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渤海 貞孝公主墓 塼塔 출현의 의미
The Meaning in the Emergence of Stupa on the Tomb of Balhae(渤海) Princess Jeonghyo(貞孝公主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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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유정
Advisor
송기호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사학과, 2018. 8. 송기호.
Abstract
이 논문은 潑海 墓上建築의 양상을 파악하고 8세기 말 발해와 당나라의 문화적 흐름을 살펴보는 속에서 貞孝公主墓 塼塔의 출현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墓上建築은 고분 상부에 건축물이 축조되거나 시설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발해의 경우 塔이라는 건축물이 현존하여 성격과 의미 추론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발해 묘상건축은 塼塔이 축조된 경우인 Ⅰ群, 木塔 혹은 다른 건축물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Ⅱ群, 건축물은 아니지만 고분 상부를 덮은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Ⅲ群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Ⅰ·Ⅱ군에 해당하는 발해 묘상건축물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탑이다. 한편 상부에 탑이 축조되는 경우는 墓上建塔으로 지칭할 수 있다. 발해의 묘상건축 사례 중 靺鞨의 문화가 드러나는 무덤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高句麗나 唐의 문화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발해 文王 넷째 딸의 무덤인 정효공주묘는 계단식 墓道, 羨道, 玄室로 이루어진 塼室墓의 상부에 전탑의 基壇部가 남아 있어 Ⅰ군에 속한다. 정효공주묘는 현재까지 알려진 발해의 묘상건축 사례 중 피장자와 축조연대가 분명한 거의 유일한 경우로 관련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다른 발해 왕실 고분과 달리 葬制와 墓制에서 당의 영향을 크게 받은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축조 연대의 차이가 크지 않은 발해 貞惠公主墓와 비교했을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전탑이 함께 나타나는 정효공주묘의 구조는 당나라의 橫穴式 地宮과 거의 동일하다. 지궁은 탑 아래에 마련한 사리안치실을 의미하는데, 황실 분묘 구조를 차용한 횡혈식 구조가 처음 등장한 것이 唐代였다. 이에 더해 唐 長安 귀족들 사이에서도 묘상건탑 현상이 있었으며, 당나라의 횡혈식 지궁 구조와 당나라의 장안 귀족 불교 문화가 발해에 들어온 결과로 정효공주묘가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기존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중국 내에서 발견된 묘상건탑 관련 실물 자료는 소수에 불과하며, 정효공주묘와 동일한 구조를 보이는 사례도 발견된 적이 없다. 더욱이 이러한 견해만으로 묘상건탑 문화가 발해에 나타나게 된 배경과 축조 목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그런데 정효공주묘의 축조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문헌에서 확인되는 당나라 황실의 塔葬 사례가 있다. 당나라 德宗이 요절한 肅王 祥과 唐安公主, 두 자녀의 장례과정에서 불교의 예에 따라 탑을 세워 고분의 분구 혹은 고분 그 자체를 대신하려했던 모습이 해당 기사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建塔의 목적에 망자에 대한 추도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이 기사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에 더해 묘상건탑 문화가 8세기 말 당나라 황실에도 알려져 있었음은 물론 그를 시행하려 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사료이기도 하다. 이는 8세기 말 발해 내에서의 묘상건탑 문화가 등장하는 배경을 추측할만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正史에서 당나라 황실의 喪葬과 관련된 건탑 기사는 앞서 언급한 德宗代의 두 사례만이 보일 뿐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례는 당나라가 藩鎭勢力의 반란으로 상당히 어려운 정국을 맞이하고 있었던 때에 등장한다. 당대에 불교가 황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건탑의 배경에는 당시의 혼란한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발해의 정효공주 또한 아버지인 文王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문왕 또한 당나라 덕종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요절한 자식의 무덤을 축조하게 된 것이다. 공주의 무덤이 축조된 8세기 말 발해의 정치적 상황 역시 불안정했다. 문왕 사후 왕위 계승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정국의 혼란은 문왕 말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정효공주묘가 축조된 792년은 문왕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당나라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정효공주묘와 그 전탑의 축조에도 추도는 물론 정국 안정의 의미 역시 함께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탑을 지어 무덤으로 삼거나 그 분구를 대신하는 것은 塔葬의 일종으로, 중국과 발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동 시기 티베트와 위구르에서도 해당 사례가 보이며, 후대의 사례이나 西夏와 統一新羅에서도 관련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교롭게도 8∼10세기 唐 혹은 11∼13세기 宋 등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국가들에서 등장하는데, 그 지역 고유의 문화와 섞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효공주묘를 비롯한 발해 묘상건탑의 사례처럼 중국에서 불사리를 장엄하는 가장 존엄한 방식을 따라 고분을 축조한 경우를 현재까지는 어느 지역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발해 정효공주묘와 그 전탑은 동아시아의 탑장 사례 중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추후 塔이나 塔址의 조사 시 염두에 두어야 할 존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This thesis investigates the significance in the emergence of Balhae(渤海) stupa for the Tomb of Princess Jeonghyo(貞孝公主墓).

