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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先 交遊詞의 '以詩爲詞' 傾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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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강영

Advisor
류종목
Major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Issue Date
2015-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張先交遊詞以詩爲詞題序典故唱和士大夫詞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중어중문학과, 2015. 2. 류종목.
Abstract
北宋 詞壇의 慢詞 創作에 柳永과 더불어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張先은 대부분의 北宋 初期의 詞人들이 晩唐五代의 詞風을 그대로 계승하여 사 창작을 했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시도를 통해 樂工의 詞에서 士大夫詞로 전환해가는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다. 특히 사대부 사이의 교유 활동을 내용으로 삼은 交遊詞를 본격적으로 창작한 상황은 張先에게서 최초로 보이는 것으로 전통적으로 詩의 창작 범주에 해당하던 交遊를 詞로 창작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詞라는 문체는 燕樂의 유입과 함께 발생한 문체로 술자리의 오락 수단으로서 발전해왔다. 晏殊와 歐陽脩 등의 詞人 또한 이 같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張先은 오락으로서의 사에 적합한 艶科의 작품을 창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交遊를 사로 창작하여 言志라는 목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南唐詞와 북송 초기의 일부 작품에서 사에 뜻을 담아내고 있기는 하나 그들의 사가 독백의 형식을 취하여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에 머물렀던 반면 장선의 交遊詞는 특정 대상에 대한 眞情을 토로하여 전달했다는 면에서 기존의 사와는 달리 쌍방향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였다. 교유사가 기존의 사와는 다른 풍격을 형성하며 以詩爲詞의 경향을 갖게 된 것은 그것이 창작된 상황, 목적 그리고 작품의 대상이 기존의 사와 다르기 때문이다. 사대부 집단 내부에서 교유라는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자가 실제 전달하고자 하는 개인적 감정을 지식 계층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창작된 작품들이기에 문인 사대부의 문아한 심미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詩化되는 모습들이 나타났으며, 이런 모습들이 하나의 새로운 풍격을 형성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장선은 장수한 詞人으로 노년에 이르러서도 젊은 문인들과 활발히 교유를 이어갔다. 교유사는 장선이 이들과 교유하는 연회의 자리에서 대부분 창작되었기에 이시위사의 창작 흐름이 후대 사인에게 전달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본고는 장선의 교유사에 드러나는 이시위사의 측면을 분석하였다.
본고에서는 기존에 사로 창작되지 않던 교유라는 제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여 사를 창작한 상황에 주목하였으며, 어떤 배경 하에 장선이 교유사를 창작할 수 있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당시 詞壇의 상황과 장선의 사에 대한 태도, 그리고 장선의 생애에서 교유사의 창작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요인의 세 가지 측면에서 그 배경을 분석하였다. 당시 사단의 일부 문인들은 이미 艶科의 사 창작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욕구를 작품에 표출하는 경우가 적게나마 생겨났다. 이 같은 변화로 사의 성질은 점차 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는데 이런 흐름이 장선이 전통적으로 시의 범주에 머물러 있던 교유를 내용으로 사를 창작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장선이 사를 지으면서 다양한 詞調와 제재, 형식을 사용한 것은 그가 사를 다만 정해진 곡조에 塡詞하여 창작하는 술자리의 유흥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일생 동안의 광범위한 교유 경험은 그의 교유사 창작에 많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본고에서는 일반적으로 시의 제재에 해당하던 교유를 사를 통해 창작했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장선 교유사에 드러나는 이시위사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교유사는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인 사대부의 교유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 특정 상황에서의 개인적 경험을 읊은 사는 당시 청자나 독자에게 낯설었기에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시에 사용되던 제서를 사용하여 창작 배경을 설명하였다. 또한 교유사는 지식인을 대상으로 창작된 작품이었기에 그들의 심미 취향과 지식수준을 고려하여 愛情 典故 외에도 經⋅史⋅子⋅集部를 아우르는 다양한 전고가 활발히 사용되었다. 또한 詩壇에 성행한 唱和氣風의 영향으로 唱和詞가 창작되었는데, 장선은 그 시작에서 다양한 和韻의 방식을 시도하며 창화사의 발전을 선도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선의 교유사가 지니는 의의를 張先 詞, 北宋詞壇, 中國詞史라는 세 가지 범주에서 분석하였다. 장선의 교유사는 장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명확하게 詩化의 경향이 드러나 장선의 이시위사 경향을 대표한다. 장선 교유사의 이시위사 경향은 그 표현상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음률에서도 미미한 정도의 시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북송 중기 완성을 이룬 이시위사의 발전 과정에서 장선 교유사가 과도기에 위치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장선은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湖州⋅杭州지역에 머물며 지역 관료들과지속적으로 교유했는데, 이 시기 蘇軾과의 교유를 통해 그의 詞作에 영향을 주어 以詩爲詞를 선도하였다.
본고는 장선 교유사에 드러나는 이시위사 경향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였다. 교유사의 이시위사 경향은 제재와 대상의 변화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문인 사대부를 대상으로 한 서정시로서의 작사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선의 교유사가 이시위사 경향의 핵심적인 면모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와 관련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점에서 본고가 장선 교유사에 대한 연구의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리라 본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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