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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위공무원집단의 변화와 연속성: 1948~1972 : 국장급 이상 공무원의 사회적 배경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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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권성훈

Advisor
엄석진
Major
행정대학원 행정학과(정책학전공)
Issue Date
2012-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First RepublicSecond RepublicThird RepublicSenior executivesSocial backgroundsSNA(social network analysis)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 행정학과(정책학전공), 2012. 8. 엄석진.
Abstract
한국의 정치체제에서는 과거 오랫동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와 정부 관료집단이 여타 정치세력들을 압도해 왔다. 다시 말해, 정부 관료제는 정책발상에서부터 결정과 집행에 이르기까지 정책의 전 과정을 주도할 수 있었으며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책임이 있었다. 그 결과, 행정부 우위의 이러한 통치권력 배분은 정책과정에서 국회와 정당의 참여를 배제하였다.
따라서 역대 대한민국 정부 안에서 어떠한 특성과 사회적 배경을 지닌 사람이 어떠한 지위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는가?에 대한 물음은 정부와 공공정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연구는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제 3공화국이 끝난 1972년까지 한국 고위공무원집단의 변화와 연속성을 밝혀 이 시기를 보다 객관적이고 총체적으로 인식하는데 기여하고자 했다.
본 연구는 한국 고위공무원집단의 변화와 연속성을 경험적으로 밝히기 위하여 국장급이상 고위공무원들의 명단과 사회적 배경들을 조사하고 분석하였다. 이렇게 확보한 사회적 배경은 연령대, 출신지, 출신학교, 전공, 전직, 친일 여부이다. 각 사회적 배경별로 전체 고위공무원집단, 정무직 · 일반직 고위공무원집단, 국가기구별 고위공무원집단별로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기존 연구들과 차별성을 두고자 6가지 사회적 배경을 보다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사회연결망분석(Social Network Analysis: SNA) 역시 전체 고위공무원집단, 정무직 · 일반직 고위공무원집단, 국가기구별 고위공무원집단별로 비교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한국전쟁과 5 · 16이 연속성을 보이던 한국 고위공무원집단에 큰 충격을 가하였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국전쟁의 경우 전쟁 중과 후에 행정경험이 풍부한 전 총독부 관리들이 정부의 고위직으로 대거 진출하였으며 5 · 16의 경우 군사 출신의 관료제로의 침투가 관료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이루어졌었다. 특이점으로는 다른 기구들에 비해 생산기구는 5 · 16 충격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배경별 분석은 다음과 같다. 연령대의 경우, 가장 큰 변동은 5 · 16 이후에 40대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반면 50대가 큰 하락세를 보인 것이었다. 이것은 군인의 관료제로의 침투와 군사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대규모 숙청에 의해 이러한 변동이 생긴 것이었다.
출신지의 경우, 건국 이후 인구 비례와 비슷한 수준으로 구성되었던 출신지 비율은 5 · 16 을 전후하여 큰 변화를 겪었다. 영남지방 출신이 과다 대표되고 호남지방 출신이 과소 대표되며 두 지방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정무직에서 이러한 변동을 더욱 크게 나타났다.
출신학교의 경우, 제 1공화국 시기에는 일본유학과 경성제국대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5 · 16 이후 급격히 하락세를 보였으며 이러한 하락세는 서울대의 가파른 상승세와 (일본)육군사관학교의 등장으로 상쇄되었다. 이와 더불어 고려대의 약진 또한 힘을 보태었다.
전공의 경우, 법학은 하락세를 보이다 3공화국에 들어 안정세를 보였으며 모든 시기에 걸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경영 · 경제학은 건국 이후부터 72년까지 줄곧 상승세를 보였으며 농학은 3공화국 이후에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둘의 명암은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로 이해가 가능하다. 공학은 한국전쟁 직후에 전후 복구 및 경제 발전에 있어 필요했던 기간산업을 구축하는데 공학 전공자에 대한 행정수요로 인해 일반직과 생산기구에서 눈에 띄게 급증했으며 이후에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였다.
전직의 경우, 충원방식의 차이로 인해 정무직과 일반직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다양한 전직이 시기마다 다양한 비율을 보이는 것과 다르게 일반직의 경우 직업공무원제의 확립과 함께 행정 출신이 모든 시기에 걸쳐 가장 큰 비율을 점하고 있다. 이러한 행정의 경우, 49년과 56년 사이에 큰 폭으로 오르는데 한국 전쟁과 전후 복구에 있어 실무적인 행정 수요의 필요에 의해 생산기구에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5 · 16 이후 군인 출신의 증가를 확인할 수 있는데 72년 유신체제 직후에 군부를 약화시키려는 박정희 대통령의 견제에 약세를 보였지만 정무직에서는 오히려 증가세를 보인 것이 특징이다.
친일여부의 경우, 56년에 정점을 찍었는데 49년과 56년 사이에 보였던 상승과 정무직이 일반직에 비해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전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의 영향이 컸었다. 다시 말해, 행정경험이 풍부한 전 총독부 관리들이 정부의 고위직으로 대거 진출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의 친일 경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코호트(cohort)의 교체로 인하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락세를 보인다. 기구별로 살펴봤을 때는 시기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합의기구, 집행기구, 통합기구, 생산기구의 순이었다.
