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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漢시대 馬政과 그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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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보람
Advisor
김병준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7-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秦漢馬政芻稾律令馬復令河西胡市騎馬騎士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2017. 8. 김병준.
Abstract
자원의 확보와 유지는 국가의 체제를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초기 국가나 도시의 생성 및 발전의 動因을 청동 원료나 소금 등 중요한 자원의 획득과 운송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자원의 독점 생산과 장악을 통해 국가권력이 정당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원은 당시 인민의 삶과 국가 운영에 반드시 필요했던 ‘기반물자’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가권력이 추구한 지배 원리에 따라 국가가 장악하려 했던 자원이 결정되었을 것이며, 이것을 운영하는 방법과 방침은 국가의 제도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국가에 있어서 기반물자의 안정적인 공급과 그에 수반되는 시스템의 구축, 그리고 효율적인 관리는 국가운영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반물자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면 당시 그 사회가 가장 중요시했던 것, 나아가 그 사회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 기반물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래 말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전근대 국가의 필수불가결한 자원이었다.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된 이래 국가의 방어와 확장을 위한 군수품으로, 帝國을 통합하고 연결하기 위한 교통체계의 일부로 모두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중국은 말의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전술 상 騎兵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문서 행정을 위한 郵驛의 설치가 늘어나는 등 다양한 수요에 맞춰 체계화된 새로운 제도가 수반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秦漢시대 馬政 연구는 대부분 말의 품종 개량이나 養馬 기술의 발전 상황 등 농업사 방면이 가장 두드러졌다. 중국에서 이른 시기부터 養馬를 중시했고 꾸준히 좋은 말을 생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 군사 방면에서 騎兵의 종류, 병참 보급 조달 상황에서의 말 이용 등을 조명한 연구, 傳驛馬의 이용 등과 같이 교통 문제에서 접근한 연구와 신분에 따른 乘輿 권한의 차이 등 의례적인 방면에서 접근한 연구도 있다. 이러한 연구는 전체 사회체제 내에서 기반물자로서 말이 갖는 의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만 기존의 연구가 馬政에 대한 국가의 관심, 그리고 기본적 제도를 지적하는 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까닭은 일차적으로 관련 자료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秦漢시대의 율령이 추가적으로 확보되면서 그 한계를 다소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알려진 睡虎地秦簡과 二年律令은 물론, 지금까지도 속속 공표되고 있는 嶽麓秦簡 내의 관련 율령을 보면, 율령 전체 내에서 말과 관련된 조문이 많이 출현할 뿐 아니라 예상 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율령 내부에서 마정이 차지하는 비중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秦漢시대가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국가가 말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수급을 국가가 ‘직접’ 확보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막연히 말의 수급을 관장해야겠다는 선언적 의미의 법령이 아니라, 이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별 관리와 그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의 계산, 그리고 그 비용을 거두어들이기 위한 정책 등이 고안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출토자료를 적극 활용할 경우 진한시기 기반물자를 확보하려는 국가의 구체적 방식, 이른바 ‘官營’의 의미가 드러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대적 상황이 바뀌면서 이러한 인식과 정책 모두 변화한다는 점도 분명한 만큼, 전국시대와 진한제국의 통일 이후, 특히 북방민족과의 관계 변화에 주목하여 그 정책 변화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本稿는 秦漢시대 국가는 어떠한 제도나 체제로써 말을 확보하고 관리하였는지, 그리고 말의 수요 및 공급이 급증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국가는 어떠한 방식으로 정책을 변화시켰으며 기반물자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와 통제를 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Ⅰ장 1절에서는 秦漢시대 국가가 말에 대한 관리를 어떠한 원칙 하에서 취급하고 제도를 만들었는지 살펴보았다. 秦漢 律令의 내용을 모두 살펴 말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추려본 결과 秦漢律 내에서 말 관련 규정이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 전반에 걸쳐 말과 관련한 법률이 지극히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2절에서는 이렇게 추려낸 律令을 다시 내용에 따라 나름대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정리하여 秦漢시대 馬政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秦漢시대에는 말과 관련하여 다양한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관련 업무가 각각 분산되어 있되, 상황에 따라 다중의 부서 혹은 책임자가 연계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은 律令으로 규정해 일률적인 처리를 강제했으며, 철저히 官吏에게 책임을 지우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養馬의 부담을 전가하였다.
