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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文의 ‘두 갈래 노선’과 黨治理論의 發展 - 孫文의 政治路線과 黨國體制 起源에 대한 檢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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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용운
Advisor
김형종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孫文革命黨中國國民黨黨國體制黨治理論護法運動國家建設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동양사학과, 2017. 2. 김형종.
Abstract
본고는 孫文의 정치노선을 ‘護法路線’과 ‘黨治路線’이라는 ‘두 갈래 노선’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 아울러 그의 黨治理論 발전과정을 고찰한 글이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정치권력을 장악한 정당이 스스로를 국가와 일치시키고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원적 체제인 黨國體制를 채택하고 있다. 중국 黨國體制의 본격적인 시발점은 中國國民黨의 訓政體制 구축이며, 中國共産黨의 집권 이후에도 黨治의 기본적인 형태는 계승되었다. 이처럼 중국의 근대국가 건설은 혁명당에 의한 黨國體制의 성립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이론적 기반은 바로 孫文의 黨治理論이라 할 수 있다.

孫文 黨治理論의 발전 및 실천에 대한 선행연구는 크게 ‘연속성론’과 ‘전환론’으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전자는 中國同盟會의 革命程序論에서 黨治理論의 맹아를 찾는 한편 中國同盟會-中華革命黨-中國國民黨으로 이어진 혁명당의 계보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후자의 경우 孫文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대의민주주의에서 黨治로 전환하는 가운데 黨治理論이 형성되었다고 보며,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소련의 영향에서 찾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양자 모두 護法運動의 존재를 간과하거나, 護法運動 경험과 黨治理論 발전 사이의 관계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이처럼 黨治理論의 연속성에 매몰되거나 외부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관점은 장기간 護法運動에 투신했던 孫文의 실제 행적과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黨治理論의 발전과정조차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본 논문은 孫文의 정치역정을 서구식 대의민주정체 지향의 ‘護法路線’과 혁명당의 과도기적 독재를 옹호한 ‘黨治路線’이라는 상반되는 ‘두 갈래 노선’의 교차과정으로 정리하고, 두 노선의 긴장 속에서 黨治路線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검토하였다.

辛亥革命 이후 중국은 대의민주정치를 도입하였으나 二次革命의 실패와 함께 민주주의의 시험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孫文은 1914년 지도자의 권위와 희생정신을 강조한 혁명조직인 中華革命黨을 창당하여 袁世凱에 대항하였다. 그는 「中華革命黨總章」에서 “訓政”을 명시하고 혁명당에 의한 과도기적 독재를 구상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孫文 黨治理論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민주정치의 위기와 혁명의 난관 속에서 ‘先黨治 後憲政’의 黨治路線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中華革命黨은 以黨治國을 실현할 역량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護法戰爭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행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孫文 스스로가 黨治를 포기하고 約法을 강조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약법회복 이후에는 더욱 강력하게 의회정치를 옹호하며 黨治路線에서 護法路線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袁世凱 사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1917년 段棋瑞가 약법과 국회를 부정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에 孫文은 西南地方勢力과 손잡고 해군을 끌어들여 廣東에 非常國會와 護法軍政府를 설립한다. 護法運動에 투신한 孫文은 약법과 국회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護法路線을 추구했으나 결국 桂系와의 갈등으로 軍政府를 이탈하게 된다. 독자적 혁명세력을 결여한 護法의 무기력함을 절감한 孫文은 上海에서 革命理論의 재구축과 혁명당의 재건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1919년 자신의 혁명사상을 한층 체계적으로 정리한 『建國方略』을 출간하는 한편 中華革命黨을 中國國民黨으로 재편하기에 이른다. 당시 그는 行易知難의 실천철학(孫文學說)을 통해 黨治를 정당화하였고, 同盟會의 約法之治 발상과 中華革命黨의 訓政 계획을 결합하여 보다 민주적 성격을 가진 黨治를 구상하였다. 中國國民黨으로의 개편은 五四運動 이후 활성화된 대중운동 속에서 國民의 가능성을 포착한 결과이자, 민국 초 國民黨의 확장성과 中華革命黨의 혁명성을 함께 추구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一次護法運動의 좌절과 더불어 재차 黨治路線을 주장한 셈이다.

