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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 朝淸關係 外交文書의 基礎硏究 ― 『華案』(1883-1905)을 中心으로 ―
近代朝淸關係外交文書之基礎硏究 『華案』(1883-1905)爲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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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봉준
Advisor
김형종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근대 한중관계사외교사외교문서통리기무아문총리아문조회자문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동양사학과, 2017. 2. 김형종.
Abstract
本稿는 19세기 후반 朝淸關係 혹은 韓中關係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이 이용해왔던 문헌자료들이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으며 또한 기존에 있던 자료들도 그 적절한 활용도를 제고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두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華案』은 1883년부터 1905년까지 조선과 청이 주고받았던 자료들을 모은 것이다. 특히 『화안』은 朝鮮 外衙門과 駐韓淸國公署 간의 문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 양국의 공문왕래의 실상을 규명하는데 적합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화안』에 있는 문건의 대부분은 照會와 信函으로, 咨文이 청 예부와 조선국왕을 수발자로 한 것과 달리 조선 외아문과 총리각국사무아문, 외무부, 주한청국공관 그리고 各口의 商務委員을 수발자로 하고 있다. 즉 수발주체에 따른 공문형식의 구분은 외무전담기관과 駐紮官員의 등장, 그리고 이들 간의 공문왕래가 이 시기에 나타났다. 이와 같이 『화안』에 수록된 문건의 분석을 통해 조청관계의 과도기적 양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데, 먼저1883년부터 1894년까지 조청 양국은 전통적인 왕래문서의 형식인 咨文과 함께 照會와 信函을 병용하여 공문을 주고받았다.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은 양국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기점이다. 청일전쟁 전후로 조청 양국의 공식적인 관계가 단절됨에 따라 공문왕래도 중단되었다. 1894년부터 새로 「한청통상조약」이 체결되는 1899년 직전까지 『화안』에는 이 시기의 문건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기간에 대한 조청관계에 관련된 문건들은 『英案』의 일부 책에 수록되어 있다.
1899년 한청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청국공사가 다시 청국상민의 사무를 처리하기 전까지 주한영국공사가 청국상민의 사무를 처리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영안』에는 청국 상민의 사무를 처리하게된 주한영국공관과 조선정부가 주고받은 공문이 수록되어 있다. 『화안』의 공백을 보충하고 청일전쟁 직후의 조청관계의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이 『영안』에서 해당 기간의 조청관계 문건들을 따로 선별하였다.
1882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체결 이후부터 근대적 교섭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조회를 자문과 함께 병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과도기적인 형태는 1894년 청일전쟁으로 양국의 공식적인 관계가 단절되기 전까지 10여 년간 지속되었다.
『화안』과 같은 자료의 분석을 통해 도출해낸 자문과 조회 그리고 신함의 병용과 같은 사실들은 당시 외무전담기구의 설치와 외무관원의 常駐에 따라 생긴 근대적인 변화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 만들어진 『화안』은 당시 조선정부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206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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