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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특공위령과 죽음의 정치 : Commemoration of Kamikaze Soldiers and the Politics of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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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영진

Advisor
김광억
Major
인류학과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Abstract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지난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기억과 재현을 둘러싸고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기억의 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 논란의 핵심은 지난 전쟁에서 발생한 무수한 죽음들에 대한 정당한 애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인식논쟁이나 야스쿠니신사 참배논쟁으로 대변되는 과거를 둘러싼 현대 일본 사회의 투쟁은 전후 일본의 전몰자 추도의 대표적인 수사이자 전후 어느 시기까지 일본 사회의 감성을 대변하는 듯 보였던 평화의 초석(礎石)론(혹은 위령, 평화, 번영의 삼중주)이 공동화되는 가운데,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서로 다른 여러 의미들을 부여하려고 하는 여러 주체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전사자 위령, 즉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자들의 죽음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전후 일본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기억, 그리고 애도(哀悼)의 정치라는 문제의식 아래 새로이 재구성하는 것이다. 특히 본고는 지난 전쟁이 낳은 무수한 전사자들 중에서도 흔히 가미카제라 불리는 특공의 위령에 초점을 맞춰, 전시 말기 다수의 특공기지가 있었던 가고시마 지역에서 그 죽음에 대한 위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는지 민족지적 현지 조사 및 다양한 문서 자료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고찰하였다. 가고시마를 연구 대상지로 선택한 이유는, 현재까지도 과거 특공 기지가 있었던 각지에서 자체적으로 특공 위령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지역에 따라서는 특공 기념관까지 갖추고 있어서 명실 공히 특공의 성지로 자리매김 되어왔기 때문이다.
전시기에 발생한 다양한 전사의 유형 중에서도 특공대의 죽음(特攻死)은 전후 일본에서 전사를 바라보는 두 측면, 즉 순국과 개죽음의 양면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물론 지금까지도 특공대원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조국애에 충만한 순수한 젊은이들의 헌신적인 희생, 즉 순국(殉國)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죽음은, 자신들의 제사를 지내 줄 후손을 갖지도 못한 채(집안의 선조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젊은이들이 10-20대라는 어린 나이에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고유한 죽음 관념에서 본다면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의 죽음(異常死)인 동시에, 지는 것이 명약관화한 전쟁에 군부의 비이성적인 명령에 억지로 떠밀려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개죽음(=무의미한 죽음)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특공사는 전국 전몰자 추도식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공식적인 위령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애도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사(나아가 특공사)의 양면성이 갖는 이러한 위험성은 적어도 공식적 위령제에서는 거의 표면화되지 않으며, 유효시기가 이미 지난 평화의 초석론만이 아직도 공허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그것은 체험자와 유족의 고령화로 위령제가 그 기억의 장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가고시마의 치란이나 반세 등지에 건립된 특공 기념관은 전후 일본 사회에 특공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감정기관(emotive institution)으로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이러한 특공 재현의 지역적/국가적 장치를 감싸고 있는 것은 진한 노스탤지어로 치장된 감상주의(romanticism)이며, 동시에 이들의 순수하며 헌신적인 희생에 대한 강조를 통해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현대 일본 젊은이의 표본으로 삼고자 하는 도덕주의적 의지(will)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재현 전략은 전후 일본 사회의 비틀림을 의식하는 일본 대중들에게 강한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온 일련의 전쟁들과 그로 인해 발생한 무수한 죽음들을 수습해온 지난 근대 일본의 역사를 통해 형성되어온 감정의 공동체로서 국민의 감정의 구조/층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육친을, 혹은 지인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이라는 감정은 진보 진영의 슬로건인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전후 민주주의의 계승이라는 이성적 언어로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전후의 진보 진영은 이들의 감정을 끌어안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공간은 야스쿠니신사로 대변되는 보수진영에 의해 장악되었다. 