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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 사대부의 열녀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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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보람

Advisor
문중양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향랑김소행사대부三韓拾遺열녀 인식奇文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4. 2. 문중양.
Abstract
본 논문은 『三韓拾遺』(1814)를 분석대상으로 삼아 그것의 奇文적 성격에 주목하고, 이전 시기 향랑전들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저자 김소행(1765-1859)의 열녀 인식을 새롭게 규명해 보았다.
18세기의 향랑전 문사들은 기본적으로 열(烈)이라는 유교적 이념의 칭송과 확산을 추구하였으나, 향랑의 절의를 서술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한 편에서는 향랑의 절의를 선산지역의 의열한 풍속과 연관시킴으로써, 지역사회에서의 기반 유지라는 자신들의 욕망 실현에 집중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향랑이라는 행위 주체의 천성과 도덕을 강조함으로써, 대다수의 하층민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도 향랑처럼 열행을 실천할 수 있다는 자각을 갖게 하고, 궁극적으로 열 이념의 확산을 더욱 중시하였다.
『삼한습유』의 김소행은 향랑의 열행을 칭송하고, 나아가 열을 당대 여성들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가치로 여겼다. 또 후자의 향랑전 문사들과 같은 맥락에서 하층민 열녀들의 천성과 도덕을 강조하였다. 이는 당시의 지배적인 열녀 인식을 공유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김소행은 향랑의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다른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전의 향랑전 문사들은 향랑이 망설임 없이 쉽게 죽음에 나아간 것으로 묘사했다면, 김소행은 향랑이 억지로 죽은 것으로 보고, 애통한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소행이 지닌 열녀 인식의 성격은 조선 후기에 거의 유일한 열행이 되어갔던 여성들의 자살과, 그에 대한 동시대 다른 사대부들의 인식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잘 드러났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여성들의 자살을 한결같이 열로 찬미하고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박지원(1737-1805), 황윤석(1729-1791), 이옥(1760-1812), 정약용(1762-1836)은 여성들의 자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예외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은 하층 여성들까지 남발하는 죽음, 그리고 원칙이 없는 죽음을 겨냥한 것일 뿐, 열녀들의 죽음 자체를 부정한 것도, 나아가 열이라는 유교적 가치를 부정한 것도 아니었다. 김소행의 인식도 이들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었다.
김소행은 여기서 더 나아가 혼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향랑의 원통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혼인 설정은 기존 연구들의 설명처럼 열녀의 개가를 통해 전통적 열 이념에 저항한 것이 아니라, 단지 원하던 남성과의 혼인을 통해 향랑의 원한을 풀어주려는 장치였다. 김소행은 여성의 개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였고, 또 반드시 환생을 통해 향랑의 몸을 바꾸어야만 혼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공자에 의해 혼인을 승인받는다는 설정을 통해 향랑의 혼인이 결코 유교적 이념에 반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김소행은 환생과 공자의 승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오히려 개가 혐의를 피해 가고자 하였다.
조선 후기 야담집에 실려 있는 사족 여성의 개가 이야기들과 비교했을 때도 김소행은 당시의 지배적 이념에 더욱 구속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김소행의 열녀 인식은 18세기를 거쳐 19세기에 과부의 개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관념이 확산되고, 유교적 정절 이념이 하층민의 생활 속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삼한습유』는 저자의 진지한 사상적 고민이 담긴 사실의 기록이 아닌 한 편의 기문이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그의 사상과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삼한습유』에 담긴 19세기 한 사대부의 사유방식과 인식의 일면을 살펴보는 것은 가능하며, 본고에서는 여성의 절의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작품 속에서 김소행이 이미 열녀가 된 향랑을 다른 남자와 혼인시킨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환생이라는 불교적 장치를 사용한 점 등은 모두 표면적으로는 유교적 이념을 벗어난 열녀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대 다른 사대부들의 열녀 인식과의 비교, 나아가 당시의 사회상과 관련하여 고찰해 본 결과, 김소행은 당시의 지배적인 이념에 부합하는 열녀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김소행의 열녀 인식은 근대를 목전에 두고 19세기 지식인들이 어떠한 사유방식과 지향을 지니고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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