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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재난상황과 사자(死者) 인식에 관한 연구 - 여제(厲祭)의 실천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perception of the dead in disaster situation in the Chosŏn period - A case study on the practice of Yŏ-je(厲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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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유리
Advisor
최종성
Major
인문대학 종교학과
Issue Date
2016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조선시대 사자인식사자(死者)여제(厲祭)무사귀신(無祀鬼神)귀신(鬼神)재난유교의례원혼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종교학과, 2016. 8. 최종성.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 여제(厲祭)의 실천을 중심으로, 재난상황의 사자(死者) 인식을 살펴보았다. 여제는 무사귀신으로 총칭된 불행하게 죽은 자와 제사받지 못하는 자를 위한 정기적인 의례이다. 그러나 변칙적으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도 여제가 수시로 거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여제의 실천을 여제의 교리적 조건과 민간의 인식과 대응을 포괄하는 민속적 요소, 그리고 상황적 요소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여제라는 종교적 실천이 단순히 교리의 실천이 아니라, 의례가 실천되는 상황과 교리적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 민속적 요소의 관계망 속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교리, 상황, 민속의 관계망 위에서 벌어진 여제의 실천에 드러난 사자에 관한 인식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용재총화』,『어우야담』,『천예록』의 야담집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같은 의례집, 그리고 다양한 여제의 실천을 담고 있는 『여제등록(厲祭謄錄)』자료를 사용하였다. 먼저 2장에서는 16-18세기에 간행된 야담집을 토대로, 산 자와 사자의 소통과 사자가 위험한 존재로 다뤄지는 경우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사자에 관한 민간의 인식이 지향하는 지점을 확인하는 단서로 사용하였다. 이때 산 자와 사자의 만남은 처리되지 않은 시체나, 버려진 해골을 매개로 이루어짐을 확인하였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세계와 교통하는 매개가 ‘해골’이었다면,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다뤄지는 경우는 불행한 죽음, 드러난 해골, 의례의 부재로 정리할 수 있다. 또한 무당과 승려 역시 질병의 빌미를 사자에 두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종교적 의례를 동원해왔다. 조선 초 무사귀신을 처리하는 여제는 사자에 관한 인식과 대응 위에서 도입되었다. 3장에서는 여제의 교리적 특징을 대상과 구조, 실천방식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여제의 대상으로 상정된 ‘무사귀신(無祀鬼神)’이 후손 없이 죽은 자와 불행한 죽음을 맞은 자로 나눠짐에 주목하였다. 이들 각각은 고대 유교의 ‘여(厲)’ 관념과 주자의 귀신론에서 체계화된 비명횡사(非命橫死)한 자의 죽음과 연결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여제의 대상으로 제시된 무사귀신은 이들을 통솔하는 성황과 구제하는 국왕의 구조로 의례화된다. 이때 강조되는 것은 자신의 죽은 백성을 구휼하는 의례 주체자로서의 ‘국왕’이며, 성황은 여제에 무사귀신을 불러오는 매개자 역할에 그친다. 여제는 무사귀신을 통솔하는 성황과 구제하는 국왕의 구조로, 3일전의 성황발고제와 본제인 무사귀신치제의 두 가지 제사로 규정되었다. 4장에서는 2장과 3장에서 논의한 민속적 요소와 교리적 조건을 토대로, 상황적 요소가 강조되는 별여제의 설행에 주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규정된 정기제로서의 여제 외에, 재난상황에서 사자가 원인이 되었다는 믿음과 함께 별여제를 거행하였다. 변칙적인 별여제의 정착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사자가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유자(儒者)들은 이 믿음을 쉽사리 수용하지 않았지만, 계속 사자에 제사하자는 민간의 요구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나 재난상황에서 재난의 원인을 사자에게서 찾는 민간의 인식이 여제의 설행 논리로 점차 포섭되어갔다. 동시에 별여제의 설행 과정에서 전사자(戰死者)나 물에 빠져 죽은 자, 굶어죽은 자, 버려진 시체 등 구체적인 사자가 의례의 대상이 되었다. 대상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보다 기억에 생생한 집단의 죽음을 여제의 대상으로 포섭하는 기억의 강도에 관한 문제와, 유교 사전의 핵심적인 논리인 공덕성의 제약과 재난이라는 상황 속에서 그 제약이 무시되고 공덕없는 사자의 위험이 포섭되는 것, 주인없이 버려진 시체에 관한 직관적인 환기를 국가가 백성을 처리하는 구휼과 재난상황이라는 맥락에서 포섭해 가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이는 재난이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여제와 유교의례의 교리적 조건을 넘나드는 일이었다. 5장에서는 별여제의 실천에 내포된 교리적 조건과 민간의 인식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 준 두 가지 조건인 재난상황과 국가의 구휼을 중심으로, 별여제의 논점을 정리하였다. 별여제 거행에서 논쟁이 되었던 사자의 위험을 포섭하는 문제와 무사귀신에 제사하는 문제, 시체의 위험을 인정하는 문제는 재난 상황이라는 조건 하에서 민간의 인식이 상당부분 용인되었다. 또한 시체의 위험을 인정하는 것과 공덕이 없는 사자를 제사할 수 있는지에 관한 갈등 역시 ‘재난 상황’과 ‘국가의 죽은 백성 구휼’이라는 조건 하에서 민간의 위험 인식이 상당 부분 용인되었다. 조선시대에 거행된 별여제는 ‘재난 상황’과 ‘국가의 백성 구휼’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교리적 조건은 최소화되고, 사자의 위험에 관한 민간의 인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갔다. 이때 확인되는 사자의 위험에 관한 관념은 불행한 죽음, 특히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죽음에 대해 시체나 해골을 매개로 그 위험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는 2장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내용과도 상통한다. 마지막으로 여제와 별여제의 실천을 통해서 사자에 관한 민간의 인식이 여제를 통해 도입된 ‘무사귀신(無祀鬼神)’이라는 새로운 범주와 결탁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별여제의 실천이 사자의 위험에 관한 민간의 인식을 ‘무사귀신’으로 처리하면서, 그 이전에 존재했던 불행한 죽음과 시체 처리의 부재를 통해 환기되었던 사자의 위험이 무사귀신과 결탁되는 것이다. 사자가 죽음을 맞이한 방식, 그리고 처리되지 못한 시체에 대한 직관적인 죽음 인식이 여제의 맥락에서, ‘무사귀신’의 자리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불행한 죽음과 시체가 환기하는 사자와 죽음의 위험에 관한 직관적인 인식에 조상 중심의 사자구제체계에 벗어난 무사귀신의 요소가 포함되어, 직관적인 위험 인식은 조상 아닌 자, 무사귀신과 결탁될 수 있었다. 