다시 말하면 내셔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의 하나인 국민의 감정의 영역이 보수진영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특공대원으로 차출되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 청년들, 소위 조선인 특공대원, 그리고 전쟁 말기 특공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연행되어 이국의 땅 가고시마에서 비운의 죽음을 당한 조선인들을 별도의 절을 통해 고찰한 것은 현대 일본 사회 내에서 국가를 위한 죽음으로 쉽게 환원되어 버리는 지난 전쟁들의 죽음들(소위 3백만 전몰자) 속에 존재하는 여러 이질성들을 드러냄으로써, 그러한 봉합이 일시적 미봉책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결코 봉합될 수 없는 실재(the Real)의 영역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것은 현대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지난 전쟁과 죽음에 대한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그 베일을 벗겨내 지난 전쟁과 그 죽음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역사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다시 말하면 왜 그러한 무의미한 죽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물음을 통해, 지난 전쟁의 과오를 논리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현대 일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지난 전쟁의 전쟁사자들에 대한 정당한 애도의 결여, 그로 인한 우울증적 증상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이 상실되었는가를 직시하고 그 상실을 상실로서 받아들이는 고전적인 정신분석의 치유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 자는 과연 죽은 자와 어떻게 만나야 할 것인가, 즉 그 죽음을 성급히 산 자들의 논리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도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애도하는 것이야말로, 전사자의 기념을 둘러싼 현대 일본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첫 출발점인 것이다. 물론 그 출발은 지난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가졌던 회환(悔恨)이나 원한(怨恨)과 같은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힘들에 주목하면서도 동시에 과도한 심정적 낭만주의를 경계하면서, 이 힘들을 전후 일본사회라는 사회구성체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통한 변혁의 구체적 이미지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전화(轉化)시키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원통하게 죽어 이 세상을 방황하고 있는 죽은 자들의 유령을 어떻게 해원(解寃)의 길로 이끌고 갈 것인가라는 실천적 문제이기도 하다.
The post-war Japanese society has been dotted with the strife regarding collective memory about the World War II(Asia-Pacific War). One of the important contentions about this war in the Japanese society is that "fair" mourning has not been done for innumerable deaths that occurred during the war. Initially, the representative rhetoric for honoring Japanese war-deads was the "cornerstone for peace" argument, which corresponds with many Japanese people's structure of feelings about the war. However, as the "cornerstone for peace" argument lost grounds in early 1990s, it was gradually followed by the above-said strife, often referred to as the "historical awareness debate" and the "Yasukuni shrine visit debate", which reflected the collision of several factions' attempts to impart their unique meanings to massive death during the war in the Japanese society.
The main objective of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perspective of the "politics of mourning" in reorganizing important issues regarding how those alive has remembered and commemorated Japanese war-deads who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 state in the post-war era. I conducted ethnographic field research and archival research in order to investigate how Kamikaze soldiers have been commemorated in the region of Kagoshima, the main base of Kamikaze attack operation during the war. Specifically, I focused on the commemoration of Kamikaze soldiers' death because their death most clearly illustrates the double-sidedness which death in the battle field connotes: 'sacrifice for the country' and 'meaningless death of individuals'. On the one hand, Kamikaze death is often regarded as desirable as it is construed as devotional sacrifice of innocent, patriotism-filled youths. On the other hand, their death is construed as meaningless and abnormal, in view of traditional Japanese notion, in that most Kamikaze soliders lost their lives so young that they did not have their descendents who would hold annual memorial services for their death. For this reason, the latter construal carries the risk of tarnishing how their death has been officially commemorated in the annual memorial services for Japanese war-deads.
From the perspective of politics of mourning, the above-said double-sidedness of death in the battle does not come to the surface in most commemoration rituals for Kamikaze soldiers held in Kagoshima. It means that the importance of the commemoration rituals as a mnemonic site has been lost, as the number of the people who has experienced the war-time diminishes. Instead, their role is taken place by the memorials of Kamikaze which is located in Chiran and Banse in the Kagoshima region. The exhibition of memorials is filled with nostalgic depictions of Kamikaze soldiers' death as selfless devotional sacrifice for the state. And also, it is driven by the conservative faction's dydactic will of providing a moralistic role model for spoiled modern-day Japanese youths.
