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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江南의 周邊部 文人 硏究
陳繼儒와 李漁의 상업적 글쓰기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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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신주리

Advisor
서경호
Major
중어중문학과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Abstract
이 글은 16-17세기 강남을 중심으로 가시화되었던 중국 문인사회의 특징을 탐색한 것이다. 중국은 세계 여러 문명권 중 유일하게 문인관료가 1000여년 이상 국가 경영을 담당해왔다. 문인은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지향점이자 사회적 가치관의 담지자였으며, 문화적 전통의 창조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문인사회가 완만히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그 변화가 또렷이 나타나는 때가 바로 16-17세기이다. 또한 강남은 이 시기에 이르러 경제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半自治를 이루었고, 문화적으로도 여타의 지역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서의 내부적인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일차적으로 江南이라는 공간과 明淸 교체기라는 시간, 그 교차점에 놓여진 文人이라는 행위자를 세 가지 주요 변수로 설정하였다.
필자는 문인 중에서도 16세기 들어서 대거 출현하고, 주로 강남의 도시에서 활동했으며 전통적인 문인의 궤적에서 벗어난, 실질적으로 明淸代 문인의 다수를 점했던 문인을 주변부 문인이라는 범주로 개념화하였다. 주변부 문인은 기본적으로 관료 사회 바깥에 존재했던 문인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그 부피가 크고, 개인적 삶의 양상도 대단히 다양했기 때문에 이들이 공유하는 공통분모로부터 세 가지 기준 즉, 未入仕 문인으로, 주변지식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글쓰기를 했던 문인이라는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의거해 범주화 하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지식 서비스업과 출판업에 종사했던 주변부 문인을 주요한 연구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그들은 지식과 글쓰기라는 문화적 자본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관직 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활동했던 문인으로, 주변부 문인의 다수를 점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문인사회의 가장 주변(marginal)에 자리한, 경계인이었다. 그들이 다루는 지식의 성격, 지식을 다루는 태도, 그리고 존재방식이라는 면에서 볼 때 문인사회의 중심에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었고, 그로 인해 문인사회의 안팎을 넘나들며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陳繼儒와 李漁는 상업적 출판시장에 기대어 존재했고, 주변 지식을 덜 진지한 방식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주변부 문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주변지식을 다루는 방식과 매체(문언과 백화), 사회적 관계망의 구성방식이 서로 달랐고, 그에 따라 삶의 양상 또한 달랐기 때문에 16-17세기 강남 문인사회의 변화를 각기 특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로 삼을 만하다. 나아가 이러한 상이성은 상업적 출판 시장에 기대어 살았던 주변부 문인이 시도했던 새로운 글쓰기의 다양성 및 변화의 폭을 잘 보여주며, 특히 李漁의 경우 그것을 넘어서 전통사회의 문인이 넘나들 수 있는 경계를 가늠하게 해 주는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陳繼儒와 李漁의 상업적 글쓰기 양상은 문인사회의 변화라는 현상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이후의 변화 양상을 가늠하게 하는 좌표가 될 수 있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16-17세기에 이르러 문인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문인사회 바깥쪽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한 측면에서는 문인사회의 변화를 통해 강남 사회의 저변에서 일어나던 변화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축의 변화양상을 고찰함으로써 이 시기의 중국 문인사회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제2장에서는 中唐 이후부터 시작된 문인사회의 변화가 16-17세기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맞물리면서 주변부 문인이 형성되고, 주변부 문인은 생존을 위한 모색의 과정에서 막료, 출판과 같이 문필을 상업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전통적으로 賣文은 문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여겨졌지만 강남 도시는 출판업의 발달, 개방적이고 다양한 가치의 공존 등 문인이 賣文을 통해 생계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특히,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관계망은 단일한 중심이 아니라 지역, 취미와 기호 등과 같은 다원화된 중심을 통해 만들어지고, 다층적으로 형성되면서 사회적 관계망을 다방향으로 확장시켰다. 