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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원의 <통해백팔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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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진백
Advisor
조해숙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5-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한국문학 고전시가 지방문학 악부시 남일원 통해백팔사 관서악부 지방인식 서정성 통영 옥수기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2015. 2. 조해숙.
Abstract
국문초록
조선후기인 19세기에 시가문학사상에 나타난 여러 특징 중 하나로 다수의 악부시가 창작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본고는 붕해 남일원(1834-1894)이 1872년에 창작한 기속악부 를 검토함으로써, 작품에 나타난 그의 의식이 지향하는 바를 밝히고 작품의 악부시사적 위치를 구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는 이전의 문학적 전통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통영 지방을 시로 형상화한 작품으로서 지방문학 연구에 기여한다는 가치가 있다.
특히 고전문학에서는 작가를 통해 작품의 한 면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경우 또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어떤 면을 밝힐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본고에서는 본격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남일원의 생애에 관한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를 재구했다. 그 과정은 그가 한문본 『옥수기』를 국문으로 번역한 남윤원과 동일인임을 변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남일원은 연달아 부친과 처의 죽음을 겪고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느껴, 한곳에 정착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떠돌던 중 1868-1872년에 통제영에서 하급 무관으로 머물렀다. 통영을 떠나며 지난 5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석북 신광수의 를 의방해 를 창작했다. 는 통제영의 모습과 통영 백성들의 모습, 통영 교방의 모습을 담아 통영의 전체적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기왕의 기속악부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가 된 지방을 바라보는 의식과 남일원이 통영을 바라보는 의식에 차이가 있음이 감지되는 바, 본고에서는 에 나타난 그의 의식 지향을 고찰해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남일원은 통영 백성들의 삶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교화의식을 표출했다. 이것은 기존 악부시 작가들이 애민의식으로 백성들의 삶에 관심을 보였던 것과 같은 형태이기는 하나, 그들이 유가적 이상주의에서 교화의식 표출에 중점을 둔 것과 달리 남일원은 백성과 관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대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들을 바라보려 했다. 대립되거나 양극화될 수 있는 둘 사이에서 개별적 자아로서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입장을 유보하는 것임과 동시에 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남일원은 자신의 정서를 표출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통영 교방 문화를 소재로 활용하였다. 에서 교방은 통영의 풍류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가 아니라 남일원이 통영을 떠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그는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교방의 모습을 시로 표현했기에 시가의 노랫말이나 정재의 연행 방식 자체가 아닌 그에 대한 자신의 감각적 인상에 초점을 맞췄다. 교방에 관심을 보여 소재로 활용하면서도 그에 몰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정서를 표출한 것이다.
셋째, 남일원은 에 자신의 무인으로서의 시선을 투사하였다. 하지만 그 시선을 일관되게 표현하지는 않았고 문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통영의 다양한 모습에 관심을 보였다.
는 남일원이 통영을 떠나는 시점에서 그간의 경험을 정리하는 동시에 아쉬운 심정을 예술적 방법을 활용해 승화시켜 악부시 창작으로 성취한 결과물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교방을 통해 가창되어 후대인에게 널리 퍼지기를 바랐으며 통영에 대한 인식의 저변을 확대시키고자 하였다. 그의 도망시, , 한문본 『옥수기』의 국문번역은 그가 문학의 다양한 양식을 활용해 작품을 창작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슬프고 아쉬우며 불안한 정서를 승화시키려 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본고에서 의 특징과 남일원의 의식 지향을 구체적으로 밝힌 작업은 결국 일반적인 기속악부 및 작가들의 그것과 다른 측면이 남일원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특정 자기 지방을 소재로 창작된 기속악부는 자기 지방에 대한 우월감의 표출인 동시에, 그것이 중앙(한양)과의 관계맺음을 전제로 하였기에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적 구별을 작가가 내면화한 결과인 열등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특정 시각에 견인되지 않고 통영의 문화를 그 자체로 인식하려는 그의 의식은 일원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향하려는 것이다. 이는 기존 기속악부가 가진 의미 지평을 확장시킨 것이다.
는 를 의방해 창작된 작품이기에 ‘원유와 풍류의 결합’이라는 의 구성을 차용하고 있으나, ‘풍류’ 부분에서 자신의 정서를 표출해 서정성을 확보함으로써 작품 구성의 다양성을 창출하였다. 또한 이후 악부시들의 서정성 강화에 단초를 마련하였다.
남일원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나, 그가 통영에 가게 된 구체적 연유 및 통제영에서 맡았던 직책이 무엇인지 등에 관한 기록과 그의 다른 작품이 발견된다면 의 연구가 진전을 이룰 수 있고 지방문학 연구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어 : 한국문학, 고전시가, 지방문학, 악부시, 남일원, 통해백팔사, 관서악부, 지방 인식, 서정성, 통영, 옥수기
학 번 : 2005-20004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2130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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