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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禔의 <童子牽驢圖> 硏究 : A Study of Kim Sis Boy Pulling a Don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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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임민정

Advisor
장진성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Issue Date
2017-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김시(金禔)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기려도(騎驢圖)심우도(尋牛圖)득우(得牛)심성(心性)심성우언(心性寓言)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2017. 8. 장진성.
Abstract
김시(金禔, 1524-1593)는 에서 나귀를 끌어당기는 동자의 모습을 단독으로 화면에 그렸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이 그림이 제작된 16세기 조선의 사상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견려(牽驢)라는 모티프가 중 득우(得牛)의 의미와 연결되어 이해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를 다루었던 기존의 연구는 김시의 부친인 김안로(金安老, 1481-1537)의 정치적 몰락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출사(出仕)가 어려워진 김시의 상황은 를 해석하는 주요 시각으로 확립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논의는 이 그림을 김시의 자화상적 성격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해석하였다. 본 논문은 기존 연구의 관점에서 조금 더 나아가 16세기 조선의 시대상에 주목하였다. 이를 토대로 필자는 의 성격을 새롭게 파악하고 아울러 이 그림의 지성사적인 맥락을 살펴보았다.
논문의 제 2장은 김시를 다각도로 살펴볼 것이다. 그가 지녔던 위상과 화원(畵員)로서의 활동, 작품, 정체성을 파악하여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김시는 그림으로 삼절(三絶)에 꼽힐 정도로 선조(宣祖, 재위 1567-1608)대 화명(畵名)을 떨친 화원이었다. 동시에 그는 당대 저명한 문사(文士)들과 어울리며 처사(處士)로서의 정체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김시는 은일 풍조를 잘 반영한 작품을 그렸으며 당대의 문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가 맺고 있었던 문인들과의 관계와 이들과 함께 공유했을 16세기의 분위기는 의 창작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제 3장에서는 가 기려도(騎驢圖)의 일종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고찰하고자 한다. 아울러 견려 이미지가 선(禪)불교의 마음 수행 과정을 회화화한 중 네 번째 장면인 득우(得牛)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견려 도상은 한국을 포함하여 중국과 일본에서도 현재 그 예가 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일본 모모야마(桃山)시대의 화가였던 운코쿠 토간(雲谷等顔, 1547-1618)의 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견려 도상이 기려 인물의 고사(故事)에 등장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 작품의 존재는 이제까지 그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었던 견려 도상의 존재와 기능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는 한 폭의 기려도로서 당대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려도와는 다르게 에는 기려 인물이 없이 견려 장면만이 단독으로 그려졌다. 이는 그림의 주제가 끌어당기다의 의미인 견(牽)에 있음을 보여준다. 는 기본적으로 기려도로 규정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기려 인물이 화면에서 배제되고 견려 장면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특정 고사(故事)의 맥락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견려 장면이 그림의 단독 재제가 됨으로써 그 모습은 중 득우와 매우 흡사한 양태(樣態)를 띠게 되었다. 동자가 나귀를 이끄는 평이한 표현과 다르게 동적(動的)인 요소가 강조된다는 점에서 견려와 득우는 매우 닮아있다. 득우와의 도상적 유사성은 견(牽)이 스스로를 얻고[得],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는 득우의 의미와 맞닿을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제 3장에서 견려와 득우와의 도상적 유사성에 대해 다루었다면 제 4장에서는 의 견려 장면이 그 의미까지도 득우와 연결될 수 있음을 16세기 조선의 사상적인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감상자가 속에 담긴 득우의 모습을 파악할 경우 나귀를 마음[心]이라는 관념이 시각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마음은 16세기 조선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던 성리학의 중요 문제였다. 이 시기의 사상적 분위기는 마음의 문제에 천착해있었던 당대인들의 관심이 속에 반영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16세기 조선 사상계의 화두로 떠오른 마음과 이에 대한 수행의 문제는 문학적으로 심성우언(心性寓言)의 유행을 가져왔다. 우언(寓言)이란 말하고자 하는 본뜻을 바로 말하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속 견려 이미지가 마음을 시각화한 득우의 언어로써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16세기 지적 분위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16세기 조선은 성리학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표현될 만큼 사상적으로 매우 다채로운 시기로 평가된다. 유불도(儒佛道)의 혼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양명학(陽明學)의 도입, 높아진 불교의 영향력 등은 조선 중기의 비교적 자유로운 사상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는 견려 장면과 선불교의 이미지인 득우 장면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는 마음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었던 16세기의 사상 동향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그림은 한 폭의 기려도이자 당시의 지성사적 문맥 속에서 해석될 수 있는 그림인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8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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