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ations

Detailed Information

신라 고분의 구성 정형 연구 : Patterns of Mortuary Practice : the Social Implications of the Graves and Grave Goods Composition of Silla High-mound Tombs
적석목곽묘 피장자의 성격 복원을 중심으로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하대룡

Advisor
이준정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고고학전공)
Issue Date
2019-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고고학전공), 2019. 2. 이준정.
Abstract
월성북고분군을 중심으로 축조된 적석목곽묘군은 신라 고분 연구의 핵심 자료로써, 이를 핵심으로 하여 신라 고분의 시공간적 전개 양상이 규명되고, 사회 구조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석목곽묘의 부장품과 유구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구성이 경주지역 내적으로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며, 지방 고분의 구성은 경주와 어떻게 같고 다르며 그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된 바가 많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피장자의 성격 규명에서 시작하여 적석목곽묘를 비롯한 신라 고분의 구성 원리와 그 사회적 의미에 대해 접근하였다.

먼저 적석목곽묘 피장자의 성격 규명은 연구사적 검토를 토대로 착장 이식과 성별, 계서의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착장 이식에 대해서는 현존 인골 자료와 대조한 결과 기존 논의와 달리 세환이식과 태환이식이 남녀 성별과 대응하지 않아, 기존에 논의된 것처럼 성별이 아닌 직능이나 사회적 역할 등 피장자 성격의 다른 측면에 대응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피장자 성별에 대한 대안적 접근을 위해, 인골 자료의 부재를 보충할 수 있도록 피장자 신체 대소의 차이를 담보할 수 있는 자료인 천을 분석하였다. 금속제 고정형 천의 내경 크기 분포에서 나타나는 계측적 차이를 손 너비의 성별이형성(性別異形性)을 토대로 해석하고, 이를 일본 야요이 시대의 남녀 착장 패천, 무령왕비 소유품, 그리고 현대의 것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신라 고분 출토 천은 여성만이 착장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또한 천의 착장 여부는 적석목곽묘의 부곽 설치 여부와 완전히 연동하는 양상이 확인되어 묘곽 형식과 피장자 성별 간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피장자의 계서를 복원하였다. 성별과 착장 이식에 따라 착장위세품이 차별적으로 구성된 양상을 확인하였으며, 이를 고려하여 남성 세환군, 남성 태환군, 여성 세환군, 여성 태환군의 4개 군으로 구별하여 계서를 검토하여 각각이 경식, 천, 지환, 대도 등의 착장에 있어서 서로 다른 착장 규정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각 군에서는 대체로 이식-대장식구-대관-금속제 모관(부장)까지 이어지는 공통적인 누적적·위계적 구성을 보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계서를 설정하여 위세품이 전혀 없는 F군에서부터 금속제 모관의 부장이 이루어진 A군까지 여섯 단위로 계서를 설정하였다.

그 이후로는 앞서 밝혀진 피장자 성격에 따라, 즉 피장자의 성별, 착장이식, 계서에 따라서 적석목곽묘의 부장품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살펴보았다. 무구와 마구의 경우는 성별에 따라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착장 이식에 따라 부장 여부가 결정되는 측면이 컸다. 세환군의 분묘에서는 성시구와 갑주, 등자가 높은 부장비를 보였으나, 태환군에서는 매우 한정되는 양상을 보였다. 철기의 부장량에서도 착장 이식의 영향이 크게 나타났는데 세환군의 철기 출토량이 태환군에 비해 우세하였으며 특히 무기류가 그러하였다. 다만 모든 철기류에서 일관적으로 세환군이 우세하지는 않았으며, 기경구적 성격을 갖는 농구류는 높은 계서의 태환군에서 부장률이 더 높았다.

반면에 토기의 부장은 성별과 높은 관련성을 보여 평균적으로 남성묘에 여성묘의 두배에 달하는 수량이 부장되었고 부장 수량과 연관된 기종 다양성 역시 남성묘에서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별 간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은 배류로써, 남성묘에서는 이단고배의 부장비율이, 여성묘에서는 일단고배와 개배의 부장비율이 높았다. 토기의 부장은 계서에 따라서 결정되는 측면도 컸는데 높은 위계에 있는 피장자의 부장량이 일관적으로 증가하였으며, 기종 다양성도 상위위계에서 더 높았다. 다만 계서에 따른 수량의 증가양상은 성별 간 차이를 보이는데 남성은 계서에 따라 부장량의 증가가 매우 크게 나타나는 반면 여성은 상대적으로 균등한 부장량을 가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철기와 토기의 부장은 피장자의 계서, 성별, 착장 이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임을 확인하였고, 따라서 조묘자들은 부장품의 종류와 양을 임의로 결정한 것이 아니며 모종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적석목곽묘의 부장품을 조성하였던 것으로 해석되었다.

