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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관점에서 해석한 <에네아스 이야기> : 전쟁과 사랑을 중심으로
Discours du prince dans le Roman d'Eneas - Une étude sur les thèmes de la guerre et de l'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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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오수환
Advisor
김정희
Major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Issue Date
2017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군주론전쟁의 기술사랑의 기술정치다시쓰기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2017. 8. 김정희.
Abstract
『에네아스 이야기』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중세 불어로 번역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의 번역이란 일종의 재창작의 과정으로서, 중세 작품은 원작을 다시 쓰면서 고대 로마와 12세기 중세 사이의 간극을 반영한다. 이 연구는 그 간극을 설명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에네아스가 트로이 재건에 성공하는 과정을 재구성하여 원작과 구분되는 에네아스의 독특한 모습을 밝히고, 작품을 당대의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에네아스가 작품에서 군주의 위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트로이 왕가의 방계 혈족이자 유민(遺民)들의 지도자로서, 그는 도시를 재건하고 로마의 시조(始祖)가 된다. 하지만 같은 군주라 하더라도 중세의 에네아스는 현명함과 지략으로 특징지어진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는 신들과 운명, 아버지에 대한 경건함pietas이나 장수로서의 무위(武威)가 아니라 전략과 전술, 속임수와 언변을 통해 도시 재건에 성공한다. 에네아스의 능력은 ‘기술art’이라는 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이때 전쟁과 사랑은 그의 기술이 분명하게 펼쳐지는 장이 된다. 에네아스는 전쟁의 기술을 통해 경쟁자 튀르뉘스를 제압하고, 사랑의 기술을 통해 로랑트 땅의 상속녀 라빈의 마음을 얻는다.
제1장은 트로이 전쟁과 로랑트 전쟁을 중심으로 에네아스의 전쟁의 기술을 분석한다. 트로이의 참상을 목격하자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에 뛰어들었던 원작과 달리 중세 작품에서 에네아스는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전사들을 대피시키고, 이후 군주들과의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보물을 챙겨 도시를 빠져나간다. 디도가 트로이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을 때에도, 그는 멸망의 원인으로 지목된 ‘그 배신’을 파리스의 불륜이 아니라 메넬로스와 윌리스의 속임수, 트로이 목마로 재해석하며 전쟁의 성격을 다시 쓴다. 또한 그는 이야기를 교묘하게 다듬으면서 자신이 도시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축소하고, 용맹하게 싸웠으나 신들의 명령에 따라 후퇴한 기사, 조상의 땅을 찾아가는 귀환자로 스스로를 내세운다.
빠르고 정확한 상황판단, 부(富)의 확보, 말솜씨 등 트로이 전쟁에서 암시된 전쟁의 기술은 로랑트 전쟁에서 몽토방 성, 트로이 막사, 연설들이라는 보다 정제된 형태로 발전한다. 로랑트에 도착한 에네아스는 지형지물을 활용하고 성을 세밀하게 설계하면서, 원작에서 도랑과 방벽, 둔덕으로 그쳤던 방어 시설을 강력한 요새로 탈바꿈한다. 또한 정보를 수집하며 전쟁의 동향을 파악하고 식량을 비축하고 방비를 강화하면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수성전을 고수한다. 그의 대리자들은 그가 원군을 요청하는 동안 전사들을 지휘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한다. 이 모든 과정은 원작은 물론 다른 중세 작품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쟁 묘사로서, 힘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에네아스의 변화된 면모를 강조한다.
수성전에 성공하여 전쟁의 주도권을 잡은 에네아스는 로랑트 도시를 포위한다. 하지만 튀르뉘스에 반기를 든 도시의 유력자들이 동맹과 함께 휴전을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이고 막사를 세운다. 에네아스는 방어 능력도 없이 화려하고 장엄하기만 한 막사를 마치 잘 방비된 성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루 만에 지어진 성채의 위엄에 로랑트 인들은 두려움에 빠지고, 화평을 맺지 않는 왕을 비난한다. 이때 에네아스는 한껏 치장한 트로이 무리를 이끌고 도시 앞을 행렬함으로써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이를 본 로랑트 인들은 감탄하며 이제 트로이 인들을 칭송하기에 이른다. 그는 휴전과 막사 건설, 평화로운 행렬을 탁월한 공격 행위로 만드는 책략을 구사한다.
에네아스는 자신의 명분을 세우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튀르뉘스는 그가 자신의 약혼녀를 빼앗으려 한다며 에네아스를 파리스와 동일시하고 전쟁을 정당화한다. 이에 에네아스는 트로이 전쟁과 마찬가지로 로랑트 전쟁 역시 타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침범하는 부당한 전쟁이라고 재규정하고 그 근거로 귀환의 테마를 내세운다. 그는 세 차례의 연설들에서, 이 땅에 온 것이 자신들의 땅으로 귀환한 것이며, 신들의 의지, 조상과 선대의 소유권, 현 통치자인 라티뉘스 왕의 승인에 따라 자신이 로랑트 땅의 권리를 지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통해 로랑트의 온 가신과 유력자들의 인정을 받으며 왕위에 오르고, 도시 간의 완벽한 결합을 이끌어낸다.
