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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조직과 활동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Organization and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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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임다은
Advisor
정용욱
Issue Date
2019-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유엔한국재건단운크라(UNKRA)유엔(UN)저개발국한국미국경제원조개발재건복구공업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UNKRA)UN(United Nations)Under-developed CountriesKoreaUnited StatesEconomic AidDevelopmentReconstructionRehabilitationIndustries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국사학과,2019. 8. 정용욱.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UNKRA(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which was established and operated under the UN General Assembly in the 1950s for Korean rehabilitation and reconstruction. Through this, this research tries to understand the problem of economic reconstruction in Korea after the Korean War.
When UNKRA was founded, the United Nations forces anticipated military success and an early cessation of hostalities. However, Chinese intervention in Korea might prolong hostilites and hamper rehabilitation and recovery indefinitely. In the early years, UNKRA could not fully implement the reconstruction program until the military situation had settled down. Instead, it operated under military supervision. During the war, UNKRA mainly seconded its experts to the UNCACK(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 After September 1952, CINCUNC, UNKRA and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greed to start as much basic rehabilitation and reconsruction program as the military situation would allow. Nevertheless, the general situation had made it necessary to accord the first priority to the importation of consumer goods.
Furthermore, UNKRA proceeded to develop comprehensive plans and programs in the support of the UN specialized agencies and the Nathan Associates. The Nathan Associates developed the Five-Year Plan for the reconstruction of Korea, which meant Korea could achieve economic independence in five years. It suggested that the major portion of investment would go into sectors of physical production and distribution where the direct, measurable impacts on national output would be heaviest and quickest. However, despite of the desirability of a large social investment programs in Korea after the Korean War, they did not emphasize upon social investment because of limited resources for reconstruction.
After Armistice in July 1953, UNKRA actually launched the reconstruction program. However, UNKRA could not take over responsibility for all relief and rehabilitation activities because the United States developed a defense support program for South Korea after the war. That is, UNKRA was assigned a certain segment to operate and the rehabilitation of the war was coordinated through the OEC(Office of the Economic Coordinator). Nevertheless, UNKRA was independent from the defense support program of the United States and could emphasize on non-military areas of the economy.
UNKRA’s largest over-all investment allocation was made in the idustrial field. UNKRA undertook the reconstruction of the major industrial plants and the construction of new manufacturing facilities in the important sectors of manufacturing industries. In spite of many problems in operation and shortages of funds, it provided the capital and engineering for industrial expansion in Korea.
본고는 1950년대 한국의 전후 재건과 부흥을 위해 유엔 총회 산하에 설립되어 활동했던 유엔한국재건단(UNKRA: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의 조직과 활동을 고찰하였다. 재건단 원조는 1950년대 대한원조의 주축이었던 미국의 대한원조와는 독립된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므로 본고는 재건단의 설립과 위상변화 과정, 재건구상과 활동의 실제를 살펴보고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유엔한국재건단은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이 승리하여 조속히 전투가 종료되고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설립된 기구였다. 재건단은 전투 종료 이후 통일된 한반도에서 긴급 구호와 기초시설의 재건, 생산성 확대에 이르기까지 대한원조 전반을 총괄하는 기구로서 수립되었다. 그러나 1950년 12월 1일 수립 이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독자적인 활동영역을 확보하지 못하였고, 유엔군사령부가 경제원조를 포함하여 한국에서의 전반적인 권한을 보유하는 가운데 재건단은 주로 유엔사의 활동을 보조하는 위치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전시에 재건단은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하지 못하는 대신, 유엔사 산하에서 구호와 단기복구를 담당하는 기관인 유엔한국민사처(UNCACK)에 민간인력을 파견하는 것으로 주요 활동을 대체하였다. 1952년 중반 이후 전선이 안정되고 한국 경제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유엔사, 한국정부, 재건단 사이에 본격적인 재건사업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르렀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재건단의 활동은 일부 소비재를 수입하는 것에 그쳤다.
이와 더불어 전시 재건단은 전쟁 종료 후 본격적인 재건사업에 돌입하는 단계를 준비하며 각종 조사를 실시했다. 재건단의 의뢰에 의해 유엔 전문기구들은 농·수산업, 교육, 보건 등 분야별 조사를 담당하였고, 네이산 협회는 이를 포괄하는 전반적인 재건계획을 제출하였다. 재건단의 의뢰로 작성된 네이산 보고서는 한국에서 5년 간의 재건계획을 수행하여 전전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회복하고, 국제수지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를 위해 생산영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농산물, 수산물, 광물 등 자연자원을 개발하여 수출을 증진한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전후 한국사회에서 주택, 보건, 복지 등의 분야에 대한 필요가 절실했지만, 사회서비스나 복지 분야는 직접적인 생산력 증대를 불러오는 분야가 아니라는 점에서 재건계획 상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배치되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이후 재건단은 본격적으로 재건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때에도 재건단은 한국 재건사업에서 전반적인 권한을 보유하지 못했는데, 미국의 전후 구상에 따라 방위지원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대한원조가 중심이 되고 유엔 원조기구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재건단은 미국 원조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한정된 영역에서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재건단은 독자적인 조직을 유지하며 담당 부문에서 자체 사업을 진행하였고, 원조의 내용에서도 미국 원조와는 다른 특성을 보였다. 즉 미국 원조가 주로 소비재 판매대금을 통해 막대한 국방비를 충당하고 경제를 안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 달리, 재건단은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생산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시설투자와 기술원조가 결합된 형태의 원조를 주로 진행하였다.
재건단 원조에서 전시기에 걸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공업 부문이었다. 재건단의 공업 부문 원조는 소비재에서 생산재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진행되었고, 노후화된 기존 시설을 대체하고 전쟁으로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는 것 이상으로 신규투자를 통해 새롭게 공장을 건설하기도 했다. 특히 재건단은 중소규모 기업에 자금과 기술, 시설을 제공하는 한편, 면방직 공업이나 시멘트 공업, 판유리 공업과 같은 몇몇 분야를 전략적으로 성장시켜 국내 생산을 증가시키고 수입을 대체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재건단의 원조는 운영상의 여러 문제점을 노정하였으나, 한국의 초기 전후 복구 과정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Language
kor
URI
http://hdl.handle.net/10371/161578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58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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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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