이는 해결할 수 없는 불행한 죽음의 문제를 체계를 통해서 해결하는 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유교의 의례인 여제와 별여제가 교리적 조건, 상황, 민간의 인식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마련된 실천이라는 방법론적 전제를 토대로, 여제의 실천에 나타난 사자의 위험에 관한 인식을 확인하였다. 이때 사자의 위험은 불행한 죽음, 시체, 의례의 부재를 통해 환기되었다. 그리고 사자의 위험에 관한 인식은 여제를 통해 무사귀신의 범주로 처리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조선시대 사자의 위험에 관한 문제에 죽음의 형태와 시체를 중심으로 제기된 직관적인 위험인식과 조상 중심의 체계의 논리적 부산물인 ‘무사귀신’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민간의 인식의 시대적 추이와 함께 다룰 때 보다 확실한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이 점에서 논문의 한계가 있지만, 이 작업은 추후에 진행할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된다. 또한 유교의 무사귀신외에 불교의 ‘무주고혼’의 변수가 사자의 위험에 관한 인식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역시 해결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본 논문은 ‘사자의 위험’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사자 담론을 다룸으로써, 사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당시의 종교적 실천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This thesis examines the perception of the dead in disastrous situations in the Chosŏn period with focus on the practice of Yŏ-je(厲祭). Yŏ-je was a regular ritual for the dead who were called Musakwishin(無祀鬼神, restless dead) as they had bad death and did not have any ritual. However, it was also held non-regularly when there occurred disasters unexpectedly. This thesis examines the practice of Yŏ-je with reference to its doctrinal conditions, folklore elements including folks’ recognition and responses, and situational elements. Meanwhile, this thesis observes that the religious practice of Yŏ-je is not simply the practice of its doctrine, but occurs in the relational networks of folklore elements, situational elements and its doctrinal conditions. With this observation, this thesis tries to explain the understanding of the dead revealed in the practice of Yŏ-je as it was held on the basis of the relational networks of its doctrine, situations, and folklore. For this, the thesis has used story collections like Yong-jae-chong-hwa(『慵齋叢話』), Eo-u-ya-dam(『於于野談』), and Cheon-ye-rok(『天倪錄』), ritual collections like Guk-jo-o-rye-ui(『國朝五禮儀』), and Yŏ-je-deung-rok(『厲祭謄錄』) materials that contain various practices of Yŏ-je. Chapter 2 looks over cases where the living and the dead communicated and where the dead were treated as dangerous beings, on the basis of story collections published in the 16th~18th centuries such as Yong-jae-chong-hwa, Eo-u-ya-dam, and Cheon-ye-rok. They are used as a clue to clarifying the point to which the folks’ understanding of the dead was directed. We have observed here that the encounter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was mediated by unprepared corpses or abandoned skulls. While the medium that mediated the living and the dead was a ‘skull,’ we can say that cases where the dead worked as a cause of a disaster were due to the unfortunate death and the absence of skulls and rituals. Shamans and monks also found causes of diseases from the dead, and mobilized various religious rituals to get rid of them. Yŏ-je, which took care of Musakwishin in the early Chosŏn period, was introduced on the basis of the perception of the dead. Chapter 3 looks over the doctrinal characteristics of Yŏ-je with reference to its subjects, structure, and ways of practice. First of all, attention is paid to the fact that Musakwishin that were established as subjects of Yŏ-je were classified into those who had died without descendants, and those who had died an unfortunate death. This thesis explained this by assuming that the death of those who had died without descendants was linked to the idea of Yŏ(厲) in the ancient Confucianism and the idea of those who had died unnaturally was linked to Zhu Xi’s theory of ghosts. In addition, Musakwishin were ritualized by the Seonghwang(城隍) who governed them and the king who saved them. What was emphasized then was the king as the host of a ritual who saved his dead people, but the Seonghwang played just the role of a mediator who invoked Musakwishin. With the structure of the governing Seonghwang and the saving king, Yŏ-je was defined as composed of the rituals of Seonghwang-bal-go-je(城隍發告祭, ritual for Seonghwang to invoke Musakwishin), which was held 3 days before the main ritual, and Musakwishin-chi-je(無祀鬼神致祭, ritual for Musakwishin). On the basis of the folklore elements and doctrinal conditions discussed in Chapters 2 and 3, Chapter 4 is focused on the performance of Byeol-yŏ-je(別厲祭), in which situational elements were emphasized. In addition to regular rituals of Yŏ-je, the Chosŏn period held rituals of Byeol-yŏ-je based on the