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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적인 것'의 전시 무대로서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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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문한알

Advisor
김정희
Major
미술대학 협동과정미술경영
Issue Date
2016-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휘트니 미술관휘트니 비엔날레미국 미술미국성(Americanness)문화정치학내셔널리즘다문화주의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 미술경영, 2016. 2. 김정희.
Abstract
본 논문은 휘트니 미국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이하 휘트니 미술관)이 제시하고자 했던 미국 미술이 무엇인지, 그리고 휘트니 미술관 전시에 미국적인 특성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연대기별로 분석한 연구이다.

1930년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 1875-1942)는 당시 미국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기능하던 뉴욕에 살아있는 미국 미술가를 지원하고 동시대 미국 미술에 헌정하고자 휘트니 미술관을 설립했다. 휘트니 미술관을 미국 미술을 다루는 기관이라 정의하고부터 휘트니 미술관 관계자들은 미국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미국적인가, 무엇이 미국을 구성하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위의 질문에 대한 기관의 반응은 시대를 반영하며 변화하는 미술의 특성과 같이 당대의 미국 정치,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이슈에 따라 변화했으며 단일하지 않았다.

휘트니는 미술관을 설립하기 이전인 1907년부터 개인 후원자로서 미술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미술계는 유럽의 미술 경향에 영향을 받은 아카데미즘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시기로 진보적 성향의 젊은 미술가가 전시의 기회를 얻거나 명망 있는 컬렉터와 관계 맺기가 어려웠다. 휘트니는 이러한 흐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자국의 미술에 주목하는, 나아가 살아있는 미국 미술가를 지원하는 사설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그녀가 선택한 후원 방식은 주로 전시 기회 제공과 작품 구매였으며 스튜디오 운영을 통해 미술가들을 전인적으로 후원했다. 위와 같은 설립 목적과 운영 방식은 휘트니 미술관의 정책 수립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1930년 미국 미술과 살아있는 미국 미술가를 지원하는 목표 아래 설립된 휘트니 미술관은 작가 중심적인 운영 정책을 펼쳤다. 미술관이 펼친 정책은 심사와 수상제도를 철폐하고, 대신 직접 미술가의 작품을 구매하거나 전시에 참여하는 미술가가 직접 출품작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또한 휘트니 미술관은 동시대 미국 미술의 전반적인 경향을 보여주기 위해 비엔날레를 개최했는데, 비엔날레에서는 비교적 균등한 비율로 다양한 경향의 미국 미술을 포용함으로써 미술관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1969년 휘트니 비엔날레 도록에서 모든 미국 미술의 경향을 한 전시에 고르게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한계를 인식했다고 밝히기 이전까지 유지된다.

미국 미술이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한 휘트니 미술관의 시도는 미술관이 설립된 대공황 시기부터 당대 미술계 및 사회적 배경과의 밀접한 연관 아래 이루어졌다. 대공황으로 인해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던 미국 사회에서는 자국 보호주의와 민족주의가 사회의 지배적 사조로 대두되었고, 이러한 사조에 힘입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운동 및 정책들이 사회 각 층에서 수행되었다. 이는 자연히 미술계에도 영향을 주어 미국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유럽의 모더니즘 미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미국의 진실한 풍경이 무엇인지 규명하고자 한 움직임을 중심으로 미국의 장면(American Scene)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때 휘트니 미술관은 하나의 양식이나 사조에 집중하기 보다는, 동시대 미국 미술계에서 생성되고 있는 다양한 움직임들을 전시를 통해 반영하고자 하면서 동시대 도시의 일상적 삶, 중·서부 지역 중심의 이상적인 풍경(landscape), 사회의 각 계층 간의 문제가 반영된 작품 나아가 국가의 단결을 위해 제작된 국가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작품들에 주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미국에는 반공주의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가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미술을 냉전의 무기로서 활용했다. 이는 1950년대 후반 미국 미해외공보처(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 USIA)가 개입하면서 국제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특히 논문에서는, 미해외공보처가 주관하여 개최한 《미국 국전(American National Exhibition)》분석을 통해, 당대 미국 문화정책은 문화 교류라는 외관상의 취지 이면에 전체주의 체제의 소련에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선전하는 전략적 도구로 미국 미술을 활용하였다는 유의미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휘트니 미술관이 《미국 국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것이다.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소련에서의 《미국 국전》이 종료된 후, 1959년 10월 28일부터 11월 15일까지 《미국 국전의 회화 및 조각 작품전(Paintings and Sculpture from the American National Exhibition In Moscow)》이 개최되었다. 당시 휘트니 미술관 관장이었던 로이드 굿리치(Lloyd Goodrich)는 국전의 작품 선정 위원으로 참여하고 이후 휘트니 미술관에서 국전에 관한 전시를 개최하였다. 나아가 굿리치는 《미국 국전》에 관한 「미국 회화와 조각 1930-1959: 모스크바 전시(American Painting and Sculpture 1930-1959: The Moscow Exhibition)」라는 글까지 직접 썼다. 여기서 그는 당대 미국 미술의 특성을 재현주의·구상주의·표현주의·추상주의 등 다양한 양식들을 넘나드는 다양성에서 찾았다. 그에게 있어 이러한 전시 구성은 전체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미술에 대해 한 가지의 양식, 즉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만을 인정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전시가 표방하고자 했던 미국 미술의 다원성이, 개인의 자유와 제한 없는 다양한 사회적 실험들에 대해 포용적인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냉전 시기 이후 미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 전반 영역에서 주변화되었던 이들이 인종, 성적 지향성, 소수민족을 둘러싼 차별 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차이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문화상호주의, 다문화주의 그리고 정치적 공정성과 같은 개념이 상징화된 문화의 범주로 자리 잡았으며 1990년대 미국에서 다문화주의는 하나의 가치관이자 규범으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맞추어 휘트니 미술관은 적극적으로 타자에 대한 개념과 이 시기의 미국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자 했다.