이렇게 확장된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했던 문인과 상인은 그 계층적 경계를 두고, 한쪽에서는 허물고 다른 한쪽에서는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특히 문인문화의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陳繼儒의 삶과 글의 양상을 고찰하였는데 陳繼儒는 의지적으로 入仕를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상징적이고, 상업적 글쓰기를 통해 명성과 실리를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문인이라는 점에서 문인사회의 변화를 가늠하게 해 준다. 松江을 중심으로 하는 관료 문인사회의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이미 만들어졌던 그의 명성은 그가 상업적 출판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그의 상업적 글쓰기는 趣味와 雜學으로 요약되는 주변지식을 독특하고 고상한 느낌이 들도록 살짝 비틀어 쓰거나 편집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4장에서는 고찰한 李漁는 통속문학 작가였을 뿐 아니라 書坊과 家班을 운영하는 등 문화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는 문인으로서 전반적 삶과 글의 양상에서 문인사회 안팎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생존방식으로서 상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후 의지적으로 문인사회에 접속하였기 때문에, 당시 문인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글쓰기, 특히 傳奇를 통해 우선 이름을 알리고, 그 다음에 저작의 범위를 넓혀가면서 경제적 이익과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적극적이고 전국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갔고, 또 그것을 활용하여 후원자를 물색하였다. 그는 문학적 재능과 상업적 감각을 바탕으로 문언과 백화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李漁의 글쓰기는 오락성과 실용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陳繼儒의 글쓰기보다 더욱 상업적이고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5장에서는 주변부 문인과 16세기 이후 중국 문인사회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陳繼儒, 李漁가 그려낸 삶과 글의 양상을 재해석해 보았다. 陳繼儒는 문인이면서 과거제도와 의지적으로 절연했다는 점에서 주변부 문인이다. 그는 문인의 재능과 소양을 바탕으로 전통적 글쓰기의 장르와 매체를 선택하여 문인사회를 대상으로 한 상업적 글쓰기, 다시 말해 문인사회 내부에서 소비되는 글쓰기를 하였고,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명망을 더욱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다른 문인과는 차별화되고, 문인에게 익숙한 주변 지식을 상업화함으로써 주변부 문인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陳繼儒가 문인사회 내부의 문인으로서 문인사회 내부로부터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면, 李漁는 문인사회 외부의 문인이 문인사회로 들어와서 문인과 문인 아닌 사람들이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대상과 영역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李漁는 당시 강남의 문인사회 내부에 잠재하고 있었던 놀이 본능과 감성적 욕구를 공연이라는 공연 예술에 성공적으로 담아냈고, 오랜 동안 문인문화의 영역에 속해있던 지식을 구별짓기의 방식이 아니라 생활화시키는 방식으로 확산시켰다. 그러므로 李漁는 그 삶에 있어서 문인사회의 경계를 넘나들었을 뿐 아니라 그 상업적 글쓰기에 있어서도 대중의 감각을 문인화하고, 문인의 감각을 대중화하는 양방향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문인사회의 각도에서 볼 때 陳繼儒와 李漁의 삶과 글쓰기가 그 다름을 인정받고 더 나아가 그 다름 때문에 명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문인사회 내부에서 문인을 인정하는 다양한 가치 기준이 생겨났고, 그 이전보다 개방적인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전통적인 文人像이 깨어진다는 것은 문인 개인이 심리적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것으로서, 이는 문인으로서의 개인 삶의 조건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주변에 머물면서 자신의 관심과 취향에 몰두하며 자립하는 문인이 더 많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8세기가 되면 강남 문인사회에 표면적으로 변화가 감지된다. 16-17세기 강남 문인사회의 특징적 현상들이 사라지고, 陳繼儒와 李漁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 문인에 대한 평가가 역전되며 淸朝가 제도화 한 국가적 인증 기준에 포섭되는 문인이 점차 늘어난다. 이는 淸朝라는 중앙 권력이 밖으로부터 강남의 문인사회에 압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강남의 문인사회가 보인 두 가지의 내부적 반응 즉, 글쓰기와 문화공간은 위축되고 정치공간은 타협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인사회가 상대적으로 상당히 경직된 상태였던 18세기에도 문인의 자질을 가지고 중앙정부의 권력으로부터 자립하여 문인사회와 관계를 맺고 살았던 문인의 삶과 글쓰기를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강남이라는 문화 공간의 장력 아래 존재하는 것이었으니 16-17세기에 가시화되었던 강남 문인사회의 변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분산되면서 중국사회 저변에서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6656

http://dcollection.snu.ac.kr:80/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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