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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隱 李穡의 불교 堂號記 연구
A Study on Mokeun Lee Saek's Buddhist Dangho-gi(堂號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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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유수빈
Advisor
이종묵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9-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2019. 2. 이종묵.
Abstract
本论文是关于历史上大转折期的高丽后期文人牧隐李穑(1328~1396)的文学研究。本论文的目的是探究儒教在完全掌握思想主导权之前,与佛教共存的形态中,性理学因素和佛教因素相互融合,形成独特美感的李穑文学的一面。
直到高丽末期为止,在文学讨论方面,还没有一个思想标准。但是随着性理学的普遍接受,文学的本质并没有从其内质中被辨别出来,而是出现了由文学外的思想标准来讨论的倾向。儒教与佛教形成对立而批判佛教是自高丽末期接受性理学之后出现的新的现象。
李穑作为韩国的儒宗,在奠定性理学基础方面起着举足轻重的作用,但其始终没有放弃佛教的亲缘性。因此,他的文学不仅没有局限于性理学,而且还具有浓厚的佛教色彩。他以写高丽恭愍王时期的王師懒翁惠勤(1320~1376)的塔碑铭和写神勒寺的大藏经佛事为契机,与懒翁的门徒们交流甚繁,并留下了很多解释懒翁堂号意思的文章。对此,本论文在对堂号的分析中, 着眼于能够自然地反映作家思想这一点, 将僧侣堂号的记、说、序合为一个作品群,并首次将它们命名为”佛教堂号记”,以及首次对这些作品进行分析。
首先在预备性考察中,提出佛教堂号记的概念,并查看相关作品的目录,叙述了李穑时期以前以何种形式展开。由此可见,李穑无论是与同时期的文人相比,还是与他的先贤们相比,都是独一无二的,他对佛教堂号记的贡献最多。李穑的这种创作倾向,一方面与高丽末期文坛写作的变化脉络相伴,另一方面与李穑个人失意期的生活状态有关。
李穑的佛教堂号记以僧侣的取别号方式可分为两种。其一是借用儒教或佛教书籍中出现的概念词取别号,其二是以自己居住空间周围的山水景物取名。堂号为概念词时,李穑积极运用了引用该概念出现的儒教或佛教经典;此方式谓为注疏体。此时,堂号在容纳原有思想的同时,也表现出对这种思想进行新的分割、接合、改变、创造新意的倾向。堂号为自然物时,对自然物的描述及其背后的意蕴表达方式尤为突出。这种情况下,堂号所具有的象征意义更加强化,并呈现出扩大为心性论的一面。
李穑的佛教堂号记完整地反映了儒教代替佛教的思想转换时期,李穑所表现出的包容态度。李穑在儒教中以性理学为基础,既采取’载道论’的文学观,也采取与性理学有一定距离的古文观和注疏体。李穑对佛教相关书籍做了多篇跋文或序言,以此为基础他还涉猎了《传灯录》、《圆觉经》、《楞严经》等禅宗的主要书籍,甚至引用了禅宗之一类的永嘉玄觉的《证道歌》。这种包容的态度进一步延伸至对儒教和佛教整体的包容。在家庭氛围的影响下和在寺庙的学习经验以及由此带来的与许多僧侣的交流中,李穑对佛教形成了无法割舍的亲缘性。而且以居敬为主,强调实践伦理、并涉猎佛教、老庄的元代性理学学风的影响下,不是从排斥异端的角度,而是从包容的角度认识佛教。
李穑未跟随批判佛教的潮流,创造了自己独一无二的思想,并通过文学来表达他的思想。
본고는 역사상 일대 전환기에 해당하는 고려 후기의 문인 牧隱 李穡(1328∼1396)의 문학에 대한 연구이다. 본고의 목적은 유교가 사상적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이전에 불교와 공존했던 양상 속에서 성리학적 요소와 불교적 요소가 서로 어우러지며 독특한 미감을 형성했던 이색 문학의 일면모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고려 말 이전까지만 해도 문학을 논함에 있어 하나의 사상이 표준이 된 일은 없었다. 그러나 朱子學이 수용됨에 따라 문학의 본질이 그 내질에서 변별되지 못하고 문학 외적인 사상적 표준에 의하여 논의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유교가 불교와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하며 불교를 이단으로 비판한 것은 고려 말에 주자학이 수용된 이후부터 나타난 새로운 양상이다.
이색은 東國의 儒宗으로서 성리학의 기반을 다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대한 친연성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그 결과로 그의 문학은 성리학 일변도에 그치지 않고 불교적인 색채 또한 농후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공민왕 때의 王師인 懶翁 惠勤(1320~1376)의 塔碑銘 찬술과 神勒寺 大藏經 佛事를 계기로 나옹의 문도들과 폭넓은 교유 관계를 형성하며 그들의 堂號에 담긴 뜻을 풀이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이에 본고는 당호의 의미를 해설한 글 속에 작가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승려의 당호를 풀이한 記·說·序를 하나의 작품군으로 묶어 ‘불교 당호기’라 칭하고 이들 작품을 함께 분석하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먼저 예비적 고찰에서는 불교 당호기의 개념을 제시하고 해당 작품의 목록을 살펴본 뒤 이색을 기점으로 그 이전 시기에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개관하였다. 이를 통해 이색이 고려 말의 문인뿐만 아니라 그 이전 시기의 문인과 비교하여도 독보적일 만큼 가장 많은 수의 불교 당호기를 남겼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색의 이러한 창작 경향은 한편으로 고려 말 문단에서의 글쓰기의 변화와 맥을 함께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색 개인의 실의기 삶의 양상과 관련되어 있다.
이색의 불교 당호기는 승려의 당호를 짓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유교나 불교의 서적에 등장하는 개념어를 차용하여 짓거나, 자신의 거처 공간 주변의 산수 경물을 나타내는 자연물의 명칭을 취하여 짓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색은 당호가 개념어인 경우, 그 개념이 등장하는 유교나 불교 경전의 전고를 인용하는 註疏體의 방식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때 기존의 사상을 수용하되 자신이 그 사상을 새로이 分節하고 接合하기도 하고, 變改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創出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호가 자연물인 경우, 자연물에 대한 묘사와 그 이면의 의미 도출의 방식이 두드러진다. 이 경우 그 당호가 지닌 상징성이 더욱 강화되면서 心性論으로 확대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색의 불교 당호기는 유불교체기라는 사상적 전환기에 이색이 보여주었던 ‘包幷’의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이색은 유교에서 性理學을 기반으로 載道論的 문학관을 취하면서도 성리학과 다소 거리가 있는 古文觀과 註疏體에 대해서도 상당히 포용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한 이색은 불교관계 서적에 대해 발문 또는 서문을 다수 지었는데, 이를 기반으로 『傳燈錄』, 『圓覺經』, 『楞嚴經』 등의 선종 주요 서적을 섭렵하였고 禪詩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永嘉 玄覺의 『證道歌』까지 두루 인용하였다. 이러한 포용의 태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유교와 불교 전반에 대한 包幷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색은 집안 분위기의 영향과 山寺에서의 修學 경험 및 그로 인한 여러 승려들과의 교유를 통해 끊어낼 수 없는 불교와의 친연성을 형성하였으며, 居敬을 위주로 실천윤리를 강조하며 불교, 노장까지 두루 섭렵한 원대 성리학 학풍의 영향을 받아 이단 배척의 차원이 아닌 포병의 차원에서 불교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색은 이를 통해 불교 비판 일변도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사상적 경지를 확보하며 이를 문학을 통해 표출할 수 있었다.
Language
kor
URI
http://hdl.handle.net/10371/15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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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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