이처럼 秦漢시대 馬政의 방침은 사료의 지급부터 이용까지 律令에 의거하게 함으로써 국가가 말의 관리 전반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것이었다. 말은 국가의 기반물자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자원이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직접 장악하는 국영 위주의 양마업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는 엄청난 경제적ㆍ행정적 비용이 소모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Ⅱ장 1절에서는 秦漢代 말의 수요가 어떠한 추세에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국가에서 말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말의 수요가 증가하면 국가가 투입해야 하는 관리 비용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어떠한 과정을 통해 증가하는지 알아보았다. 문헌 사료에 따르면 戰國末부터 기병의 도입과 郵驛 체계의 정비로 점차 말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국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말의 수량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전제로 2절에서는 養馬 비용을 계산해 보았다. 養馬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것은 말의 사료였다. 일단 말에 지급하는 사료의 비용을 구하고 사람의 식비와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律令에 정해진 바에 근거하면 말의 사료비용이 사람의 식비에 비해 세 배 이상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官營 養馬의 비용은 民間에게서 거두는 芻稾稅로 충당했기 때문에, 말이 늘어날수록 사회적 부담은 커졌다. 일반 民이 내야 하는 芻稾稅는 錢으로 환산하면 가구당 매년 약 71錢이었는데, 이는 열흘간 노동했을 때의 임금에 상당할 정도로 많은 비용이었다. 특히 芻稾 생산량의 90% 이상을 국가에서 징수했기 때문에, 비용의 측면으로 보아도 엄청난 부담이었을 뿐더러 농민이 養馬할 수 있는 잉여 芻稾를 남김없이 가져가는 셈이었다.
Ⅲ장에서는 이러한 국가 제도의 馬政 체계에 일정한 변화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시기별로 변화하는 내용과 그 원인을 추적해 보았다. 前漢 초기의 律令인 二年律令을 秦律과 비교했을 때 芻稾稅의 변화가 확인되었다. 秦律에 규정된 芻稾 납부액보다 15斤, 즉 약 2錢이 감액된다는 것과 縣의 사용분을 제외한 芻稾는 모두 錢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국가가 비축할 수 있는 실물 芻稾의 감소를 의미하였다. 芻稾는 馬牛의 가축인 만큼 실물로 징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근본적인 원인은 漢初의 국가 관리 체계의 이완 때문이었고, 동시에 민간 양마를 권장하는 국가의 의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말을 기르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으므로, 국가는 이러한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배타적 官營 양마에서 차츰 민간 양마를 허용ㆍ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말의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국가는 부득이 다시금 국가에 의한 말의 관리 방침을 채택하였다. 빈번한 전쟁이 일어났던 景帝ㆍ武帝 시기에는 말을 중앙으로 집중시켜야 할 수밖에 없었고, 漢初에 芻稾稅를 감액했던 조치와는 달리 군마 사육의 명목으로 미성년자의 세금을 3錢 인상한다. 세금의 변화와 맞물려 국가의 馬政 역시 官營 양마의 규모를 확대시키는 조치들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빈도가 줄어드는 武帝 이후에는 다시 漢初와 같이 관영 양마의 규모를 축소하는 정책으로 회귀한다. 재정문제를 이유로 景帝ㆍ武帝 시기의 養馬 정책을 차례차례 폐지하고 관영 養馬場을 축소하거나 없앰으로써, 양마의 관영생산 비중을 줄이려는 시도를 한다. 증액된 세금도 감소시켰다. 대신 민간 양마를 권장하여 언제든 필요시 민간으로부터 말을 조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武帝 이후에는 민간에서 私馬가 증가했다는 증거가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官에서 騎馬나 傳馬를 민간에서 구입한다는 사례는 당시 이미 일상적으로 민간의 말 매매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시기의 河西四郡의 개착으로 인한 胡市의 성행과 평화로운 사회 분위기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관영 양마를 축소하고 민간 양마로 대체하는 국가의 기대를 실현가능하게 하였다. 즉 말의 수요나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적절한 馬政의 변화를 통해, 국가는 기반물자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와 확보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고대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며 자원의 관리 또한 국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이러한 기반물자의 관리가 확장되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국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차즘 官이 모든 주요 산업을 독점하겠다는 방침을 포기하고, 점차 민간에게로 그 부담을 전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결코 중앙집권을 상실하거나 포기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다시 필요에 따라 중앙으로 물자를 집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기층조직까지 철저하게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漢은 제국을 탄력적으로 운용하여 표면적으로는 秦代보다 방임적으로 보였을지라도, 그 이면은 간접적인 규제와 통제로 인민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漢帝國이 보다 인적ㆍ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장악하여 재정의 건전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8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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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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