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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中後期 楚의 文書行政과 司法制度의 再構成- 『包山楚簡』司法文書를 통하여 -
战国中后期楚国文书行政及司法制度的重建-以《包山楚简》司法文书之分析为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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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방윤미
Advisor
김병준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6-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包山楚簡司法制度文書行政受幾左尹疋獄所囑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동양사학과, 2016. 8. 김병준.
Abstract
본고는 戰國중후기 楚國의 左尹 邵佗의 무덤에서 출토된 『包山楚簡』 사법문서를 분석하여 당시 楚의 문서행정과 사법행정체계에 대해 고찰한 글이다. 기존 연구는 글자 釋讀이나 어휘어법 연구, 簡文의 分篇 및 각 문서 양식에 대한 연구, 주제별 연구 등에 치우쳐 있는 반면, 사법문서 전체를 대상으로 통합적으로 고찰한 연구는 많지 않다. 즉 각각의 문서들이 楚의 사법행정체계 속에서 상호 어떤 관계 속에 있었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기존 『包山楚簡』 연구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戰國 楚의 사법제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자료가 출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秦漢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帝國的’ 시선이 여전히 통용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즉 기존 戰國시대 제도사 연구에서는, 秦漢시대의 체제를 완성형으로 놓고 그와의 원근감을 조명하는 연구 방식으로 인해 楚의 특수성과 차이점만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결국 楚의 ‘후진성’으로 연결되곤 한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본고에서는 사법문서 전체를 최대한 아울러 분석하는 동시에, 이들이 楚의 중앙사법부 수장인 左尹의 무덤에서 함께 출토된 점을 고려하여 전체 문서의 행정체계와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이렇게 도출한 사법문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례 연구를 통해 楚의 사법행정절차와 계통을 고찰하였다.
우선, 문서행정의 측면에서 秦漢의 ‘帝國的’ 통치체제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行書제도가 백여 년 전의 楚에서도 이미 존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누가 문서를 전달하고 어떤 운송방식을 거쳤는지 등 문서전달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은 극히 소수 밖에 발견되지 않아 『包山楚簡』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문서전달과 관련된 핵심적인 내용은 秦漢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楚의 行書제도의 특징은 行書기록에 어떤 내용이 있는가보다 누가 어디서 기록하였는가를 살펴볼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楚에서는 지방관원이 보고를 상신할 때 일전에 전달받은 명령문서도 함께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즉 전달받은 문서에 그대로 行書기록이나 답변 등의 추가 내용을 덧붙여 함께 재전달한 것이다. 이는 확실히 秦代의 것과 구별되는 楚制의 특징이다. 상행보고서에 원래의 하행명령서를 첨부하는 것은 簡牘의 무게나 행정적 번거로움을 고려하면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서의 이동ㆍ접수과정을 左尹府에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주어, 문서행정을 보다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左尹府에서는 단순히 하행명령서와 상행보고서를 모아두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일종의 문서접수대장인「受幾(期)」문서를 만들어 左尹府 내의 문서들을 관리하였다. 그런데 「受幾」는 내용의 생략이 너무 많아 담당자가 아니라면 해당 기록이 어떤 안건의 문서와 연관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 또 실제 안건의 처리는 左尹府 소속 관원들이 나누어 맡은 것을 고려할 때, 『包山楚簡』의 주인이자 전체 소속 관원들의 관리ㆍ감독 의무가 있는 左尹이 각 관원에게 배분된 안건 내용을 일일이 파악하고 있었을 확률은 현저히 낮다. 즉 「受幾」작성의 목적은 단지 문서가 오고가는 것을 점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包山楚簡』에는 「受幾」외에 일정한 양식에 맞추어 접수한 안건의 摘要와 진행과정을 기입한 「疋獄」문서와 左尹府의 각 관원들이 어떤 안건을 맡았는지를 기록한 ‘所䛠(囑)’ 문서가 있다. 이 두 가지 문서와 「受幾」를 나란히 놓고 보면, 각종 안건들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左尹府에 쌓여있는 각종 문서들을 살펴볼 필요 없이 일자별로 정렬된 이 세 문서를 통해 누가 어떤 안건을 맡아 어떤 과정에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대조를 위한 문서행정체계가 누구보다도 필요한 것은 左尹府의 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左尹이었을 것이다. 상행보고서에 원래의 하행명령서를 첨부하는 방식을 통해 철저한 내용 및 상황점검이 가능하게 만드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상호대조를 위한 문서행정체계를 통해 효율성을 높였던 것이다.
좌윤부의 문서행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례 연구를 통해 楚의 사법행정절차를 복원하였다. 그 결과, 秦漢과 마찬가지로 楚國의 사법절차상 안건의 접수 및 위탁은 기본적으로 행정적 위계질서에 따라, 해당 지역을 관할하거나 업무를 담당하는 관원에게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만일 처리진행이 부진하거나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 경우 특별한 조건 없이 상급기관에 상소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상급기관에 접수된 안건심리를 처리할 때에는 본래 안건을 담당한 관원과 소속 관계가 없는 동급 이상의 다른 관원에게 맡겨 객관성을 유지하였다. 또 封君의 봉읍지에서 발생한 안건임에도 楚王의 명령을 받아 左尹이 개입하는 것을 볼 때, 봉읍지를 포함하여 지방행정단위에서 발생한 안건은 사법ㆍ행정체계상 중앙정부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봉군에게는 사법권이 없었거나 크게 제약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楚王의 사법권 행사 역시 일정한 체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左尹府가 楚王으로부터 위탁받았다고 추정되는 안건들은 안건의 관련자나 내용과 무관했던 것이 아니라, 군대나 관부 내부의 일이거나 혹 왕실과 모종의 끈이 있는 사람이 연루된 안건이었다. 심지어 판결도 나지 않은 소송을 楚王에게 다시 제기한 사례들은 秦漢의 乞鞠제도처럼 법적으로 제도화ㆍ행정적으로 체계화된 절차를 밟았다기보다 개인의 지위, 인맥 등을 통해 안건 처리를 ‘호소’ㆍ‘청탁’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비단 楚뿐만 아니라 秦漢시대 문헌사료에서도 확인된다. 즉 秦漢시대에도 제도 운용에 권력이 개입하고 있지만 동시에 제도적인 제약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문헌사료와 출토자료를 종합하여 볼 때, 楚의 법률제도는 春秋시대부터 끊임없이 발전하였고, 戰國중기 吳起변법을 거쳐 懷王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수준의 법률제도가 갖추어졌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包山楚簡』에 나타나는 戰國중후기 楚의 사법행정은 바로 이러한 흐름의 결과물이었으며, 사법절차를 뛰어넘는 권력자의 개입은 제도가 미비한 탓이 아니라 제도의 운용과정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변주와 타협의 결과였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2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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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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