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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眉叟) 허목(許穆) 고문(古文) 서예 연구
A Study on Heo Mok's Revivalistic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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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윤성훈
Advisor
이정환
Issue Date
2019-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허목(許穆)서예고문(古文)상고(尙古)주의기(奇)조선시대전초(傳抄) 고문자필획
Description
학위논문(박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미학과,2019. 8. 이정환.
Abstract
Misu(眉叟) Heo Mok(許穆, 1595~1682) was a literary scholar and bureaucrat who played a leading role in Namin Party(南人) in the reign of King Hyeonjong(顯宗) and Sukjong(肅宗) of Joseon dynasty. He was the revivalist of the ancient sage kings’ golden age of “Three dynasties”(三代), i.e. Xia(夏)ㆍYin(殷)ㆍZhou(周), therefore he pursued an ideal of ancient rituals in ancient Confucian ritual canons like Liji(禮記)ㆍYili(儀禮)ㆍZhouli(周禮), ancient literary and style of writing in ancient canons like Shangshu(尙書)ㆍShijing(詩經), and ancient script, “Gomun/Guwen”(古文).
He rose to the rank of deputy prime minister without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that was a very rare case in Joseon dynasty. He became a minister in his eighties in the early reign of Sukjong when he was a symbolic presence of Namin Party, but it was an exceptionally brief splendid period in his long life, because he led a eremitic life out of public office as a book reader, writer, scholar, and calligrapher.
His calligraphy was so unique that became a political talking point. Seoin Party(西人), antagonists of Namin, insisted in imposing a ban on his calligraphy, on the contrary, Namin looking up to him held in high estimation of his calligraphy. His most famous work of calligraphy, Cheokju Donghae Bi(陟州東海碑), i.e. Ode to the East Sea Stele in Samcheok(三陟), was also an object of folkloric and mystical worship especially in Gyeonsang Province where was a stronghold of Namin. Heo Mok’s calligraphy has been a battlefield of reverence and expulsion, but never been an object of an analytic research, that is why this thesis is written.
In traditional category, Heo Mok’s calligraphy can be classified as the seal script(篆書), but he always called his calligraphy “Gomun(古文)”. The Chinese character “mun/wen”(文) can refer to both a letter/script/character and a written sentence, therefore “gomun” can refer to both an ancient script and an ancient way of writing. So his “gomun” calligraphy should be probed into in the basis of understanding his way of writing, literary theory, and revivalistic arts and sciences.
Heo Mok’s writing style seems a dry description without lyricism and argument, but careful reading of his anthology, Gieon(記言), i.e. Record of My Word, shows that his way of writing is mixing a description of facts with self-narrative. In Chinese character cultural sphere, pursuing “past”(古) has always been an immanent constant, and pursued “past” cannot be a simply “past time” but a root of presence, that is to say, “Go/gu”(古), i.e. “the antiquity” has always been appropriated by “Go/gu”(故), i.e. “the cause (rooted deep in the past)”. His “gomun” writing style plays a good role in his calligraphy, and his calligraphy enhances an affluence of his writing.
Heo Mok’s literature also has a eccentric flavor. He perceived a world as a constant fluid of Qi(氣), and was interested in perverted beings like monsters, meteorological disasters, and magnificient scenery. Baekje Seomang Haeyo(百濟西望海謠), i.e. Song for the West Sea seen from old Baekje region, and Ode to the East Sea are depicting bizarre incidents, eccentric monsters and exotic people living in vast and ferocious west and east ocean. They are two typical eccentric works of Heo Mok’s literature.
To Heo Mok “gomun”, the ancient script of the ancient golden age was an immovable ideal, but remaining characters in exact ancient shape were insufficient to meet ordinary needs of writing. That was why he adopted also degenerated later scripts like Zhouwen(籒文), i.e. Zhou scripts made by Clerk Zhou(史籒) in Upper Zhou(西周) period and Xiaozhuan(小篆) made by prime minister Li Si(李斯) in the vicious Qin(秦) dynasty.
Three manuscript ancient script dictionaries of Heo Mok are core texts to understand his “gomun” graphonomy and calligraphy. Geum Seok Un Bu(金石韻府), i.e. Rhyme Dictionary of Stone and Bronze Scripts, is not his original book but excerpts from Chinese authority of the same titled book. Go Mun Un Yul(古文韻律), i.e. Rhyme Dictionary of Ancient Scripts, and Go Mun Un Bu(古文韻部), i.e. Assorted Rhyme Dictionary of Ancient Scripts, are arranged excerpts from various Chinese dictionaries of ancient scripts. They shows that he was researching and collecting ancient scripts focusing on the Zhou scripts(籒文), and the Ancient scripts(古文) of Shuwen Jiezi(說文解字), i.e. Explaining Graphs and Analyzing Characters.