다음으로 적석목곽묘의 군집화와 피장자의 성격이 어떠한 관련성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검토하였는데, 군집화 양상은 크게 봉토와 호석을 공유하는 연접축조와 일정 지점에 모이되 봉토와 호석을 공유하지 않는 소군집화로 구분할 수 있었다. 먼저 연접축조에 대해 검토한 결과 표형분을 비롯한 연접분 대부분이 하나의 성별로 구성되어 부부묘나 핵가족적 가족 구성으로 한정시킬 수 없음이 확인되었고, 오히려 남성묘와 여성묘가 각각 별도의 연접을 이루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그리고 남성묘와 여성묘가 함께 연접되는 경우는 마지막에 여성묘가 축조되면서 연접이 중단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또한 착장 이식에 따른 양상을 살펴보면 주로 세환군이 우세한 가운데 자유롭게 구성된 듯 보이지만, 태환군과 태환군이 연달아 축조된 연접분은 존재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연접에 있어서 후축분의 조묘자가 선축분 피장자의 착장 이식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며, 그들이 가까운 사회적 관계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소군집화는 조사 현황을 고려하여 왕릉군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는데, 봉토의 규모를 토대로 피장자의 계서를 추정하고, 앞서 실시된 분석을 토대로 성별을 추정하였다. 이러한 추정 하에 분석을 시행한 결과 왕릉군의 군집화는 황남대총 남분, 봉황대, 서봉황대 등 남성 세환군 피장자를 중심으로 여성 피장자가 그 주변에 종속분으로 입지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패턴은 적석목곽묘 조영 기간 내내 반복되므로, 부장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유구에 있어서도 모종의 합의가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와 고분 구성 간의 관계가 이러하였다면, 그 다음으로 낙동강 이동의 각 지방 고분에서는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분석하였다. 먼저 성별을 검토한 결과 지방 고분에서는 적석목곽묘에서처럼 성별에 따라 묘곽 형식, 특히 부곽의 설치를 차별화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적석목곽묘의 분석에서처럼 성별에 따른 차이는 검토할 수 없었으며, 주로 착장 이식에 따라 부장품의 구성과 유구 배치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착장위세품 구성이 세환군과 태환군으로 양분되고 두 개의 군에서 무구, 마구가 차별적으로 부장되는 양상이 적석목곽묘가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대체로 이식→대장식구→관류의 착장 또는 부장으로 이어지는 계서 구분도 유사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또한 철기의 부장양상에 있어서는 경주의 세환군, 태환군과 지방의 세환군, 태환군이 각각 복식군 별로 유사한 출토율을 보였으며, 연접축조 역시 태환군과 태환군 사이의 연접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 점이 적석목곽묘와 동일하였다.

지방의 전반적인 착장 위세품의 출토율이 약간 낮고, 경주에서 나타나지 않는 금속제 관모와 관식의 착장이 확인되는 점, 그리고 경식과 대도의 동시착장이 경산지역에서만 나타나는 등 경주와 지방 간의 차이, 그리고 지역들 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체로 동일한 부장 규정이 적용된 것으로 판단되어 경주와 지방을 포괄하는 장례 규범 혹은 부장 규범이 존재하였고 그것이 준수된 양상으로 해석된다.

