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한국전쟁기 민간인 피해의 사회학적 연구 : 통계생산의 정치성을 중심으로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공준환
Advisor
정근식
Major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Issue Date
2015-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한국전쟁전쟁피해민간인피해 조사통계생산정치성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학과, 2015. 2. 정근식.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한국전쟁기 민간인의 피해 조사를 조사와 통계생산의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민간인 피해는 그 유형을 중심으로 1차 피해와 2차 피해로 구분하였다. 1차 피해는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로 발생한 것이며 주로 사망에 해당한다면, 2차 피해는 전쟁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로 피난과 전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한국정부는 두 유형의 피해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사하고 대응하였다.
피해 조사의 배경에는 국제적인 측면과 국내적인 측면이 있다. 먼저 한국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고조된 전시 민간인 보호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전쟁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49년에는 민간인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 제4협약이 만들어졌고, 유엔의 한국전쟁 개입과 함께 인도주의적 지원이 행해지면서 한국전쟁은 전시 민간인 보호가 가능한지를 실험하는 무대가 되었다. 북한은 이 지점을 잘 포착하여 전쟁 이전부터 민간인의 피해 상황을 조사·발표하였고, 전쟁 과정에서도 미군과 한국군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선전하였다. 또 민간인 문제를 유엔에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정치적 쟁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반면에 남한은 전시 체제에 돌입하면서 다수의 민간인을 예비검속하고 학살하였다. 남한 정부의 민간인에 대한 시선은 불신이었다. 한국전쟁기의 피해 조사는 전시 민간인을 보호하라는 외적 압력과 국민으로서의 민간인을 통제하려는 내적 지향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피해 조사를 조사의 주체, 시기, 내용, 의미와 효과의 네 차원으로 나누어 각각 살펴보았다. 먼저 1차 피해의 조사는 사회부와 공보처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사회부는 민간인 문제의 전반을 담당하고 있었고, 피해 인식과 해결을 목적으로 한 조사를 실시한 반면, 공보처는 조사된 피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사회부가 전기 조사를 주도했다면, 1.4 후퇴 이후의 후기 조사에서는 공보처의 주도로 북한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기 위한 명부와 통계들이 생산되었다. 북한의 범죄를 과장하기 위해서 납치나 학살과 같은 범주들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외의 사망 원인은 은폐되었고. 부상과 행방불명은 소홀하게 다루어졌다.
남한 정부가 피해 조사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피해를 선전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정부가 원하지 않은 조사 결과가 나온 전쟁기 인구 조사의 경우에는 공개되지 못했다.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조사의 결과들이 산출되었던 것이다. 즉, 1차 피해 조사는 피해의 정확한 조사보다는 그 활용 목적에 부합하도록 이루어졌다. 조사와 통계생산의 과정은 피해 입은 민간인들을 분류하는 것이었다. 민간인의 피해는 피해의 원인이나 가해주체에 따라서 범주화되고 위계가 부여되었다. 북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애국자로 호명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되었다. 하지만 민간인 피해는 점차 정치적 중요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조사는 미완의 상태로 종결되었고, 민간인 피해의 해결은 전후의 사회 재건 과정에서 실종되었다.
2차 피해의 조사는 피난민의 구호를 담당하고 있던 사회부와 UNCACK에 의해서 실시되었다. 사회부와 UNCACK은 구호를 둘러싸고 협력과 긴장 관계에 놓여있었는데, 이들의 협업을 매개하는 것은 피난민에 대한 정보였다. 때문에 피난민에 대한 조사는 상시적으로 이루어졌다. 피난은 각자가 산발적으로 피난을 떠났던 1차 피난과 정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2차 피난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차 피난과정은 무계획적이었고 따라서 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반성과 함께 2차 피난에서는 대규모 피난이 기획·실천되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피난민에 관한 방대한 정보들이었다.
피난민과 전재민에 대한 조사는 세 단계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째는 피난민을 전선지역으로부터 소개하는 것으로, 수백만 명 이상의 피난민을 후방으로 이동시키기고 특정 지역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피난민의 위치와 이동사항이 파악되어야 했다. 둘째는 피난민을 수용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이동된 피난민들을 피난민 수용소에 등록하도록 유도하였다. 셋째는 피난민을 구호로 구호 대상을 파악하고 조정하기 위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피난민과 전재민은 분류되었다. 피난민에 대한 통계는 피난민들은 양화하여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고, 상시적인 조사를 통해 개개인들을 통제하는 통치가 이루어졌다. 한편 피난민과 전재민에 대한 구호와 선전은 자유세계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장치였으나, 그것은 피난민의 고통스러운 현실과는 괴리된 것이었다. 정리하면, 민간인 피해에 대한 조사는 전시 민간인을 분류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국가의 도구였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4451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Sociology (사회학과)Theses (Master's Degree_사회학과)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