In order to examine the origin of persistent reproduction of the "cornerstone of peace" argument in Kamikaze commemoration services, I focus the structure of feelings in Japanese society that can be termed as "the community of feelings", which had been formulated in modern history of Japan dotted by a series of wars that Japan engaged in since the Sino-Japanese War(1894). Firmly adhering to the rational principles of repentance of starting wars with neighboring countries and protecting , Japanese progressive camps failed to embrace the feeling of sorrow that fallen soldiers' families had experienced and thus were left out in the commemoration services for Kamikaze soldiers. It was conservative factions that successfully laid exclusive claim to the "community of feelings".
Furthermore, I examined the distorted memory of fallen Korean Kamikaze unit soldiers and Korean laborers forced to build airfields for Kamikaze operations in the Kagoshima region. The examination of memory of "aliens" in the war-era illustrates the heterogeneity of war deads, which is largely ignored in commemoration of Kamikaze soldiers in Kagoshima and other regions in Japan. This demonstrates the possibility that the distortion of memory of "alien" soldiers and laborers in part explains the ever popular romantic tone revealed in the official commemoration of Kamikaze soldiers' death in Kagoshima.
In sum, the post-war Japanese society appears to suffer melancholia due to the lack of "fair" mourning for the war deads. I propose that the melancholia may be reduced by adopting the Freudian psycho-analytic principles, which let one recognize what has been lost and accept the loss. In other words, the Freudian principles will help the Japanese society commemorate the war deads in such a way that may be appreciated by those who lost their lives during the war.
1990年代以降、日本社会においてはアジア-太平洋戦争の記憶と再現をめぐって熾烈な「闘争」が多様に繰り広げられている。「記憶の戦争」とも呼ばれるその争点は、先の戦争によって産み出された無数の死者たちに対して正しい哀悼が行われてい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言い換えれば、「歴史認識論争」や「靖国神社参拝論争」に代表される過去をめぐった現代日本社会の戦いは、戦後日本の代表的な修辞(レトリック)といえるもので、ある時期まで日本社会の感情の領域を象徴しているかのように見えた「平和の礎」論(若しくは、「慰霊、平和、繁栄の三重奏」)が空洞化して行くなかで、その空白を埋めるために様々な意味を与えようとする欲望が衝突する状況から生まれたものといえる。
本研究では、戦死者の慰霊、すなわち、国家のために戦い死んだ人々の死を今を生きる我々は如何に記憶し、また記念すべきであるかをめぐって戦後日本社会で展開されてきた様々な問題を「記憶」、ひいては「哀悼の政治」という問題意識の下で新たに再構成したい。特に、本稿は先の戦争が生んだ無数の戦死者の中でも、「カミカゼ」という名で知られている「特攻」の慰霊に焦点をおいて、戦争末期に多数の特攻基地が配置された鹿児島県の各地域でその死の慰霊が具体的に如何なる様相を呈していたのかを、民族誌的フィールドワーク及び回顧録を含む多様な文書資料の調査を通じて考察した。鹿児島を研究対象地域として選んだ理由は、現在までも過去特攻基地があった地域の主導によって特攻慰霊祭が行われており、また地域によっては特攻記念館まで設けるなど、名実ともに「特攻の聖地」(特攻銀座)として位置づけられてきたからである。
