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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콜레라 창궐과 조선 정부 및 민간의 대응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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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신회

Advisor
문중양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콜레라제의공포심천주교개벽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4. 2. 문중양.
Abstract
이 논문은 19세기 초 콜레라의 세계적 확산 현상에 주목하여 조선에서 콜레라가 창궐한 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선 정부와 민간의 대응 방식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당시 사회‧문화적 측면과 연결하여 검토해 보았다.
인도 풍토병이던 콜레라는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후 그들의 군인과 배에 의해 세계로 퍼졌으며,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유입됐다. 조선의 콜레라는 다음의 특징을 지녔다. 1821년 콜레라는 7월말에서 9월말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조선 전역을 휩쓸었다. 이듬해 발생한 콜레라는 4월말에서 9월말까지 제주도를 포함한 조선 팔도를 감염시켰다. 병균 확산에는 세균이 생존할 수 있는 날씨와 균을 퍼트리는 인구 이동이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인간의 영양상태 및 면역체계와도 깊은 관련을 맺었다.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양질의 음식물을 섭취하여 강한 면역력을 지닌 계층은, 병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못한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콜레라로 희생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통치그룹은 사악한 기운과 자신들의 不調和한 정치 때문에 질병이 발생했다고 인식했다. 콜레라가 확산되고 의학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 내에서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지던 祭儀의 설행에 집중했다. 조선은 仁의 정치를 사회 가치관으로 삼았다. 따라서 제사 의례는 통치 집단이 仁政을 수행하기 위해 정밀히 계획한 의식이었다. 정부는 제사를 통해 민심을 달랠 수 있었으며,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민중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콜레라 전염이 극성할 당시 민간은 쥐가 발생시킨 질병이라는 의미에서 쥐통·쥐병으로 불렀다. 사람들은 쥐의 형상을 한 귀신이 몸속으로 파고들면 콜레라에 걸리고 발을 통해 침입한 악귀가 다리를 갉아 먹으면서 올라가 내장을 손상시킨다고 생각했다. 콜레라 환자의 근육 경련을 목격한 사람들은 질병이 쥐귀신 때문에 발생했다는 믿음이 더욱 강렬해졌다. 이러한 사고는 사람들을 공포심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몰아 갈 수 있었다.
정보의 변형과 왜곡도 공포를 증대시킨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사망자 숫자에 담겨 있는 피해인식이다. 이를 위해 콜레라와 대기근이 들었을 당시 戶口상의 口數 감소를 비교함으로써, 콜레라 사망자 숫자에 관한 당시 기록이 과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과장된 기록은 조선인들이 콜레라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가 얼마만큼 컸는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콜레라 극복을 위한 민중의 행동은 다양하게 표출됐다. 사람들은 기존 한의학 치료가 효험을 발휘하지 못하자 모든 방식을 동원했다. 여기에는 약초를 통한 의술상의 치료행위, 기도를 올리는 무속상의 치료행위, 민간의 관습을 활용한 토속적 치료행위 등 치료와 관련한 모든 삶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었다. 이외에도 조선인들은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에 귀의했다.
콜레라는 한 종류의 세균이지만 새로운 생각을 불러 올 수 있는 실마리를 조선 사회에 제공했다. 치료법을 알지 못하는 질병이 두해동안 지속되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공포감으로부터의 탈출과 안정된 사회를 바라는 민중의 열망은 기존 사회에 대한 불만과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동시에 이는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민중의 바램과 연결될 수 있었다. 崔濟愚는 19세기 콜레라가 유행하는 상황을, 세상은 말세에 진입했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고 평했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서 극한의 공포로 다가오는 콜레라를 모티브로, 종교의 힘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백성에게 제공했다. 또한 새로운 세상인 개벽을 언급함으로써 민중의 마음속으로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다. 이렇듯 콜레라는 19세기 새로운 생각을 불러올 수 있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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