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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이 한국 시민운동의 형성에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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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민아
Advisor
유요한
Major
인문대학 종교학과
Issue Date
2013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사회참여적 복음주의""복음주의 운동""한국 시민운동""민주화 운동""시민운동단체"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종교학과, 2013. 8. 유요한.
Abstract
본 논문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시기에 전개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의 배경을 밝히고 이 운동이 한국 시민운동의 형성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80년대 중반은 ‘반정부 운동’을 통한 민주화의 열기가 무르익는 시기임과 동시에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맞게 되는 시민운동의 시대를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본 논문은 이 시기에 개신교 내의 한 분파인 복음주의 운동이 활발한 사회참여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그 전개 양상을 살펴보고, 한국 시민운동의 형성에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 이는 민주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소위 ‘민중운동 지향의 기독교 분파’ 외에 시민운동의 단초를 품고 새로운 사회운동을 준비했던 개신교 복음주의 분파의 역사와 의미를 되살려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1980년대 한국에서 등장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은 1940년대 미국에서 대두한 신복음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신복음주의 운동의 성과물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해석, ‘로잔언약’ 그리고 ‘기독교세계관운동’은 한국 개신교인들의 사회참여를 신학적 · 철학적으로 정당화해주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1980년대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 사회참여의 책임을 자극한 것은 당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민주화운동이었다. 미국의 신복음주의 운동은 근본주의 세력과의 갈등과 분리를 통해 사회참여적 성격을 획득하였지만, 한국의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은 80년대 민중운동 혹은 개신교의 에큐메니컬 운동 진영의 활발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자극으로부터 종교의 사회책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회참여를 둘러싼 논쟁의 대상이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는 근본주의자들이었지만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민중운동 진영이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은 민중운동 진영과 공유하면서도 유물론이라는 사상과 폭력혁명이라는 방법론에는 거리를 두었다. 한국의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은 민주화 운동의 적극적 주체였던 노동자 · 농민 등의 민중운동, 민중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마르크스주의, 민중운동과 마르크스주의의 신학적 수용의 결과인 민중신학, 민중신학을 기반으로 사회운동을 벌였던 에큐메니컬 진영 모두와 구별되는 운동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였던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 한국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은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과 ‘급진적인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으로 분화되어 각자의 입장을 강조하는 논쟁을 벌이면서도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급진적인 분파는 당시 민중운동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었던 마르크스주의와 민중신학, 그리고 폭력혁명이라는 운동전략을 일정 부분 수용하였고, 온건한 분파는 이를 비판하며 복음주의 신앙의 틀 안에서의 사회참여 운동을 지향하였다. 이 공존의 시기는 짧게 끝난다. 급진적인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분파가 복음주의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와 민중신학을 수용하는 신학적 · 실천적 토대를 탄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들 중 일부는 신앙을 버리고 소위 ‘운동권’으로 수렴되거나 민중운동 내 에큐메니컬 진영으로 이전하지만, 대부분의 급진적인 사회참여적 복음주의자들은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시민운동단체를 결성하거나 복음주의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였다.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자들은 민주화 이후 형성된 시민사회의 기회영역을 잡아 기윤실이나 경실련 등의 새로운 시민운동단체를 형성한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한국의 시민운동 형성에 영향을 준 복음주의 분파는 바로 이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이 한국 시민운동의 형성에 끼친 영향은 크게 시민운동단체의 결성과 시민운동의 성격 규정이라는 두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 1980년대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자들은 1987년 기윤실과 1989년 경실련을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시민운동단체를 시작함으로써 한국 시민운동의 형성에 기여했다. 이들의 성공으로 7,80년대 민중운동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던 운동단체들이 80년대 말부터 그 성격을 달리하기 시작하여 90년대 초 완전한 시민운동의 성격과 방식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이 시민운동의 형성에 끼친 두 번째 영향은 한국 시민운동의 성격을 규정했다는 점이다.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분파는 복음주의 내부에서의 급진적인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과 복음주의 외부에 있는 민중운동과 마르크스주의, 민중신학, 그리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반대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이러한 정체성은 이들이 형성한 한국 시민운동의 초기 성격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분파는 정치적 민주화가 성취된 직후 설립된 기윤실과 경실련을 통해서 한국의 시민운동을 선점(先占)함으로써 ‘민중운동’이 아닌 ‘시민운동’, 마르크스주의가 내세우는 계급 정치에 반대하는 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의 성격을 규정하게 된다.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을 둘러싼 이론적 논쟁이 학계와 운동 진영에서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인데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기윤실과 경실련을 한국 시민운동의 전범(典範)으로 삼았다. 본 논문은 그 동안 제대로 포착되지 못한 1987년 민주화 전후 개신교 복음주의 운동과 시민운동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기존의 한국 시민운동 형성을 둘러싼 학계의 담론에서는 복음주의 운동의 역할과 중요성이 간과되었다. 한국의 시민운동을 형성하고 그 성격을 규정했던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와 특성을 밝힘으로써 사회 변동에 대한 종교의 독립변수로서의 역할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학문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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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Religious Studies (종교학과)Theses (Master's Degree_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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