당시 中國國民黨의 세력은 약소한 수준이었고 約法과 국회의 권위 또한 엄연히 존재했기에 黨治路線의 철저한 관철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혁명당을 방기한 護法路線으로의 회귀 역시 함부로 선택할 수 없었다. 따라서 孫文은 1921년 廣東政府를 수립하며 두 노선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밖으로는 護法을 내세워 정당성을 확보하는 한편 廣東에서는 以黨治粵의 黨治를 시도하는 ‘外法內黨’의 절충노선을 지향한 것이다. 孫文은 현장민선을 실시하고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치며 당무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동시에 護法을 명분으로 북벌을 시행하고 외교활동에 나섰다. 이 같은 절충노선은 일성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陳炯明의 모반으로 인해 二次護法運動 역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다시 上海로 돌아간 孫文은 혁명당의 재정비와 동맹세력 확보, 그리고 혁명근거지 수복이라는 과제에 착수한다. 이에 1922년 하반기 聯俄容共 정책을 기초로 改進을 실시하는 한편 討賊軍을 편성해 廣東을 되찾고자 하였다. 또한 直系가 주도한 法統恢復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면서도 北京國會의 합법성에 의문을 던지는 등, 비록 護法路線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으나 점차 黨治路線으로 경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改進과 廣州 수복 이후 혁명운동이 침체에 빠지자 孫文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改組를 추진하였는데, 그 목표는 소련을 모델로 한 혁명당의 강화와 本黨主義의 확산을 통한 以黨治國의 실현이었다. 마침내 1924년 1월 中國國民黨第一次全國代表大會에서 孫文은 以黨建國과 以黨治國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黨治路線의 우위를 확립하였다. 그는 立憲論 · 聯省自治論 등을 비판하고 三民主義에 입각한 黨治를 주장했으며, 「建國大綱」을 통해 軍政-訓政-憲政으로 이어지는 혁명 계획을 밝혔다. 이 시점에서 黨治理論 역시 완비단계에 이르렀는데, 그 요점은 先知先覺의 혁명당이 국가를 재건하고, 혁명주의에 따라 통치하며, 과도기적 黨治를 통해 三民主義-五權憲法의 선진적인 민주공화정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기관과 병행하는 당 기구를 설치하고 民主集中制를 채택하는 등 소련의 조직방식 및 혁명경험을 수용하였다. 한편 1923년 10월 曹錕의 부정선거(賄選)는 국회의 신용을 결정적으로 실추시켰고 이는 護法路線의 파탄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黨治理論의 완비와 함께 護法路線과 黨治路線사이의 균형 역시 후자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상 孫文의 정치행보는 護法과 黨治라는 두 갈래 노선의 교차와 절충, 그리고 전자에 대한 후자의 우위 확립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黨治理論 발전의 경우 中華革命黨시기 탄생하여 1919년 한층 체계화되었고, 二次護法運動 당시 부분적으로 시행되어 마침내 改進改組를 통해 완비단계에 이르렀다. 黨治路線의 우위를 확립한 孫文은 이후 본격적으로 以黨建國의 실천에 나섰고 1925년 3월 임종 시에도 黨治路線의 철저한 실현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그 유지를 계승한 國民黨은 國民革命과 북벌을 통해 訓政體制를 설립하게 된다. 1928년의 訓政 실시와 함께 孫文의 黨治路線이 중국의 공식적인 정치체제로, 그의 黨治理論이 중국의 공식적인 통치이념으로 확립되었다. 마침내 중국의 근대국가 건설방향이 黨國體制로 일단락된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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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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