1장이 에네아스가 전쟁의 승리로 영토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을 설명한다면, 2장은 그가 통치권 획득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지속하는 과정, 나아가 라빈의 마음을 얻어 통치권을 공고하게 만드는 과정을 추적한다. 기존의 연구에서 디도와의 사랑은 정욕에 사로잡힌 부정한 욕망으로, 라빈과의 사랑은 작품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 구현된 장소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작품을 정치의 관점에서 읽었을 때, 둘의 구분은 통치권 획득의 사명과 어떻게 조화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디도는 건설에 힘쓰고 전쟁에 승리하며 현명하게 도시를 다스렸음에도 사랑에 빠져 통치의 끈을 놓았다. 강력하고 풍요로웠던 도시 카르타고는 적들에 짓밟혀 황폐화되었다. 디도의 에피소드는 사랑에 빠진 군주가 어떻게 도시를 파국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디도와의 사랑 때문에 자신의 통치권을 포기할 뻔하였던 에네아스도 마찬가지로서, 그는 신들의 경고와 저승에서 아버지의 계시를 받고 나서야 통치권 획득의 사명에 투신한다.
라빈의 에피소드에서 에네아스는 전쟁, 변증, 항해라는 세 가지 사랑의 형태로 사랑과 통치의 양립을 꾀한다. 먼저 그는 상대의 마음을 빼앗고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사랑의 전쟁을 벌인다. 감정을 숨기고 간접적으로만 드러내는 그의 방식은 상대로 하여금 더 큰 사랑을 고백하고 그에게 종속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기존의 중세 문학에서 사랑의 문법을 형성하였던 핀 아모르를 위반하는 것으로, 핀 아모르에서는 귀부인이 지배자로 군림하고, 남성이 귀부인을 숭배하며 사랑의 봉사를 바치는 형태를 띠었다. 『에네아스 이야기』에서는 이 관계가 전복되어 이제 군주 에네아스가 귀부인의 위치를 차지하고, 라빈이 그의 호의를 요청하는 처지가 된다.
물론 에네아스에게 이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라빈에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를 두고 이성의 자아와 사랑의 자아 간의 거듭된 분열과 싸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때의 싸움은 서로를 반박하고 논리를 쌓아나가는 변증의 형식을 띠는 것으로, 그는 광기에 빠지는 일 없이 보다 지성적인 방식으로 사랑에 접근하고, 사랑의 자아가 승리하면서 도출되는 행동 역시 감정의 간접적인 표현에 그친다. 에네아스는 사랑을 포기하고 전쟁에 집중하라는 이성의 자아에 맞서, 이후 문학에서 ‘궁정적 사랑’으로 발전할 용맹과 사랑의 상승 관계를 주장하며 사랑의 추구를 정당화하지만, 사랑을 그 자체로 좇기보다는 사랑이 부여해준 용맹을 통해 전쟁에 집중하고, 전쟁의 승리를 통해 라빈을 얻고자 한다.
라빈에게 이러한 태도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행동, 사랑의 지배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행동들로 비추어졌다. 이에 에네아스는 마지막 독백에서 스스로의 정당화를 꾀한다. 사랑은 싸움과 분노를 거친 후에야 더욱 단단하고 감미로워지므로 자신의 행동이 사랑에 유익할 수 있으며, 사랑은 전쟁을 오래 지속하지 않으므로 한 사람이 사과하면 상대는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을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일에 비유한다. 작품에서 폭풍우 치는 바다는 모든 것을 금세 뒤바꾸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싸움과 분노로 사랑을 성장시킨다는 그의 기술은 항해의 비유를 거쳐 운명만큼이나 쉽게 변하는 사랑의 변심을 극복하는 기술이 된다. 이는 사랑의 전쟁의 승리를 마무리하는 또 하나의 변증이었다.
이처럼 전쟁과 사랑을 기술적으로 지배하는 에네아스의 군주상은, 작품이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헨리 2세의 궁정이라는 정치적 배경과 연관 지어 해석해볼 수 있다. 헨리 2세와 에네아스는 여러 지점에서 동일시될 수 있는 면모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헨리 2세는 노련하게 전쟁을 치르고 만인의 인정 속에서 왕이 된 에네아스의 이미지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사랑에 있어서도, 라빈과의 결혼을 강조하기보다 핀 아모르를 전복하면서 에네아스가 라빈을 정복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 작품의 묘사는, 헨리 2세가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알리에노르 다키텐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헨리 2세의 부인 알리에노르는 핀 아모르를 북프랑스와 잉글랜드에 전파한 인물이자, 거대한 영토를 상속 영지로 가지고 있어 라빈과 동일시되는 여성이다. 이렇게 본다면 『에네아스 이야기』는 헨리 2세 자신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군주로서의 이미지를 다시 세우는 정치적 작업으로 해석 가능하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8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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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French Language and Literature (불어불문학과)Theses (Master's Degree_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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