belief that the dead was the cause of a disaster. The greatest issue in the course of the establishment of occasional rituals of Byeol-yŏ-je was whether the dead could be the cause of a disaster. Though they didn’t readily accept this belief, Confucians were faced with the folks’ request that they hold rituals for the dead. However, the folks’ perception that sought the cause of a disaster from the dead in a disastrous situation got gradually fused in the logic of the performance of Yŏ-je. At the same time, in the course of the performance of Byeol-yŏ-je, those who had died at wars, got drowned, starved to die, and got abandoned as bodies were treated as subjects of the ritual. This was a logic that ran between the doctrinal conditions of Yŏ-je and Confucian rituals in urgent disastrous situations. Chapter 5 clarifies the issues with Byeol-yŏ-je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disastrous situations and national relief. With respect to issues like the inclusion of the danger of the dead, rituals for Musakwishin, and the approval of the danger of the abandoned bodies, the folks’ recognition was considerably accepted under the condition of a disastrous situation. The folks’ perception was also considerably accepted under the conditions of ‘disastrous situations’ and ‘the nation’s relief of dead people,’ with respect to the issues of whether the danger of dead bodies was acknowledged, and whether those who had died without any contribution. Under the conditions of ‘disastrous situations’ and ‘the nation’s relief of dead people,’ the doctrinal conditions were minimized, and the folks’ understanding of the danger of the dead was positively accepted. Here, the idea of the danger of the dead was recognized with dead bodies and skulls as media in regard to unfortunate deaths. This agrees with what we generally discussed in Chapter 2. Lastly, attention is paid to the fact that the folks’ perception of the dead in the practice of Yŏ-je and Byeol-yŏ-je was associated with the novel category of ‘Musakwishin,’ which had been introduced through Yŏ-je. As the practice of Byeol-yŏ-je turned the folks’ understanding of the danger of the dead into Musakwishin, the danger of the dead that was evoked through unfortunate deaths and absence of the preparation of dead bodies was associated with Musakwishin. The way that the dead had accommodated their deaths, and the intuitive recognition of death with respect to the unprepared bodies were identified with the places of Musakwishin. As the element of Musakwishin, which was free from the ancestor-centered system of the relief of the dead, was included in the intuitive recognition of the danger of the dead and the death that unfortunate deaths and dead bodies evoked, the intuitive recognition of danger was allowed to be associated with non-ancestors, i.e., Musakwishin. This can be understood as the case for solving the problem of unsolvable unfortunate death via the system. To sum up, we have clarified the perception of the danger of the dead that appeared in the practice of Yŏ-je, on the basis of the methodological premise that the Confucian rituals, Yŏ-je and Byeol-yŏ-je were formed by the interaction among their doctrinal conditions, situations, and the folks’ ideas. Here, the danger of the dead was evoked by unfortunate deaths, dead bodies, and the absence of rituals. Such perception was turned into the category of Musakwishin through Yŏ-je. Based on this achievement, this thesis observed that the intuitive recognition of danger that was raised around forms of deaths and dead bodies, and the issue of Musagwisin, a logical by-product of the ancestor-centered system were associated with the problem of the danger of the dead. This work of research can be more convincing when it deals also with the temporal trends of the folks’ recognition. Also, it also calls for an answer how Mujugohon (無主孤魂) in Buddhism in addition to Musakwishin in Confucianism had influence on the perception of the danger of the dead. However, we can find the significance of the thesis from the fact that it deals with the discourse of the dead in the Chosŏn period on the basis of the ‘danger of the dead’ to explicate the religious practice at that time in which people tried to solve problems through the dead.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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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Religious Studies (종교학과)Theses (Master's Degree_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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