Cheokju Donghae Bi(陟州東海碑), i.e. Ode to the East Sea Stele in Samcheok(三陟), is a showpiece of his calligraphy. This thesis analyzes 178 characters with comparing his other works, his manuscript dictionaries, and other Chinese dictionaries, which results in specifying 178 characters’ original references. This analysis shows that in calligraphic practice Heo Mok adopted not only the scripts from Confucian Classics like Shangshu(尙書) in ancient scripts and other numerous Chinese ancient books like Laozi(老子) but also the Xiazhuan scripts and the Zhongding(鐘鼎) scripts, i.e. Bronze Bells and Cauldrons inscriptions. Ode to the East Sea Stele’s strokes are wriggling and crooked, which shows relation with strokes of the cursive scripts(草書) that he counted as symbols of natural life and movement.
Heo Mok’s revivalistic calligraphy had a ultimate goal of pursuing ancient sages’ scripts, but also in practice adopts a pragmatic line by utilizing and transforming various sources from later periods and authorities, which demonstrates his calligraphy has the basis of both universalism of the Eastern Chinese character culture and his individuality. The key characteristic of his calligraphy is cursive strokes which embodies the natural movement of Qi throbbing with life. This study considered Heo Mok’s calligraphy by and large trying to raise his calligraphy from mystical worship or blind expulsion to intellectual investigation’s field of an academic standard.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은 조선시대 현종(顯宗) 연간부터 숙종(肅宗) 초기에 걸쳐 주로 활동한 문인학자이자 관료로서, 당대 남인(南人)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예(禮)는 주자가례(朱子家禮)나 조선 전래의 국제(國制)가 아닌 옛 경전에 따른 고례(古禮)를, 학문과 문장은 동시대 및 당(唐)ㆍ송(宋) 등 근고(近古)의 것이 아닌 하(夏)ㆍ은(殷)ㆍ주(周) 삼대(三代)의 육경(六經, 詩ㆍ書ㆍ禮ㆍ樂ㆍ易ㆍ春秋)을, 글씨 또한 삼대의 고문(古文)을 추구한 상고(尙古)주의자였다.
현종 시기 제1차 기해예송에서 핵심 논자로 활동했고, 숙종 초 남인 집권기에 과거를 보지 않고 정승의 지위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면서 남인 정권의 상징적 존재로서 정치 무대의 한가운데 서기도 했지만, 허목의 긴 인생 전반을 조망한다면 이는 짧은 예외적 시기에 해당할 것이며, 그는 기본적으로 저명한 학자이자 독서가이자 문장가이자 서예가로서 재야 문예인의 삶을 누렸다. 그의 사상과 문학은 방대한 분량과 이례적 체제를 자랑하는 문집인 󰡔기언󰡕을 통해 파악할 수 있으며, 를 중심으로 한 몇몇 작품을 통해 그의 조형 예술의 핵심인 서예 세계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허목의 글씨는 매우 독특하여 당대부터 주목과 논란의 대상이었다. 남인 핵심 인물의 대표적 문예 산물이었던 만큼, 서인(西人)들은 따라 쓰는 것을 법령으로 금지시키자고 주장했을 정도로 그의 글씨를 극렬하게 배척했다. 숙종 대 짧은 집권기 이후로 남인이 몰락하고, 이후 서인 및 그를 계승한 노론(老論)이 조선 정치와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기에, 허목의 글씨는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줄곧 문화계 주류로부터 수용되지 못하였다. 한편 소수이지만 남인들에게는 숭모의 대상이어서, 남인의 세력이 강했던 영남 지역에서는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탁본을 집안에 소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민간에서 는 ‘퇴조비(退潮碑)’ 즉 조수의 재난을 물리치는 비로 불리기도 하며 전설의 대상으로 신비화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숭모와 배척의 양극단 사이에서 허목의 글씨는 여태껏 적절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본 논문은 를 중심으로 허목의 서예 세계를 분석하여 그 문예사적 의의를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통적 서체 분류에 따르면 허목의 글씨는 전서(篆書)에 속할 것이나, 허목 자신은 자신의 글씨를 언제나 ‘고문(古文)’이라 지칭했다. 한자 ‘문(文)’이 글자와 문장을 모두 가리킬 수 있기 때문에, ‘고문’은 옛글과 옛 글씨를 동시에 가리킨다. 허목은 문학에서는 이상 시대인 삼대(三代)의 성인이 지은 육경의 문장을, 서예에서는 당시에 쓰였던 글씨를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허목의 서예는 그의 상고(尙古)주의 학예(學藝) 세계 전반, 특히 그의 글쓰기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그 의의가 탐색되어야만 한다.