이상의 분석 결과 적석목곽묘 피장자의 성격에 따라 부장품의 구성과 유구 배치의 양상에 있어 상당한 정형성이 관찰되어, 피장자의 성격을 규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일련의 장례 수행 방식이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례 수행 방식이 어떠한 과정과 배경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러한 체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착장위세품의 출현 시점을 살펴본 결과 이들이 일정한 공반 양상을 보이면서 피장자의 신체에 착장되는 시기는 최병현의 편년에 따르면 신라 전기의 1B기로 파악되었다. 이 시기는 또한 신라양식 토기의 성립, 적석목곽묘의 축조, 신라 고분의 고총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여, 신라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때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별의 분화는 현재 자료 상 황남대총 북분을 시작으로 전기 2기부터 나타나는데, 이는 성별에 따른 사회적 구분이 계서에 의한 수직적 구분과 이식에 의한 수평적 분화보다 후행하는 것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성별과 착장 이식에 따른 부장 양상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남성묘와 여성묘의 차이는 착장위세품과 부장품 중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른, 즉 위세 형성 방식에 차이의 의한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착장 이식의 차이는 세환군에 전반적으로 철기 부장량이 더 많고 무구와 마구가 많이 부장되는 점을 고려하여 세환군은 경제력과 무력을 바탕으로 하는 세속적 권력을, 후자는 그와 상보적 관계를 갖는 의례적·종교적 권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권력의 분장에 따른 신라 엘리트의 평면적 분화로 판단된다. 이처럼 적석목곽묘 피장자 집단은 성별과 착장 이식의 두 가지 측면에서 분화되어 남성 세환군, 남성 태환군, 여성 세환군, 여성 태환군의 네 가지 복식군으로 분리되었고, 각각은 계서에 의해 수직적으로 구분되었다. 또한 각 복식군은 부장품과 묘곽 형식에 있어 뚜렷이 차별화되는 부장 규범을 갖는 바, 적석목곽묘에는 이러한 원리에 의해 구조화된 신라 사회의 질서가 이상화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 고분의 고분 구성에서는 피장자의 착장 이식을 중심으로 부장품 구성과 유구 배치 방식에 있어서 적석목곽묘과 동일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경주 내부의 사회적 질서와 구조화 방식이 다른 지역의 엘리트에게 파급되었고, 지역 엘리트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장례 의례 과정에서 재생산한 것으로 해석되며, 고분 자료의 지역성은 그러한 재생산 과정에서 나타난 부수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신라 고분 전반의 유물과 유구의 구성에 나타난 정형성은 당시 엘리트들이 사회 구조적, 이념적으로 공통적인 배경을 갖고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하므로, 신라 고분의 지역색이 정치적·의례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고총기는 적석목곽묘 축조집단의 사회질서와 구조가 지방에 파급되는 시기로써, 지역 엘리트는 이를 수용하여 신라 중앙에 동화하는 과정에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Silla high-mound tombs are regarded as proxies of the growth of Silla as a state and symbols of political domination. As the core materials investigated in the study of Silla burials, the wooden chamber tombs with stone mounds in the Wolseong North Burial Ground in Gyeongju have long been the focus of research concentrating mainly on chronology and social hierarchy.

Nevertheless, the composition of grave goods, the arrangement of graves, and the socio-political implications of Silla burials are not well understood. This study aims to identify the social identities of the deceased, the compositional principles of the graves, and the social significance of Silla high-mound tombs with stone mounds. Three major aspects of social identity were investigated: dress accessories (with an emphasis on earrings), sex/gender, and social rank. Silla earrings consist of two specific types-thick hollow earrings (TTE) and thin solid earrings (TSE)-which can be used to distinguish two elite groups. In contrast with much former research, the current osteological data suggest that these two types of earrings do not correspond with the biological sex of the deceased. In order to determine the gender of the deceased, the inner diameter of the metal bangles worn by the deceased were analyzed on the basis of sexual dimorphism. Rather than showing a bimodal distribution, the normal distribution of bangle diameters strongly suggests that only females wore the bangles, and unlike the Japanese Yayoi bangles worn by both males and females, metal bangles were clearly gendered objects in Silla burials.

Considering these analyses, four different groups of Silla elites were identified: the male TTE group, the male TSE group, the female TTE group, and the female TSE group. Each group was associated with cumulative dress accessories that can be classified into six hierarchical ranks, but each group was associated with distinctive subsidiary accessories at the same time. Moreover, each group had clearly distinct grave types and grave-good assemblages that differed according to gender or earring type. For example, only male graves had separate pits for grave goods and large quantities of pottery, and only the TSE-group grave assemblages consisted of iron swords, armor, stirrups, and weaponry, regardless of gender. By contrast, the TTE group graves contained limited amounts of ironware and weaponry, implying that the TSE and TTE groups had different social roles.

The social identities of the deceased were also a decisive factor in the arrangement of graves. In contrast with commonly accepted interpretations, this study revealed that Silla burials were not family graves
single-gender clustering was prevalent, inferring that family relations were not a key factor in the arrangement of graves. In the case of conjoined mounds, not a single example of two conjoined TTE-TTE graves was observed, suggesting the existence of restrictive regulations in the arrangement of burials.

The results of the above analyses suggest that there were certain types of funerary norms based on the social identities of the deceased that followed a social consensus of Silla society. These results also suggest that Silla elites differentiated themselves by gender, social role, and social rank, and the social order of Silla society structured by these principles is clearly expressed in idealized form in the burials at Gyeongju, the center of the Silla state.

At the periphery of Silla, in the Yeongnam Province area, gender expression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center. Female graves also had separate pits for grave goods and therefore had similar quantities of pottery with male graves. However, graves in the periphery shared similar norms with Gyeongju graves in terms of grave-good composition and conjoined mounds with TTE and TSE assemblages. This strongly suggests that the social order and structure of the central elites of Gyeongju proliferated to the periphery of Silla and that local elites in the periphery actively accepted and reproduced them in their mortuary practices. These strong patterns in the composition of burials suggest that elites shared a common background in social structure and ideology. From this point of view, the high-mound tombs period is regarded as a time of assimilation of peripheral elites to the center, the state of Silla.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272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Altmetrics

Item View & Download Count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