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와 순수과학자 사이에서: 수사를 통해 본 크레이그 벤터의 경계 작업

Abstract

크레이그 벤터는 과학자이자 생명공학 기업가로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인공 생명체 합성 등 모두가 주목할 만한 연구들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나, 그를 다룬 학술적 연구는 매우 부족했으며 특히 그의 과학 활동은 과학의 상업화에 대한 부정적이고 단편적인 상징으로만 여겨져 왔다. 본 논문은 과학자들이 현대 과학의 상업화 지형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행위자라는 과학기술학의 연구들에 기초하여, 크레이그 벤터가 사용한 수사들을 분석하면서 그가 과학과 기업의 두 영역 사이에서의 이중적인 경계 작업을 통해 전략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위치 지어가며 생명과학의 상업화 지형을 만들어 나간 능동적인 인물이었음을 보이고자 했다. 벤터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기업의 자본을 지원 받고 셀레라라는 기업을 설립했으며 공공 컨소시엄 연구자들과 다른 유전체 분석 방식을 사용하여 그들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그는 상업적인 연구 환경의 장점과 기업가적인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는 수사들을 활용하여 공공 컨소시엄 연구자들과의 경계 작업을 수행했다. 먼저 그는 속도라는 수사를 통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인간의 유전체를 분석하여 프로젝트의 달성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공 컨소시엄 연구자들을 느리고 지루하며 낡은 방식을 사용하는 중세 시대의 수도사로 비유하였다. 또 그는 헨리 포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헨리 포드의 경영 방식의 특징이었던 자동화, 공장식 환경 등의 수사를 내세워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을 드러내었으며, 생명공학 기업가로서 비전을 선전하고 이를 사업 모델로 제시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수사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이렇게 기업의 가치를 드러내는 수사들을 통해 공공 컨소시엄 연구자들로부터 자신을 성공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었으며, 기업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기업가들과도 경계를 지으며 금전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기업가가 아닌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순수 과학자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생명공학 기업은 기본적으로 과학 기반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성과가 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좌우한다. 따라서 과학자 사회에서 동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과학자 사회의 보상 체계를 따라야 했다. 벤터는 이를 위해 과학자만의 특징인 이해관계 초월, 공유주의와 같은 규범을 수사적 자원으로 활용하고 순수 과학자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독립 비영리 연구소, 특허를 반대했다는 수사들을 통해 이해관계 초월 규범을, 무차별적인 특허를 종용하는 경영진들의 압력 속에 공유주의의 규범을 지키는 순수 과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처럼 본 논문은 크레이그 벤터가 사용한 수사들과 그의 이중적인 경계 작업을 통해 그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벤터를 포함한 현대 과학자들의 과학 활동에 일반적인 함의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벤터의 경계 작업은 과학자들이 상업화를 비롯한 현대의 과학 지형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자들의 설득 작업, 즉 과학 활동에서 수사학적인 측면이 효과적으로 또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