허목의 글쓰기는 일견 서정(抒情)과 의론(議論)을 배제한 건조한 서술(敍述)만을 추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언』의 구성 및 개개의 글을 자세히 독해해 보면, 그는 인물 서술과 공간 서술 등에 서술 대상과 자신이 갖는 연고(緣故)를 자연스럽게 녹여 내어, 사실 서술에 자기 서사를 은연중에 개입시키는 양식의 글쓰기를 구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자 문화권에서 옛것의 추구가 문명 초기부터 문화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옛것은 단순한 과거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현재 자신의 존재 양식의 근원을 확인하는 대상이었다는 사실, 즉 고(古)를 고(故)로 전유(專有)하는 것이 한자 문화권의 전제였다는 거시적 지평을 인식함으로써 그 의의가 온전히 이해된다. 또한 사실 서술 위주의 간결한 문체를 지향했던 허목의 ‘고문(古文)’ 글쓰기는, 그것이 동시에 ‘고문’ 글씨 쓰기였음을 감안할 때 그 풍부함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기언』에도 수록된 의 원고(原稿)를 보면, 여러 번 반복 출현하고 있는 같은 글자가 매번 다른 자형(字形)으로 쓰여 있어서 짧고 간결한 문장에 글씨로서 다양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허목 문학은 상기(尙奇)의 측면도 지니고 있었다. 자연 및 인간 세상이 모두 일기(一氣)의 변역(變易)이라 인식했던 허목은, 기(氣)의 변화의 특수한 예에 해당했던 기이한 사물 및 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이는 정치에 관여하는 사대부로서는 재이(災異)에 대한 탐구로, 생활인으로서는 기이한 경물을 즐기는 여행의 추구로, 문인으로서는 괴물(怪物)과 기현상의 소재가 풍부한 작품의 창작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해와 동해를 배경으로 과거 전적에 나타난 온갖 괴물 및 만이(蠻夷) 등 기괴한 소재를 그려낸 나 등은 허목 상기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삼대(三代) ‘고문’은 확고히 추구해야 할 이상임엔 틀림없었지만, 삼대 ‘고문’이 현재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아, 실제로 글을 짓거나 글씨를 쓸 때 그것만으로 창작이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허목은 삼대 이후 시대가 내려감에 따라 가치가 하락된 후대의 작품들도 전고(典故)로서 활용했다. 『기언』 권5 「문학(文學)」과 권6 「고문(古文)」에서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고문」에서 조적서(鳥跡書)ㆍ종정문(鐘鼎文) 등 진정한 고문 뿐 아니라 조금 후대의 주문(籒文), 심지어는 진(秦) 이사(李斯)의 소전(小篆)마저도 약간의 긍정적 평가를 부여하여 전거로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허목의 고문자 자형 연구의 실제는, 그가 손수 써서 편집한 세 종류의 고문자 자전인 『금석운부(金石韻府)』ㆍ『고문운율(古文韻律)』ㆍ『고문운부(古文韻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금석운부』는 명대(明代)에 목판으로 출간된 동명(同名) 서적의 발췌본이며, 나머지 둘 또한 허목이 기존의 여러 전초(傳抄) 고문자 자전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것이다. 이 수고(手稿) 자전들을 통해 허목이 전초 고문경전(古文經典) 및 사주(史籒) 주문(籒文), 설문고문(說文古文) 등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고문자를 수집했음을 알 수 있다.
는 허목 서예의 대표작으로서, 그것에 수록된 178개의 자형(字形)을 허목의 위 3종 자전 및 각종 고문자 자료, 허목의 다른 작품에 나타난 글자들과 비교하여, 그 전거를 특정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에서 허목이 고상서(古尙書) 등 전초(傳抄) 고문경전 및 고노자(古老子) 등 고문 제자서(諸子書) 뿐 아니라, 소전체(小篆體) 또한 거리낌 없이 자주 활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문’ 중에서는 종정문의 빈번한 구사가 눈에 띈다. 는 꿈틀꿈틀하며 구불구불한 필획도 매우 특징적이다. 필획은 결구(結構)와 같은 정확한 분석이 힘들긴 하지만, 대체로 기(氣)의 약동을 기괴하게 구불구불한 형태로 체화한 자연물 및 그것과 유사한 초서(草書)의 획과 연관이 깊다고 판단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연구를 통해 허목 상고주의 학예의 큰 틀 아래에서 그의 ‘고문’ 서예의 특성을 규정할 수 있었다. 허목 서예는 상고(上古) 성인(聖人)의 글씨를 확고한 이상으로 삼으면서도 실제 작품의 자형(字形)에서는 각종 전고(典故)를 선택적으로 활용ㆍ변용했으며, 약동하는 필획을 구사한 서사(書寫)를 통해 개성적 면모를 획득했다. 본 연구는 대체로 신비의 영역에 놓여 있던 허목의 서예를 일정한 근거를 갖춘 학문적 분석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첫 단계에 해당할 것이다.
Language
kor
URI
http://hdl.handle.net/10371/162336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57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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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esthetics (미학과)Theses (Ph.D. / Sc.D._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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