1993년의 휘트니 비엔날레는 기존의 경계에 고착되지 않고 미국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다원화된 사회적 갈등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했다. 휘트니 미술관이 나타내고자 했던 문화적 경계선에 대한 입장은 경계는 미리 정해져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의해 비로소 구성되는 것이며, 언제나 새로이 재구성될 수 있고 물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관의 기획이 전시기획으로서 적합한 것인지, 나아가 그들의 문제의식이 전시에서 제대로 구현되었는지에 대한 사회 각층의 회의적인 평가가 있었다. 즉 휘트니 미술관의 전시가 미적인 가치를 추구해야하는 미술관 본래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지, 나아가 기획 자체는 정당화될 수 있더라도 결국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규정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경계를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각 백인/흑인/라틴아메리칸/동양인/네이티브아메리칸, 여성/남성, 게이/레즈비언 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존의 경계들을 단지 세분화시키고 보다 공고히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휘트니 미술관의 미국 미술에 대한 탐색은 2015년 5월에 뉴욕 매디슨 에비뉴에서 미트패킹지역으로 이전하며 개최한 개관전에서도 발견된다. 이 전시는 《알아보기 힘든 미국(America Is Hard to See)》이라는 전시명 아래 개최되었다. 휘트니 미술관은 이 전시에서 미국 국가의 정신(ethos)과 국민을 단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고백하며, 매 시기별로 미국 미술 무엇이어야 했고, 어떤 의미를 가져야 했고, 실제로 어떤 것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여러 입장들과 태도들을 되짚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몇 비평가들은 전시에 참여한 미술가 대부분이 유럽계·백인 미술가였다는 점에서 이미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을 대변하기에는 전시의 기획 자체가 편협하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나아가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 미술관이 아니라 북미의 미술관이라며 기관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위의 모든 논의를 종합하면, 매 시대별로 휘트니 미술관이 보여주고자 했던 미국 미술은 시대별로 상이한 준거 기준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다양함으로 표방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휘트니 미술관은 이를 통해 미국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무엇이 미국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동시에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자는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E Pluribus Unum)라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연결해볼 때, 휘트니 미술관의 시도는 미국 미술을 하나의 고정된 상이 아닌 다양한 예술적 활력들로서 제시함으로써 미국적 이념 또한 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예술적 활력이 시대별로 그 정치·사회·문화적 조건과의 관련 하에 각각 상이하게 규정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시대별로 사회가 요청하는 미국적인 특성이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휘트니 미술관이 제시하는 미국적인 것 또한 각 시기에 맞게 제시되었다. 물론 이렇게 제시된 미국 미술과 미국적인 것 또한 시대에 따라, 혹은 이 결과물들을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 상이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고 또 비판받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휘트니 미술관이 미국 미술의 특성으로서 보여주고자 했던 다양함 또한 이를 제시한 기관의 시각에서의 다양함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양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의제기가 가능하다.

본 연구자는 국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다양한 갈등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때로는 하나의 목표로 단결하면서 커다란 사회적 흐름을 만들었던 시기로 크게 대공황 시기, 냉전 시기, 다문화주의가 대두된 시기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각 시기마다 휘트니 미술관이 무엇을 미국 미술이라고 제시하고 있는지, 더불어 미국성을 둘러싼 미술계의 담론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고찰해보았다.

나아가 국내 학계의 경우, 휘트니 미술관을 연구한 논문들은 주로 미국의 정체성 논의의 전개 양상이나 후원의 성격을 분석하기 위해 휘트니 미술관을 하나의 사례로서 분석하거나 본 기관이 개최한 개별 전시에 주목한 반면, 본 논문은 휘트니 미술관의 미국 미술에 대한 관점을 도출해내기 위해 기관이 개최한 전시와 이와 관련된 전시 담론들의 전개 양상을 중점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또한 본 논문은 미술관 설립 초기인 193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전시를 연대기별로 고찰함으로써 한 기관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가의 미술을 어떻게 반영해나가는지 규명해보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8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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