사회연결망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체 고위공무원집단의 연결망을 봤을 때, 일본유학 · 행정출신 하위그룹이 주 하위그룹(Main Sub-Group)으로 존재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약세를 보였으며 이러한 하락세는 3공화국 시기에 들어와서 더욱 더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박정희 정부의 관료제의 인적 구성은 이전 시기와 단절적인 성격을 띠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본)육군사관학교 · 군학전공 · 군인출신의 하위그룹과 서울대 · 법학전공 · 행정출신 하위그룹 그리고 고려대 · 경영·경제학전공 · 행정출신의 하위그룹의 등장과 충원은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유신체제에 들어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에 대한 견제로 40대 · 서울대 · 행정출신 하위그룹은 더욱 더 공고화되며 이전과는 크기와 밀도 등의 면에서 차원이 다른 주 하위그룹(Main Sub-Group)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정무직과 일반직 고위공무원집단의 연결망을 비교해봤을 때, 전체적으로 둘 모두 전체 고위공무원집단의 그것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기는 하지만 정무직은 일반직에 비해 조금 늦은 변화의 크기와 속도를 보이는데 정무직과 일반직으로의 진입에 소요되는 시간적 차이를 고려해본다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차이로 받아들여진다.
기구별 고위공무원집단의 연결망을 비교해봤을 때, 합의기구와 생산기구 둘 모두 전체 고위공무원집단의 연결망의 구조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지만 주 하위그룹(Main Sub-Group)이 각각 (일본)육군사관학교 · 군학전공 · 군인출신과 40대 · 서울대 · 법학전공 · 행정출신인 것이 다르다. 특히 40대 · 고려대 · 경영·경제학 · 행정출신의 하위그룹이 생산기구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점 역시 특징적이다. 통합기구와 집행기구의 경우에는 두 기구 모두 하위그룹의 도출이 어려웠으나 두 기구 모두 3공화국 이후에 서울대 · 행정 출신과 (일본)육군사관학교 · 군학전공 · 군인출신의 하위그룹이 연결망을 양분하는 모양새를 띄지만 유신체제 직후인 72년에는 서울대 · 행정출신의 독주로 양상이 바뀌기는 하지만 합의기구와 생산기구의 그것과 비교해서는 상당히 성긴 연결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결망의 밀도와 중심성 지수를 비교해봤을 때, 특히 일반직과 생산기구의 연결망에서 연결망의 밀도가 올라가는 반면에 중심성 지수가 낮아지는 현상이 한국전쟁 시기와 60년 이후 경제 발전의 시기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이 당시의 일반직과 생산기구의 사회적 자본이 그 규모의 확장과 함께 증가하는 패턴을 보이며, 거대하고 응집성이 높은 연결망의 모습을 지녔던 것인데 이러한 특성이 전후 복구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판단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정부 수립 이후 25년 가운데 7개년을 선정하여 해당 연도의 고위공무원집단 각각의 사회적 배경과 연결망 변화를 전체 고위공무원집단, 정무직 · 일반직 고위공무원집단, 기구별 고위공무원집단으로 비교분석하여 한국 고위공무원집단 전체를 경험적으로 살핀 거시적 연구이다. 따라서 향후 본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연구가 보완된다면 정부와 공공정책을 이해하는데, 나아가 대한민국 국가를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The existing studies on Korean bureaucratic system seemed to have failed in understanding its distinct characteristics comprehensively and historically. So this study aims to analysis senior executive group of Korean government and their social background from 1948 to 1972. Based on these results, this study conducted 'a social network analysis(SNA)' with NetMiner 4.0 for visualization.
The research questions of this study are following: first, who led the Korean government? second, what attributes had they shared from 1948 to 1972?
The study found that for ages, the rate of people in 40s had been increase after Third Republic because of advance of soldiers and large-scale purges. For native place, there was no significant change except Young-nam area's increase and Ho-nam area's decrease since Third Republic. These change is related to regional sentiment deeply. For school, groups studying in Japan were mainstream in the First Republic era and the Second Republic era. But this trend also drew a curve falling since the Third Republic. Instead of these group,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Korea military Academy, Korea University filled the vacant position. For major, law had the highest percentage in the whole period. Although agriculture took a vertex in the First Republic, agriculture had decline rapidly after the Third Republic. In contrast, economics and military had high growth in the percentage of majors. For former job, administrators had the highest percentage in the whole period. Soldiers had increase in the Third Republic because of May 16 coup d'etat led by a few military officers. One notable thing in this part is educator's relatively high percentage in whole period. They seemed to have been acted as' think tank' even within the Third Republic. For pro-Japanese, at first, there were a very small. But, after Korean War, there had been increase rapidly. In particular, political service's rate of increase is bigger than others.
SNA's results support these analysis. SNA's results are as following: The groups based on studying in Japan & law major were main group in the First Republic and the Second Republic. But, over time, these continuities were down and the new main group filling a vacant position is climbing. This new main group was based on Seoul national university & law · politics major & administrator.
Analysis showed that in 1948,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constitution were established and Korea had a good opportunity to institutionalize new bureaucracy system. However, despite some controversy over the government staffing, the South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had followed in the footsteps of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maintaining its colonial bureaucratic system. And the bureaucracy was used as a means of prolonging the rule of dictator functioning only as his tools during the first Republic.
The Korean War provided a decisive momentum for the transformation of our bureaucratic system. The transformation of the bureaucratic system seemed inevitable not only for the urgently needed economic restoration from the devastation of war but also to tide over the crisis in the system.
In Second Republic, the government of Democratic Party, though short-lived, worked out ambitious plans for the transformation of bureaucratic system into democratic and economy-oriented. Nevertheless, at that time, government also had similar staffing with previous government. In other words, Second Republic's government staffing was on the extension of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study found that changes of bureaucracy was maximized since the Third Republic. Attempts of Democratic Party were all frustrated by the May 16 coup d'etat led by a few military officers. The coup came as a shock pressing for the change in the bureaucratic system. Entering the Third Republic, the 'military-bureaucratic system' was formed by the vertical integration of vertical integration of military bureaucrats and civilian technocrats. At the same time, the scales, scope and functions of bureaucratic system were gradually expanded.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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