戦時期に発生した様々な戦死の類型の中でも、「特攻死」は、戦後日本社会が持つ戦死に対する二つの視線、即ち「殉国」と「犬死」の両面性を最も明らかに表わしているという点で注目を要する。無論、これまでも日本社会のなかで特攻隊員の死に対する最も一般的な語りは、「祖国愛に満ちている純粋な若者たちの献身的な犠牲」、すなわち「殉国」であった。一方、彼らの死は自身の祭祀を担ってくれる子孫を残せずまま10-20代という若い年に命を奪われたという点で、日本の伝統的な死生観から見れば最も望ましくないタイプの死であると同時に、敗北が火を見るように明らかな戦争で非理性的な軍部の命令によって命を落としたという点で「犬死」(=無意味な死)と見なされてもいる。こうした両面性から、特攻死は全国戦没者追悼式に代表される既存の公式的な慰霊に亀裂を引き起こす危険性も含んでいる。
しかし、哀悼の政治という観点から見れば、戦死(ひいては特攻死)が持つ危険性は、少なくとも公式的な慰霊祭ではあまり表面化されず、有効期限が既に過ぎたような「平和の礎」論だけが依然として繰り返されている。それは、戦争体験者や遺族の高齢化のため、慰霊祭が過去の「記憶の場」としての位相を徐々に失ってきていることを意味してもいる。一方、鹿児島の知覧や万世などの地に建立された特攻記念館は特攻の記憶を作り出す新たな「感情機関」(emotive institution)として戦後日本社会に位置づけられつつある。このような特攻再現の地域的・国家的装置を覆っているものはノスタルジアに飾られたロマンティシズムである。同時に、ここには彼らの献身的な犠牲を強調することで精神的にさまよう現代日本社会の若者たちに標本を提示しようという道徳主義的な意志も強く働いている。そして、このような再現戦略は、戦後日本社会の「ねじれ」を意識する一般大衆たちから強い共感を得ている。
以上の状況を理解するために、本稿では1894年の日清戦争以降、一連の戦争によって生み出された無数の死を収拾してきた近代日本の歴史を通じて「感情の共同体」として作り上げられた国民の「感情の構造」を明確にすることを試みた。肉親を、もしくは知人を亡くした遺族たちの悲しみという感情は、戦後の革新派のスローガンでもある「侵略戦争に対する反省」という理性的言語では簡単に治癒できるものではない。実際に、戦後の革新派は彼ら一般大衆の感情を抱擁することに失敗し、却ってその心の空白は靖国神社に代表される保守派によって掌握された。言い換えれば、ナショナリズムの最も重要な源泉である「国民の感情」という領域は保守派によって専有されてしまったのである。
また、特攻隊員に選ばれ若き命を犠牲にした朝鮮人青年たち、所謂「朝鮮人特攻隊員」と、戦争末期に特攻飛行場の建設のため強制連行され異国の地、鹿児島で非業の死を遂げた朝鮮人たちを四、五章で別途に考察しているが、それは、現代の日本社会においてともすれば「国家のための死」へと簡単に還元されてしまう先の戦争での「死」(所謂、「300万の戦没者」)の中に在る様々な「異質性」を露にすることで、そうした縫合が一時的な取り繕いに過ぎないということ、そこにある決して封じえない「実在」(the Real)の領域を喚起するためであった。それは、現代日本社会に蔓延している先の戦争や死に対するロマンティシズムを克服し、そのベールを剥いで、より客観的な歴史認識に到達するための方法、言い換えるならば、なぜそのような無意味な死が生み出さ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かという問いを通じて、先の戦争の過ちを論理的に省察するための一つの方法でもあった。
結論として、現代日本社会が直面している最も深刻な問題の一つとして提示したいのは、先の戦争の死者たちに対する正当な哀悼の欠如と、その結果としての憂鬱症(メランコリー)症状の蔓延である。この状況を解決するための最も根本的な方法は、何が失われたのかを直視し、その喪失をそれ自体で受け止めるという古典的な精神分析の教えに耳を傾けるということである。言い換えれば、「果たして生者は死者と如何に向き合うべきか」を考えることであり、その死を生者たちの論理によって性急に記念するのではなく、死者たちも納得できる形で哀悼することこそ、戦死者の記念をめぐる現代日本社会の葛藤を解決する出発点であるべきといえる。無論、その出発は、先の戦争で生き残った者たちが抱いていた「悔恨」や「怨恨」といった感情が引き起こす様々な力に注目すると同時に、過度の心情的ロマンティシズムを警戒しながら、その力を戦後日本社会に対する客観的な理解にもとづく変革への具体的なイメージとプログラムを作り出す作業に転化することから始まるといえるだろう。そしてそれは、悲劇の死を遂げた後にも依然としてこの世をさまよっている死者たちの霊魂を如何に「解寃」(恨みをはらす)の道へ導くのか、という問題へと繋がる実践となるであろう。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6551

http://dcollection.snu.ac.kr:80/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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