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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破陣과 조선후기 大砲 운용
Byeolpajin and the Use of Artillery in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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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재정
Advisor
오수창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7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別破陣大砲전술五軍營수성전佛狼機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국사학과, 2017. 8. 오수창.
Abstract
別破陣은 大砲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조선시대의 병종이었으며, 대포를 다루는 병사 개개인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본 논문에서는 별파진의 기원과 역할, 조직, 활동을 검토하여 조선시대 大砲 운용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별파진에 대한 최초의 사료는 중종대 《各司受敎》에서 등장한다. 중종대 별파진은 忠贊衛 중에서 선발됐으며, 이들은 軍器寺에서 番上하면서 대포 운용을 익혔다. 별파진 중 일부는 지방으로 파견돼 대포 다루는 법을 교습했다. 중종대 별파진의 정액은 200명이었지만, 정묘호란 직후에는 감소하여 조정에서는 별파진 부족 현상을 우려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군기시 이외 五軍營에서도 자체적으로 별파진을 모집해서 별파진이 증가했으며, 별파진의 모집 대상층은 충찬위에서 일반 양인으로 확대됐다.
별파진이 증가하는 17세기 후반에는 별파진의 편제가 계급과 역할에 따라 세분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별파진의 계급에는 軍兵과 將校 두 가지가 존재했다. 군병은 대포를 다루는 병사 개개인이었는데, 군병 중 대포를 잘 다루는 일부는 다른 군병들을 감독하거나 대포 교습을 지도하는 직책에 임명됐다. 직책을 맡은 군병들은 그렇지 않은 군병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고,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군영에서 근무했다.
별파진의 장교들은 군병들의 상관으로서 군병들의 대포 운용 숙련도를 평가하거나 별파진 인원의 행정 처리를 담당하는 등 별파진 관련 업무 전반을 수행했다. 장교들은 전쟁에서 별파진이 동원됐을 때 군병들을 지휘했다. 군영에서 훈련을 담당한 장교들이 별파진을 담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별파진 군병 중에서 군무에 익숙한 인원이 승진하여 담당한 사례도 있었다. 장교로 효과적인 대포 교습과 인원 통제를 위해 별파진의 편제가 세분화된 사례는 주로 오군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오군영에 소속돼 수도를 방어하는 병종으로서 별파진이 중시됐음을 보여준다.
별파진이 수도 방어를 위한 중요한 전력이었다는 점은 17∼18세기 오군영 소속 별파진의 규모 변화와 정예화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초에는 御營廳과 禁衛營, 守禦廳에 속한 별파진만 3천 명을 넘었으며, 수도 이외 지역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높은 수치였다. 영조대에는 오군영의 별파진이 감소됐지만, 군영에서 더 오래 자주 근무하거나 상주하는 인원이 증가하면서 이전보다 병력이 정예화됐다.
별파진이 중요한 수도 방어 병력이었던 배경으로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후기 방어전략을 들 수 있다. 淸의 감시로 서북의 군비 강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후기 방어전략의 중심은 保障處와 도성으로 옮겨졌다. 조선후기 방어전략에서는 보장처와 도성을 지키는 수성전을 치루는 것이 중요했는데, 별파진은 수성전에 능한 병종으로 여겨졌다.
수성전이 주요 임무였던 별파진은 佛狼機를 주력 대포로 활용했다. 불랑기는 다른 대포들보다 연사력이 높아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들을 견제하는 데 적합했다. 불랑기를 이용한 수성전술에 따르면, 수성군은 100보 이내의 거리에서 불랑기와 조총으로 사격을 가해 적을 격퇴했다. 영조대에 조선군은 대포를 수레에 탑재해 야전에서 운용하려고 시도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으며 대포는 여전히 수성전용 무기로 여겨졌다.
별파진의 대포 운용이 방어에 적합했다는 점은 홍경래란 당시 대포 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군은 홍경래군이 점거한 정주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별파진과 대포를 동원했지만, 당시 성벽은 포격을 견딜 수 있었고 주력 대포인 불랑기는 성을 무너뜨리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다. 별파진의 대포는 오히려 성 밖으로 나와 관군 진지를 기습하는 홍경래군을 격퇴할 때 위력을 발휘했다. 또한 홍경래군이 관군을 격퇴할 때 구사한 수성전술이 별파진의 수성전술과 유사한 점에서 별파진의 대포 전술이 방어전에서 얼마나 효과적이었을 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는 별파진의 대포 운용이 조선후기 방위전략에 적합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8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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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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