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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일본 도자의 등장과 무역시장 변동의 동학: 기술과 문화 전파의 국제정치경제적 고찰
The Emergence of Japanese Porcelain and Dynamics on Trade Market Transformation in 17th century: Political Economic Approach to Technology and Culture Dif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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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유정
Advisor
김상배
Major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외교학전공)
Issue Date
2017-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도자기기술⋅문화전파일본중국조선VOC네트워크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외교학전공), 2017. 8. 김상배.
Abstract
본 연구는 17세기의 글로벌 도자시장 변동의 동학을 동아시아 도자산업에서 후발주자였던 일본이 새로운 고급도자 공급자로 급격하게 성장하여 유럽까지를 아우르는 새로운 무역시장에 도자기를 수출하게 된 변화에 주목하여 살펴본다. 이러한 도자산업의 변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무역시장에서의 경제적 동인이나 문화적 교류의 측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전파와 정치적 요소들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세계시장에서 후발주자인 일본 도자가 단기간에 등장한 것은 단순한 역사적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변화와 기술 전파, 문화적 욕구, (무역)시장의 확장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 국면에서의 변동과 제도적 여건이 중요하며, 이를 매개로 기술과 문화, 경제적인 요소가 결합됨으로써 총체적이고 다층적인 도자시장의 변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17세기 이전까지 기존의 고급 도자기의 생산은 중국 중심의 (공급)독점구조 하에 있었다. 경덕진은 원대 이후 황실에 납품하는 고급도자를 생산하는 관요를 중심으로 중국 도자산업에서 핵심적인 요업지였다. 경덕진에서 생산된 청화백자는 특히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확보해 나갔다. 그러나 1636년 청이 건국되고, 1644년 명이 완전히 멸망하는 과정에서 중앙의 정치권력이 약화되고 내부적으로 혼란이 발생하면서 경덕진이 파괴되었으며, 1654년까지 관요가 폐쇄되었다. 이는 무역도자시장에서 심각한 공급의 불안정을 야기하였다.
한편, 중국산 청화백자가 유럽시장에 대량으로 처음 수입된 것은 1602년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무역시장에 진출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유럽시장에서 새로운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공급의 감소와 수요의 증가라는 괴리가 심각하게 발생하였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제공한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는 동아시아 도자 산업의 변동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은 세계 도자시장의 일시적인 ‘구조적 공백’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일본 도자는 조선 도공의 이주와 VOC의 유통망이라는 두 ‘매개자’의 역할을 바탕으로 이러한 공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세계 무역시장에 새로운 제품을 수출하였다. 또한 새로운 공급자와 유통업자의 등장은 기술 –사람–재화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글로벌 도자기 무역시장의 확장⋅심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기술과 문화의 전파가 있었으며,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동아시아 지역의 요업지도 기본적으로는 차 문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중국의 도공들이 이주함으로써 고급도자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른 사례와는 달리 195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이라는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서 의도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조선의 도공들을 (강제)이주시켰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도자 무역시장에서는 중국산 청화백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수출된 고급도자는 그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양식을 나타내었다는 점이다. 가키에몬 또는 고이마리 양식의 일본 수출도자는 조선 도공들의 기술과 중국에서 전래된 상회기법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혁신적인 제품이며, 청화백자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붉은색의 채색자기들이 유럽에서 인기를 얻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차이니즈 이마리라고 불리는 도자가 유럽시장에서 유행하였는데, 이는 일본 아리타⋅이마리도자 양식을 모방한 중국산 도자로, 그만큼 일본 수출도자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일본 도자의 수출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른 일본의 선택적 쇄국정책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다. 나가사키 데지마는 네덜란드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창구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일본의 정치적⋅지적 배경의 차별화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측면이 17세기 중반 이미 고급도자를 생산할 수 있었던 조선이 새로운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차이로 작용하였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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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Political of Political Science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정치외교학부)International Relations (외교학전공)Theses (Master's Degree_외교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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