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건국 전후 瀋陽의 국영기업과 중국공산당의 노동정책
“Shenyang Experience” - The CCP’s Formulation of Labor Policy in State-owned Enterprises in Shenyang, 1948~1952 -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한지현
Advisor
김형종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5-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중국공산당東北瀋陽국영기업노동정책임금제도노동보험노동경쟁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동양사학과, 2015. 8. 김형종.
Abstract
本稿는 중국공산당이 건국 전후 東北지역에서 정책의 중심을 농촌에서 도시로 이행한 후 瀋陽의 국영기업을 대상으로 어떠한 노동정책을 펼쳤는가를 탐구하는 글이다. 동북 전역을 장악한 직후 중공은 이 지역이 내전 승리의 발판이 되어야할 뿐 아니라, 건국 이후 전국적 경제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고, 이에 따라 동북지역은 곧 경제의 회복과 발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방침 전환은 1949년 3월 7기2중전회에서 ‘혁명 노선’의 중심을 농촌에서 도시로 이행하고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건설에 나서자고 결의한 것보다 앞섰다. 이 결의는 건국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건국 이후 중공의 정책 방침을 설정했다는 의미가 있었고, 건국 초기 몇 년 간 중공은 이 때 결정한 방침에 따라 도시 중심의 경제 건설을 추진했다. 이 결의가 새로운 전환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전세가 역전되면서 통치해야하는 도시의 수가 늘어나자 도시 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던 현실을 승인한 것이었다고는 해도, 그보다 먼저, 또 다른 지역보다 먼저 동북에서 같은 내용의 정책 전환이 이루어졌고 추진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국 통일을 눈앞에 둔 중공이 건국 직전 약 1년간 경제 건설을 위해 동북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건국 초기 중앙의 향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948년 11월 瀋陽 接管 시 중공은 스스로를 도시 및 기업 운영의 경험이 적다고 인식하여 ‘일단 원래 그대로 몰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동북 전역을 확보한 후에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경제 건설에 앞장설 것을 제창하면서 중공은 도시 정책을 고안하고 실행하는 데 직접 나서기 시작했고, 이러한 방침 전환은 국영기업의 운영권 강화에도 반영되었다.
건국 전후 시기 중공 통치 하 국영기업에서는 공장장, 기술자, 노동자 대표가 참석하는 공장관리위원회가 기업 경영을 담당하도록 규정되어있었고, 공장관리위원회의 최고 결정권자는 공장장이었다. 그런데 동북지역에서는 공장관리위원회에 당과 정부 대표를 참여시키고, 공장장의 상위에 정부기관인 동북공업부를 두었다. 즉, 당과 정부가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러한 추세는 1951년 5월 공장장책임제를 결의하는 데 귀결되었다. 공장장책임제는 정부의 경제기관에서 파견한 공장장 한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책임을 부여하는 경영 방식이었다. 동시에, 기업 내에 당위를 건립하고 기업 소재 지역의 지방당위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정부가 국영기업에 대한 경영권을 장악하고 당이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구축했다.
