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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기에 있어서 인지부조화적 상황과 자율적 그리기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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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세연
Advisor
김춘수
Major
미술대학 서양화과
Issue Date
2013-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그리기의 불가능인지부조화적 상황반복된 무기력내용이 소거된 형식그리기의 자율성선긋기직접성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서양화과, 2013. 8. 김춘수.
Abstract
누구나가 얼마간 했을법한 생각일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과 동시에 그리기를 주저하고 멈추게 만들었던 나의 고민거리는 그린다고 하는 전반의 행위가 과연 어떻게 해서 정당함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것은 일정한 인간의 생김새나 각각의 사물의 형태들이 왜 특정하고 고유한 존재방식을 지니느냐와 같은 멍청하고도 정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특별히 그것은 내가 그리고자 하는 바에는 대상이나 이름이 없었으며 일종의 회화적 와해나 궁극의 상태와 같은 것에 관한 열망만으로서 그린다는 행위를 대했기 때문에, 그리기의 문제 중에서도 일정의 내용적 주제에 관한 질문들을 다루기보다는 그리기라는 상태의 의미에 관한 과제가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흰 바탕이나 네모진 캔버스와 나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 재료들은 나에게 필연성을 갖는 것들인가? 이 색은 아름답지만 나를 통해 바로 여기에 칠해지기에 타당한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운용해도 좋다는 애초의 합의들은 나에게 정당하며 나와 떳떳한 관계에 놓여있는가? 형과 색의 기준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원론적이며 강박적인 질문들은 나에게 그리기라는 환상을 극복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으며, 본 논문은 이러한 질문들과 더불어 어떠한 이유로 하여 그리고자 하는 이를 그릴 수 없게 만드는지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 삼고자 하였다. 또한 이같은 의식 하에서 이루어진 그리기 작업이 어떤 내용과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궁극적으로 그리기의 불가능을 극복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그리는 행위는 그리는 이의 신체와 정신이 그린다는 과정과 형식의 전반을 통해 위화감을 극복하고 친화되어, 그 결과에 있어 필연적 통일감으로서 그의 자의식이 세계 속으로 통합될 수 있게 하는 활동이다. 의식이 자율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의 믿음과 추진력은 그 필연적 완성에의 의지를 실현코자 하였고 이는 회화의 내용과 형식의 문제에 있어 미완의 정점에 놓인 자율성 내지는 양자의 와해의 과제로 이어져왔다. 유아의 그리기 행동의 경우, 지각의 유동성으로 인한 자율적 사고의 가능성이 개념적으로 미분화된 세계를 살아가는 동물의 상태와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이는 자율성에의 의지나 형식에 관한 신념과도 상관없는 일종의 도덕적 무지·무구의 상태이다. 그러나 가령 칸딘스키의 경우를 볼 때, 그는 사물의 본성이 회화의 형식요소들과 그것들의 조형적인 결합들로 환원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믿고 그러한 정신에 입각한 이론을 세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회화를 전개하였다.
관념과 실재의 구분이라는 측면에서 정신과 신체의 분리를 인정하는 인간에게 있어, 그리기란 그 내용과 형식의 불가능한 조화가 가능해지고자 소망하는 상태이다. 그리기를 가능케 만드는 것은 그 과정에서 기대되는 세세한 관계들의 연속성에 관해 친화적인 화가의 의지이지만, 그리는 이의 순수한 기대나 그리기의 노동은 의미들의 인과관계 속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며 그 결과 또한 임의로 거기에 부착되어있다. 따라서 그리기에 의한 궁극의 환상, 즉 화면의 순수한 자율적 실현이나 직접성이라고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리기는 자신의 의지의 내용이 그 형식에 합목적적으로 부합할 것이라는 암시적인 신념에 의한 활동이며 따라서 자기신화적 권위에 봉사될 수 있는 활동이다. 이와 같은 불만이나 조바심은 그리기의 제 과정들을 개별적인 일들이 결합된 생경한 상태로 의식하게 하고 점차 그 연관관계들을 서로 이질적이고 허구적인 것으로 보게 한다. 그리기는 우연히 거기에 실현되어있으며, 그리기의 자율적 가능성과 그 형식적 완성의 관계가 허구적이라는 의식은 본연의 의지와 바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필연성에의 회의는 일말의 형식언어에 관한 불신과 혐오를 낳게 하고 그리고자 하는 이를 절망하게 만들며 새로운 비약(spring)을 소망하게 한다.
그리기는 불가능한 그리기의 상태에 반하는 일종의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적 상황이다. 소위 자동기술방식이라는 것은 우연을 수용하고 거기에 의식을 자유로이 맡겨 어떤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기 보다는 마치 일종의 안무태세와 같이 결연한 종류의 작심을 미리 요구하며, 또한 알아내지 못한 의식의 내용들 중에 강력한 것을 무의식의 내용으로 꼽을 수도 있다. 그리기는 자동기술적, 비의지적인 상태가 아닌 자의적 태도에 의한 것이다. 그리기는 자신의 형식언어와 그림이라는 사물이 정당한 연관관계를 갖고 서로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신념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리는 신체와 정신이 하나의 필연적 상태로 화해할 수 있다는 소망으로서 이어져갈 수 있다. 나에게 있어 그 불가능의 상황은 그리려는 의지를 무기력하게 해 타성이나 습관과 같은 반복적 행위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의지의 무기력적 상황은 일종의 극단적·임의적 결단으로서의 그리기 행위를 시도하게 하였다. 의미를 여과한 결단적 행위의 존재방식이 의도되었으며,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선긋기의 방식의 그리기가 나타나게 되었고, 나아가 이와 같은 그리기 행위 자체를 대상화하거나 유희적으로 대하고자 하였다.
그리기를 소망하는 이는 자율적 그리기라는 모순과 인간이 개념적으로 이원화된 사고를 하는 존재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개별화된 것의 무의미와 우연의 상태로부터, 무력하지만 실은 의미있게 존재하고자 소망하는 의지를 가진 존재의 상태를 긍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그리기를 위하여 직접성이라는 이상과 그것을 향하는 형식언어와의 관계를 삶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언어는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화 과정을 수행하는 흔적(trace)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데리다의 말처럼, 형식 언어의 존재방식은 그것에 담겨지고자 한 원래의 의미 혹은 생성되는 의미를 그 자신을 통해 찾는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소망을 가진 화가는 스스로의 그리기로서 의미나 존재 자체로 비약할 수 있는, 의지를 동반하는 고유한 실천을 감행해야 한다. 그리기라는 이상은 내용과 형식이라고 하는 이원론을 통해 극복될 수 없지만 그 비밀한 관계를 여과하기 위해서 존재의 한계를 인정함과 함께 새로운 삶을 위한 존재방식이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8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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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Fine Arts (미술대학)Dept. of Fine Art (미술학과)Painting (서양화전공)Theses (Master's Degree_서양화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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