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무기금지협약의 선(先) 체결 요인 분석: 생화학무기의 효용과 터부를 중심으로

Abstract

무정부상태의 국제정치 환경에서 국가들은 생존과 직결되는 안보를 최우선시 한다. 서로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팽배해있는 상황에서 한 국가의 안보 강화는 다른 국가의 안보 약화로 이어지곤 한다. 이러한 국제정치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안보협력, 그 중에서도 한 국가의 군사력의 근간이 되는 무기의 한 카테고리 전체를 금지시키는 무기금지협약은 상당히 흥미롭다.

본 연구의 핵심 질문은 왜 생물무기금지협약이 화학무기금지협약과 분리되어 먼저 체결되었는가?이다.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는 역사적으로 항상 함께 분류되어 잔인성과 그에 따른 사용 금지에 관한 논의가 함께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에서 군비해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두 무기가 따로 분리되었고 생물무기가 1972년에 먼저 금지협약이 맺어지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생물무기금지협약의 선(先) 체결에 기여한 요소로 무기에 대한 효용과 국제적 수준에서 형성, 유지, 강화 된 생화학무기에 대한 터부를 살펴본다.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은 당사자인 국가의 이익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국가의 이익은 당시 군비해제 협약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영국과 미국이 판단하는 생화학무기의 효용과 그에 따른 전략으로 상정하고 살펴보았다. 하지만 본 연구는 생물무기금지협약이 화학무기금지협약에 비해 먼저 체결된 데에는 단순한 국가의 이익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며, 이 공백을 국제적으로 형성된 터부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살아있는 유기체에게만 피해를 끼치는 생화학무기 군비해제 논의의 경우, 국제적으로 형성된 무기에 대한 혐오감과 거부감, 즉 터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생화학무기의 속성에서 기인한 기존의 터부가 유엔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다가 무기 각각의 속성에 근거하여 터부가 분화되고, 생물무기의 터부가 화학무기보다 강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화학무기에 비해 생물무기 터부가 강조된 것이 생물무기금지협약이 화학무기금지협약과 분리되어 먼저 체결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정부상태의 국제정치 환경에서의 쉽지 않은 안보협력의 한 형태인 군비해제 협약을 다룬다. 서로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만연해있는 국제정치 지형에서 군사력의 근간이 되는 무기의 한 카테고리 전채의 개발, 생산, 비축을 금지하는 군비해제 협약은 흔하지 않다. 이 맥락에서 국제적으로 존재하는 무기금지협약 중 다자주의이면서 무기의 한 카테고리 전체를 금지하는 협약인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둘째, 본 연구는 핵무기와 함께 대량살상무기로 분류되는 생화학무기를 다루고 있다. 압도적인 파괴력에서 기인한 핵무기의 지위에 가려져있는 생화학무기를 다시금 조명하며, 대량살상무기의 무기해제 협약 체결 담론에 통찰력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에 있어서, 더 나아가 군비해제 협약 체결에 있어서 국가의 이익이 아닌 규범적인 요소인 터부에 주목하였다. 무기라는 것은 본디 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무기들과 다르게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생화학무기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혐오감과 거부감이 두 대량살상무기의 금지협약 체결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