瀋陽에는 20세기 전반기의 역사적 산물로서 형성된 다수의 국영기업이 존재하고 있었다. 만주국 시기 만주 산업 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본격적으로 조성된 대형 중공업 공장들은 소련의 軍事管制, 국민정부의 접수를 거쳐 중공이 최종적으로 접수하는 과정에서 거의 모두 국영화되었다. 1948년~1952년 瀋陽의 국영기업은 시 내 전체 공업 생산 가치의 60~75%를 차지하면서 다른 공업도시와는 차별되는 경제구조를 구성하고 있었고, 시민의 약 10%가 노동자와 직원으로서 국영기업에 소속되어 있었고, 전 시민의 3분의 1 이상이 그들과 그 가속이었다는 점 또한 특수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국영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瀋陽 특유의 사회경제적 구조를 인식하고 있던 중공은 국영기업 노동정책에 주의를 기울였다. 농촌에서 도시로, 전쟁에서 경제 건설로 방침을 전환하여 기업 경영자로 변모하게 된 중공은 국영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올바른 정치사상’을 보장하는 동시에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노동정책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국영기업 소속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임금제도와 노동보험제도를 통해 국영경제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임금의 50% 이상을 국영상점이나 노동자 소비합작사에서만 소비할 수 있는 실물교환권으로 지급한 정책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경제 활동의 일부를 국영경제권 내에 포섭시켰고, 노동보험제도는 소속 노동자의 가족들까지를 적용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국영기업에 관련된 사람이 많은 瀋陽에서는 더 넓은 범위의 사회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瀋陽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국영기업 내부에서 전개한 노동경쟁이 사회 밖으로 확장되는 데에도 기여했다. 1948년에서 1952년까지 동북에서는 기재 헌납 운동, 신기록 창조 운동, 애국주의 노동경쟁, 增産節約 운동 등의 노동경쟁이 끊이지 않고 벌여졌다. 이 활동들은 동북 내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 것이 효과를 인정받아 동북 전역에서 시행되고, 다시 그것이 모범적 사례로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중공은 노동경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활동내용을 다양화하고 적용 대상을 넓혀갔다. 국영기업에서의 노동경쟁이 모범적 사례가 되어 사영기업과 기타 국가 기관으로 확대되었고, 동시에 노동자의 가족들까지 포섭하여 기업 밖 사회로도 영향력을 넓혔다.
동북은 시기적으로 ‘전국’보다 앞서 중공의 통치권에 들어갔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경제적 기반이 다수 국영화되어있었다는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건국 직전 도시 및 경제 정책의 시험장이 될 수 있었다. 도시 정책 중에서도 노동정책은 과거 농촌근거지를 바탕으로 혁명을 추진하던 시기에는 중공의 고려대상이 아니었지만, 도시 통치에 눈을 돌리게 된 후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노동정책은 사영기업보다 국영기업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고, 국영기업의 사회경제적 비중이 높았던 瀋陽은 중공의 새로운 노동정책의 시험장이 되기에 적절한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瀋陽은 공업도시로, 시의 생산을 회복하고 개조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毛主席과 당이 매우 관심을 갖는 하나의 큰 사업이다”라고 서술한 瀋陽市委의 업무 보고서는, 스스로의 역할을 과장하는 표현일 수 있으나, 중공중앙이 瀋陽을 경제 건설의 중요한 “試点”으로서 지켜보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試点”에서 얻은 실제 경험은 중앙의 판단에 따라 채택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물품교환권 지급 방식의 임금제도를 운용한 경험은 통일적 화폐 지급 제도 설치로 인해 중앙 제도화가 좌절된 반면, 瀋陽을 비롯한 동북지역에서 우선 추진된 공장장책임제와 노동보험제도는 전국적 제도 설치의 전례가 되었고, 동북에서의 노동경쟁은 增産節約 운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모범사례로 선전되었다. 이렇게 건국 전후 瀋陽 국영기업에서 중공이 펼친 노동정책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과는, 중앙보다 앞선 시기에 축적한 “瀋陽 경험”으로서 향후 노동정책을 설정하는 데 구체적인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서 瀋陽은 사회주의로 조기 이행하자는 급진적 노선에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었다. 중공은 신민주주의 경제 이론에 근거하여 국영기업을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진 경제 단위로 인식하고 있었고, 사회주의로 이행한 이후에는 사영기업들을 모두 公私合營화하거나 국영화했다.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진 단위에 소속된 사람이 많았던 瀋陽은 ‘사회주의 개조’ 이후 도시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장소였다. 국영기업이 시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고 많은 시민들을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영기업을 매개로 하는 노동정책은 瀋陽 사회 전반에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물품교환권을 통한 임금 지급 방식, 가족들까지를 적용 대상으로 하는 노동보험제도, 노동자의 가족들도 염두에 두고 진행된 노동경쟁은 국영기업이 많은 瀋陽의 사회경제적 구조와 만나 더 넓은 범위의 사회를 포섭하게 되었다. “瀋陽 경험”을 통해서 중공은 시민들의 생활을 국영경제권 내부에 종속시키고 노동자 동원이 곧 대중 동원이 되는 도시를 상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신민주주의의 조기 폐기는 毛澤東 개인의 의지나 국제 정세의 변화 뿐 아니라, 동북지역에서의 구체적 성과와 그것을 중앙에 전파할 수 있었던 간부들의 중앙 진출로 인해 촉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국영기업을 운영함으로써 더 넓은 범위의 사회를 변모시킬 수 있었던 경험 즉, 동북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실험’과 그 ‘성공’이 이들에게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을까.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how the Chinese Communist Party (CCP) elaborated the labor policy of Shenyang from 1948 to 1952.