The stupa (塔) structure of Balhae Myosanggunchuk(墓上建築), which still exists today offers inferential evidence about its nature. Myosanggunchuk refers to any construction, building or structure installed on a tomb mound. Types of Balhae Myosanggunchuk are (Ⅰ) an assemblage (群) built with a brick stupa (塼塔), (Ⅱ) an assemblage with the plausibility of a wooden stupa (木塔) or other installations, or (Ⅲ) an assemblage that, instead of having a constructed stupa, cover the superstructure of the tomb mound. Majority of Balhae Myosanggunchuk structures are stupas. Evidences of tomb mounds in the culture of Malgal (靺鞨) are tenuous among Myosanggunchuk structures since most display influences of Táng (唐) or Koguryo (高句麗).

The Tomb of Princess Jeonghyo contains remnants of stylobates of a stupa on the top of a brick burial chamber(塼室), which belongs in the (Ⅰ) type of assemblages. This is a unique case in the study of Myosanggunchuk structures since the construction date of the tomb and the person buried are established. Unlike the other Balhae royal tombs including that of Princess Jeonghye which share similarities in burial customs (葬制) and tomb construction (墓制) with that of Princess Jeonghyo, the Tomb of Princess Jeonghyo showcase strong displays of Táng(唐) influence.

It is well-known that the structure of the Tomb of Princess Jeonghyo is almost identical to that of a Táng buddhist reliquaries with tunnel entrance (橫穴式 地宮). Initial forms of buddhist reliquaries with tunnel entrance in Táng dynasty derived from royal tombs. On one hand, existing argues that stupas on the superstructure of Balhae tombs derive from Cháng’ān(長安) aristocratic(or noble) culture of Táng dynasty in the 8th century. Not only is the number of original materials found in China on the corresponding topic minuscule, precedential cases showing similar structure as that of the Tomb of Princess Jeonghyo are yet undiscovered. More than all, number of cases of Myosanggunchuk structures in Balhae are insignificant.

Within the similar time frame as the construction of the Jeonghyo Tomb, documents about Tapjang (塔葬, using stupa in burial) in the 《JiùTángshū(舊唐書, history of Táng Dynasty)》 record attempts to construct stupas according to Buddhist decorum in the funeral proceedings of the children(King Sù, Xiáng(肅王 祥) and Princess Táng’ān(唐安公主)) of Táng King Dé (德宗). Such precedents of stupas (建塔) eventually replaced the burial mounds and appeared in the Táng Imperial Household (皇室) in the late 8th century. Also, it is distinctive that the stupa constructions connote symbols of mourning for the child lost to a premature death.

However, the Chinese Authentic Historical Records(正史) allude to only two articles on the stupa constructions related to the Táng Imperial Household in the King Dé Period (德宗代). The period of stupa constructions coincided with the Fanzhen Rebellion (藩鎭勢力의 亂) which had brought immense political turmoil in China. Keeping in mind that Buddhism had close ties with the Imperial Household, the stupa constructions also denote a means to pacify such political instability.

Princess Jeonghyo also met death prematurely before her father, Balhae’s King Mun(文王), When the tomb of Princess Jeonghyo was under construction in the late 8th century, Balhae was faced with great political instability. In 792, a year before King Mun died, royal succession became a focal issue in the political crisis that had stemmed from the late-King Mun period. Considering these contexts, the stupa as well as the brick chamber structure of its basement were displays of memorial symbolism and hopes for political stability.

On the other hand, burial ceremony utilizing stupa in place of mound chamber, or Tapjang was not a unique feature in China or Balhae. Cases of Tapjang culture appeared in Tibet(吐蕃) and Uighur in the similar period as well. Later, cases related to Seoha(西夏) and Unified Silla(統一新羅) emerge. These cases of countries connected with the Táng dynasty in 8th∼10th century and Sòng(宋) dynasty from 11th∼13th century show various forms of Chinese influence and indigenous cultural mixture. However, cases that constructed burial mound according to the utmost dignified customs of Buddhist reliquary other than that of the Balhae Myosanggunchuk or the Princess Jeonghyo tomb, are yet unconfirmed. The Princess Jeonghyo Tomb, therefore, occupy a distinctive position among East Asian Tapjang cases, and requires further scrutiny in the future investigation of stupas or stupa sites.



keywords : Balhae, The Tomb of Princess Jeonghyo, Myosanggunchuk(Construction or Structure Installed on the Tomb), Myosangguntap(Construction of Stupa on the Tomb), Tapjang(Using Stupa in Burial), King Dé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4447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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