이후 구타이미술은 1950년대 이미 지배적이었던 회화를 중심으로 한 형식주의적인 비평의 기준으로 평가되어 서구미술의 영향을 받은 미술가, 앵포르멜 회화에 영향을 받은 미술가, 혹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추종한 그룹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으며, 그룹 초기의 실험정신은 평가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다.
당시 서구의 미술계는 파리와 뉴욕을 중심으로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액션 페인팅 등으로 설명되는 추상회화가 유행하는 시기였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제 미술계는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일본의 미술을 각자가 상정하는 미술의 기준에서 해석함으로써 자신이 주장하는 미술의 국제성과 파급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구타이에 대한 서구 중심적인 평가들은 모두 이러한 미술계 내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타이는 뉴욕에서의 전시 이후에도 1959년의 이탈리아 토리노에서의 전시, 1960년 오사카에서 외국 미술가들을 초청하여 작품을 풍선에 메달아 하늘에 띄운 , 1965년 암스테르담에서 독일의 제로(Zero) 그룹과 네덜란드의 눌(Nul) 그룹과 함께 개최한 전시 등을 통해 활발하게 국제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구타이의 국제적 미술활동은 1962년 오사카에서 그들의 독자적인 전시공간인 구타이 피나코테카(Pinacotheca)의 설립과 함께 더욱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하였다. 당시 오사카에는 현대미술을 소개할 수 있는 적합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전시공간이 설립된 것이었다. 이 공간은 구타이 멤버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외국의 미술가들의 전시를 개최하는데 활용되었다. 또한 이곳에 현대미술에 관련 있는 외국의 미술가와 비평가들이 연달아 방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공간은 국제적인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한편, 1960년대에는 구타이에 한 세대 젊은 미술가들이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그룹이 안정기에 접어들어 초기의 실험정신이 다소 빛을 잃어가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새로운 멤버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룹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새로 합류한 멤버들은 구타이가 그룹 결성 초기에 보였던 실험정신을 이어받아 환경미술이나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미술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 오사카에서 일본 최초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의 전시와 무대 활동을 통해 소개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멤버들의 합류로 인하여 변화된 그룹의 분위기가 원인이 되어 멤버들의 의견 차이가 발생하였고 결과적으로 구타이의 결속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72년 요시하라 지로의 갑작스러운 죽음 직후 3월 31일자로 구타이는 해산하였다.
앞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구타이는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안목과 전략을 통해서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렇지만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 미술계에서는 구타이의 시대를 앞서가는 전위적인 활동과 간사이 지방 출신이라는 편견으로 인하여 일본 내에서 구타이의 단독 전시나 학술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여러 글에서 드러난다. 이를테면 1986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의 전시 전에 대해서 오자키 신이치로(尾崎信一郎)는 구타이 초기 활동에 대해서 약 30년 동안 일본의 미술 비평의 문제로서 다루지 않았지만 이 전시를 통해서 이들을 재발견했고, 그룹의 활동의 의미를 재인식하였지만, 이 역시 외국의 평가를 역수입했다는 현상이 얄궂게도 반복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2012년에 도쿄의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린 구타이 회고전 <『구타이』-일본의 전위 18년의 궤적>전의 전시도록에서 전시기획자인 히라이 쇼이치(平井章一)는 일본의 전후 미술그룹 중에서도, 외국에서 이름이 알려진 미술가는 구타이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도쿄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였다. 반면에 구타이의 활동 거점이었던 간사이 지방에서는 효고현립 근대미술관과 아시야시립 미술관을 중심으로 구타이 해산 직후인 1970년대부터 구타이에 대한 회고전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도쿄도미술관에서는 3차례로 구성된 시리즈 전시인 전을 기획하였다. 이러한 전시들을 시작으로 일본의 현대미술 전체를 회고하고 역사화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으로까지 퍼져나갔다. 1985년 영국 옥스퍼드 근대 미술관에서의 과 앞서 소개한 1986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을 시작으로, 1994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소호에서의 <1945년 이후의 일본미술: 하늘에 대항하는 외침(Japanese Art After 1945: Scream Against the Sky)>전에 이르기까지 구타이미술 비롯한 일본의 현대미술은 전후 일본 미술, 혹은 일본의 전위 미술 이라는 주제를 통해 서구의 시각으로 해석되었다. 일부의 전통과 모던의 갈등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서구의 해석이 다시 일본 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폐쇄된 순환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구타이는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 접어들어 2009년 뉴욕 폴록-크래이스너 하우스 앤 스터디 센터(Pollock-Krasner House and Study Center)에서 열린 전, 그리고 2010년 스위스 루가노 주립미술관(Museo Cantonale dArte Lugano)에서 열린 전 등을 통해 그 전까지 구타이미술을 전후 일본미술의 틀에서 해석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의 국제적 동시성을 강조하는 전시들이 연달아 개최되었다. 이러한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시가 2013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 이다. 이 전시는 무엇보다 서구 미술의 기준으로 일본 미술을 해석하거나 특수한 일본성에서 독자성을 찾아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과거의 전시들과는 다르게, 기존의 평가를 비판함과 동시에 구타이미술의 국제적 동시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이 전시의 도록에서도 드러난다. 전시기획자인 알렉산드라 먼로(Alexandra Munroe)와 밍 티암포(Ming Tiampo)는 전지구화(globalization)와 문화 인류학을 연구한 아라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의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적인 시각을 통해서 구타이 전시를 기획하였다. 아파두라이는 저서에서 새로운 전 지구적 문화 경제는 더 이상 현존하는 중심-주변 모델들의 용어로는 이해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탈구적인 질서(disjunctive order)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화는 차이를 의미하지만 이것은 더 이상 분류학적이 않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주장은 1980년대에 문화다양성이나 다문화주의적인 측면에서 문화를 바라보던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관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구와 비서구의 현대성은 모두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동시대적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구타이가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평가를 거치면서 재고의 대상이 되어 온 배경과 그 과정을 고찰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연구를 통해서 구타이미술과 구타이 그룹이 활동하던 당시의 일본 안팎의 평가를 분석할 수 있었다. 또한 해산 이후에도 구타이는 회고전을 거치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재조명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재조명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1970년대에는 간사이 지방 출신의 구타이 그룹을 일본 내에서도 알리기 위해서 간사이 지방의 미술관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실험적인 정신을 강조하는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1980년대에는 일본 안팎으로 전후 일본미술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고, 전후에 활동한 다른 미술가들과 함께 구타이는 전위적인 그룹으로서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다른 전후 일본미술가들을 평가하는 기준 안에서 구타이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는 한계를 지닌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나 구타이를 단독으로 소개하는 전시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시기의 전시들 역시 서구의 시각에서 구타이를 평가하였다는 점에서 2000년대 이후의 평가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앞서 소개한 2000년대 이후 외국에서의 구타이 회고전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구타이가 당시 서구 미술계와 교류하며 평행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여 이를 철저하게 검증함으로써 구타이미술의 동시성(contemporaneity)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제 미술계에서 비서구 미술에 주목하는 담론 속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서 약 60년 동안 변화해 온 구타이미술에 대한 평가들을 분석함으로써 국제 미술계 속에서의 일본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구타이가 활동하던 시기에 존재했던 일본과 서구의 각자의 입장에서 당시의 미술계의 상황을 조망할 수 있으며, 그룹 해산 이후에 소개된 재구축전과 학술연구를 통해서 변화된 구타이에 대한 평가를 파악함으로써 국제 미술계의 담론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양상으로 변화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구타이의 미술활동과 재구축전에 대하여 고찰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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