Shenyang has been politically and economically the most influential city in Northeastern China since late Qing. It became embroidered in key events in Chinese history, such as the Fengtian cliqueFengtian clique’s hegemony, the rule of the Manchukuo regime, and the Chinese Civil War. As a product of its own importance and regime changes in the first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city became filled with state-owned enterprises, most of which were large-scale heavy industrial factories. Therefore, the CCP’s takeover of Shenyang, which implied the acquisition of the whole of Northeastern China in 1948, marked a watershed in twentieth-century Chinese history in that the CCP became “the final winner” of China’s largest industrial region.
After the acquisition of Shenyang, the CCP could begin to shift their policy priorities from the countryside to the city. This shift was meant to financially support the ongoing Chinese Civil War and, in the long run, lead nationwide economic development. What is worthy of notice is that the CCP made this transition in the Northeast prior to any other region or any decision from the central administration. Therefore, careful scrutiny of how urban policy in the Northeast was formulated could provide a new perspective on exploring a recent source of the CCP’s city policy in the early day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 CCP in the Northeast tried to enhance their control upon state-owned enterprises by participating in the Factory Management Committee as representatives of the party and the government. By contrast, in the regions other than the Northeast, the Factory Management Committee was composed of a factory manager, labor leaders, and engineer leaders only. In 1951, the CCP decided to reinforce their managing power further by resolving the factory managers’ responsibility and establishing the party committee in every state-owned factory. This system was first resolved in the Northeast and served as a precedent, spreading nationally.
Economic recovery and development via operating the state-owned enterprises now became the main focus of the CCP’s city policy in the Northeast. Labor policy, in particular, was a new challenge with respect to the CCP’s change of identity from a leader of the underground class struggle in factories to the CEO of state-owned enterprises. Along with the transformation, the CCP no longer considered laborers as the main actor of the labor movements but as the object of labor policy, and began to elaborate a new labor policy accordingly.
The socioeconomic structure of Shenyang was quite unlike that of any other city in China. Since over half of Shenyang’s citizens was comprised of workers in state-owned enterprises and their families, these citizens were the beneficiaries of these enterprises’ labor policies such as the wage system and labor insurance. Also, these citizens were susceptible to labor competitions, which were fostered in the state-owned enterprises and spread throughout the city to become popular movements.
This study suggests implications for understanding Northeastern China under the CCP’s rule. First, due to the fact that the CCP seized the power in Northeastern China before dominating the whole country and most of the economic foundations in this region were nationalized, Northeastern China was able to be an experimental region for the CCP’s urban and economic policy. Labor policy in particular, which had not been a main concern during the period of rural-centered revolution, arose as a new challenge after the CCP’s policy shift from countryside to city. With over a half of its citizens related to the state-owned enterprises, Shenyang fulfilled the conditions for being an experimental city for the CCP’s new labor policy. This “Shenyang Experience” could provide a precedent for the CCP’s new labor policy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PRC.
Furthermore, the successes in operating state-owned enterprises and transforming the broader society of Shenyang provided the CCP with a model for its wider socialist revolution. The period from 1948 to 1952 belongs to the period of New Democracy in the CCP history, which was supposed to be the preliminary stage for the socialist revolution and allow private economy. In this period, Shenyang was able to take on a role as a testing ground for socialism in that it had a greater percentage of state-owned enterprises and people involved in them. Based on this unique socioeconomic structure, the CCP conducted a city-scale “socialist experiment” in Shenyang and gained good results economically and socially. This experience may have given the CCP lessons towards Socialist Transformation later on.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2058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동양사학과)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