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ations

Detailed Information

20세기 전반기 가야금음악의 전개 양상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송정민

Advisor
이지영
Major
음악대학 음악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가야금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음악과, 2017. 2. 이지영.
Abstract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궁중음악, 풍류방음악, 병창, 산조, 민속기악 등이 유성기음반, 라디오방송, 공연 무대 등에서 가야금음악으로서 선보이게 되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시점인 20세기 전반기는 가야금음악의 역사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다루어져야 한다. 본고에서는 20세기 전반기 가야금음악에 관해서 『매일신보』,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의 기사들, 라디오로 방송되었던 음악에 대한 기록, 유성기음반 등을 통해 고찰했다. 그 결과를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궁중음악은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라디오방송, 유성기음반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활동했던 궁중음악 가야금연주자로는 함화진, 명호진 등을 들 수 있고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영산회상 계열 음악이었다. 그러나 궁중음악이 본격적으로 가야금음악의 레퍼토리로서 연주되는 것은 1930년대 이습회의 활동 이후였다. 현행에서 가야금정악이라고도 분류되는 궁중음악이 가야금의 레퍼토리로 적극적으로 채택 되는 시기는 20세기 전반기, 그 중에서도 193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궁중음악과 비교할 때 풍류방음악이 오히려 좀 더 이른 시기에, 그리고 훨씬 빈번하게 라디오방송 또는 공연무대에서 소개되었다. 1920년대에 가야금으로 풍류방음악을 연주했던 이들은 주로 권번 소속의 기생들이 많았으며 간혹 민간의 악사도 있었다. 그들의 레퍼토리는 대부분 조선음률이라고도 불렀던 영산회상 계열 음악이었다. 풍류방음악은 궁중음악과도 레퍼토리가 겹치면서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권번의 쇠퇴로 음악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된 기생들보다는 이왕직아악부 출신의 악사 또는 민간의 연주자들이 주도적으로 연주하게 된다.
한편 20세기 전반기에 많은 인기를 누린 가야금병창은 193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서면서 점차 쇠퇴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금병창을 연주했던 이들 중에는 권번 출신들이 많았는데, 이는 당시 판소리와 창극의 인기로 인해 가야금으로 반주하며 판소리의 단가 등을 부르는 병창이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또한 기생들의 짧은 학습 기간이라는 조건에 산조와 같은 음악적 창조 능력이 결부되어야 하는 레퍼토리보다는 병창이 더 적절한 레퍼토리였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발전을 거듭하며 중요하게 전승되고 있는 음악인 산조는 1930년대 중반에 가야금 레퍼토리로서 더욱 주목 받는 음악이 되었다. 이는 판소리의 유행에 편승해서 병창이라는 장르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된 가야금이 점차 그 음악적 영역을 확대해 나가서 독자적인 기악곡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로는 충청도 이남 및 전라도 지역에서 판소리 및 풍류의 음악문화를 접하고 학습한 것이 배경이 되는 심상건, 정남희, 강태홍과 같은 음악인들이었다.
이렇게 각 장르별로 20세기 전반기 가야금음악이 부각되면서, 잡가, 민요 또는 판소리 등의 성악 반주 및 민속 기악의 연주까지도 가야금연주자가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20세기 전반기 가야금음악, 가야금연주자의 성장을 보여주는 결과라고도 하겠다.
이상의 논의에 따르면 20세기 전반기, 특히 1930년대 이후 가야금은 궁중음악, 풍류방음악, 병창, 산조 등을 연주하는 독주악기로서 근대라는 시대에 맞는 기악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악기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궁중음악 및 풍류방음악이 20세기 전반기 이후 가야금정악으로서 정립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역시 같은 시기에 병창과 산조는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민속악으로서 정립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1930년대까지 이어지는 가야금병창과 산조, 즉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민속악의 유통은 궁중음악과 풍류방음악을 포함하는 가야금정악에서도 가야금이 부각되는 데에 영향을 주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9616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Altmetrics

Item View & Download Count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