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에 나타난 정체성 탐색과 '비어있음'

Abstract

이 연구는 『이아생트』에서 등장하는 이름 없는 화자가 소설의 주인공이며, 정체성을 탐색하는 서사임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아생트 삼부작 중 하나인 이 소설은 바슐라르의 시학과 함께 등불 이미지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또한 『이아생트』를 하나의 개인신화로 분석하며 화자의 운명탐색 서사로 바라본다. 『이아생트』의 기존 연구가 이미지 중심 혹은 서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이미지와 서사 모두를 중첩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자 한다. 그 중첩의 지점에 사건의 출현과 공백의 소진이 있으며 이는 화자의 정체성 탐색의 방법이 된다.

우리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름 없는 화자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이 연구를 시작한다. 『이아생트』는 이름 없음, 기억 없음으로 묘사되고 있는 화자의 모호한 정체성을 탐색하는 소설이다. 20세기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영향으로 인간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라는 실존적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화자 또한 자신에게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탐색을 시작했으며 점차 실존의 문제로 그 질문을 발전시킨다.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화자는 자신에게 부재하는 것들을 탐색하고 동시에 비워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비어있음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화자에게 주목하며 소설 속 등장하는 많은 이미지들과 목표들을 각각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

화자는 탐색의 결과물들을 항상 소진시키지만 또 다시 새롭게 정체성 탐색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 과정을 반복한다. 그의 정체성 탐색은 등불 응시, 늪으로의 산책, 이아생트 응시, 말코르 숲으로의 산책으로 이어진다. 화자는 첫 번째 응시와 산책에서 타자 탐색을 통해 분신과 자아를 되찾는다. 이때 타자 탐색은 타자 자체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통해 자신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응시와 산책에서 자아탐색을 하며 불가능한 애도의 대상과 기억을 되찾는다.

사건의 출현과 소진을 반복하는 화자의 정체성 탐색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아생트와 화자의 관계는 무엇인가? 의문을 갖는다. 화자에게 재출현한 존재인 이아생트는 불가능한 애도의 대상이다. 그녀는 유령이며, 이러한 관계는 화자의 글쓰기 행위로 더욱 확실시 된다. 화자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지만 그의 글쓰기는 이제 비시간적인 현재를 살아가기 위함이다. 글쓰기로 과거와 이름, 불가능한 애도의 대상까지 확인한 화자는 다시 이 모든 것을 소진한다. 마침내 비참함을 느낀 화자는 거기서 자신의 탐색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건을 기다린다. 곧 하나의 숨결이 불어오고 이 숨결은 화자에게 사건의 출현으로 다가온다.

보스코의 정체성 탐색의 서사는 끊임없는 회귀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때 회귀는 순환의 의미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비어있음이 있으며 이를 출발점으로 화자는 자신의 정체성 탐색을 지속한다. 『이아생트』는 사건의 출현과 소진, 응시와 산책의 반복으로 서술되며 보스코는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