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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기(1637~1647년) 일본에 대한 조선의 정보 활용
Joseon Dynasty's Information Utilization toward Japan, during 1637~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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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정슬
Advisor
오수창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조선대마도막부대일관계정보정보 활용정보 공개명·청교체.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사학과, 2018. 2. 오수창.
Abstract
본 논문은 명·청교체기(1637~1647) 일본, 특히 대마도에 대한 조선의 정보 제공 전략을 통해 그들이 과도기적이고 유동적인 국제상황을 교묘하게 대처해나가는 노력을 실증적으로 밝힌 논문이다. 당시 정보는 상황적 흐름을 담고 있는 군사·전쟁정보, 경제적 흐름을 담고 있는 물자유통정보, 국제관계의 구조를 담고 있는 관계변동정보로 나눌 수 있으며, 본 논문은 이를 대외관계형성의 자원으로 삼아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조선의 대일외교활동을 규명하고자 했다.
병자호란 직후 조선은 많은 정치·경제·외교적 변혁을 맞닥뜨렸지만 그 가운데 파급력이 가장 강한 것은 청과 일본의 통교를 주선하라는 과제였다. 조·청관계의 변화가 조·일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조선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은 청과 일본의 통교 요청을 결코 허락할 수 없다고 논의하며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조선은 자국을 왕래하는 청과 일본의 사신이 정보를 매개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려하여 가장 먼저 邊情이 누설되지 않도록 정보를 통제하는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중요했던 것은 이를 실현시키는 교섭창구에서의 정보활동이었다. 사실 대마도의 정보력을 고려한다면 당시 조선에게 필요했던 정보활동은 무조건적인 정보통제가 아니라 전략적인 정보제공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진행되던 대마도와의 교섭을 고려하며 그들이 필요로 할 정보가 무엇이고, 조선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했다. 이에 따라 교섭창구에서의 정보활동은 기존에 진행되던 대마도와의 교섭과 맞물리며 진행되었다.
교섭창구에서 오가는 정보는 군사·전쟁정보와 관계변동정보로 구체화되었고, 다시 명·청전쟁과 조·청전쟁, 그리고 조·명관계와 조·청관계로 나뉘었다. 조·명관계와 조·청관계는 각각 경제적인 내용과 정치적인 내용으로 세분화되었다. 조선은 각각의 정보가 대일관계형성의 자원으로써 가지는 가치를 고려하며 이를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 결과 유동적인 흐름을 담고 있는 군사·전쟁정보와 조·명관계의 경제적인 정보는 사실대로 제공되었고, 국제관계의 구조를 담고 있는 관계변동정보, 특히 조·청관계정보는 자세한 내막을 생략하거나 거짓으로 꾸며 전달되었다.
이러한 조선의 선별적인 정보 제공 전략은 대마도의 자율적인 정보 활용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정보를 통해 유동적인 국제상황을 관리하고 있는 조선에게 대마도의 정보 활용은 큰 변수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1644년 청의 입관은 큰 변수가 되어 조선의 정보 활용책에 미묘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청이 중원을 차지함으로써 조선에게 청과의 관계를 설명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은 그간 숨겨온 조·청관계정보를 사실대로 제공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와 맞물려 막부의 대외적 관심도 높아졌다. 1644년 청에 표류했던 일본인이 조선을 통해 귀국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막부는 조선-대마도의 경로로도 대륙의 전쟁정보를 전해들을 수 있다고 새삼 직시한 것이다. 이에 막부는 대마도에게 전보다 강도 높게, 자주 대륙 정보 수집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대륙의 정세를 알고자 하는 막부의 정확한 의중은 1647년에 이르러서야 조선에 전해졌고, 조선은 바로 대륙전쟁과 조·청관계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제공할지 의논하였다. 조·청관계에 관한 정보는 곧 ‘조선의 연호사용’과 ‘조선과 청이 相待하는 예절’로 구체화되었다. 각각의 정보는 서로 면밀히 연결되어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조선은 그 내용을 전략적으로 구성하였고, 제공방식 또한 내용별로 달리하여 조선의 의중과 의도를 강력하게 내비쳤다.
먼저 내용적인 면에서 조선은 청이 중원을 차지하게 된 상황을 철저히 명·청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청의 침략을 받아 강압적으로 그들에게 사대하고, 이후 10여 년 간 청의 간섭을 받아 온 조선이, 청이 주변국을 군사적으로 제압하여 사대를 강요한 과정은 생략하고 명을 멸망시킨 반적 이자성을 물리치는 과정만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조선은 그들의 청 연호 사용과 청과의 상대예절에 대해 나름대로 대답할 명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보 제공 방식에서도 조선은 서계, 편지, 구두전달이라는 세 단계의 방식을 모두 활용해 조선의 의중을 교묘하게 내비쳤다. 먼저 막부가 원했던 정보는 편지로 작성하여 중계자 대마도의 왜곡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조선이 그간 숨기고자 했던 조·청관계정보는 구두로만 전달하고, 이에 대해서 조선이 앞으로 더 할 말이 없다고 서계로 못 박았다.
조선은 막부의 정보 수집을 적기로 삼아 그간 숨겨온 정보를 큰 혼란 없이 공개하였고, 그 안에서도 제공방식을 내용별로 달리하여 안전장치를 심어두었다. 1637~1647년간 펼쳐진 유동적인 국제상황 속에서 조선은 지정학적 특징에서 비롯한 정보력의 우위를 자원 삼아 능동적인 대일외교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42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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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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