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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생명력: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인구통계 연구, 1926-1945
Vitality of Empire: Demographic Studies at Department of Hygiene and Preventive Medicine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in Colonial Korea and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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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지영
Advisor
임종태
Issue Date
2019-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식민지 위생학제국주의인구통계경성제국대학식민지 과학시가 기요시(志賀潔)미즈시마 하루오(水島治夫)스가와 유타카(須川豊)이인규(李仁圭)
Description
학위논문(박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자연과학대학 협동과정 과학사및과학철학전공,2019. 8. 임종태.
Abstract
This paper traces the making of research system at the Department of Hygiene and Preventive Medicine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衛生學豫防醫學敎室 (DHPMK), which dominated the research of public health in colonial Korea. This paper focuses on the DHPMK’s main research field, demographic studies, whose goal was to understand the unique pattern of the ‘vitality’ of the constituent races of Japanese empire. While investigating the construction, expansion, transformation of the idea of racial ‘vitality,’ the ability of a certain race as a biological unity to grow and survive, in the context of Japanese imperialism, this paper discusses the three characteristics of demographic studies in colonial Korea.
First, the DHPMK proposed a guideline for governing the population to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based on their demographic research and academic authority. They suggested that Korean colonial government should examine the unique pattern of population phenomena by race, and managed the population on the ground of that pattern. This concept of population began to raise in Japanese empire in 1920s. However, the Korean colonial government did not accept this latest concept of population, and adhered to the existing view resting merely on the numerical changes of the population. The attitude of the Korean colonial government caused the tension between it and the DHPMK. Analyz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HPMK and the Korean colonial government surrounding the way of governing the population, this paper shows that the DHPMK played a role to provide the latest ‘scientific rationality’ of colonial control to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Second, this paper raises a question to previous studies of history of science that delineated the scientific research in colonized regions as a local case study which dealt with the indigenous and specific factors of the areas, in contrast to the scientific research in metropolis which integrated the individual case studies and drew universal concepts or theories from them. Keijo Imperial University, one of the nine imperial universities founded by Japanese government to cultivate the leaders of professional researchers, aimed to get an intellectual authority over the Japanese academic community comparable with that in other Imperial Universities in Japanese mainland. To achieve the goal, medical scientists from the DHPMK actively interacted with their colleagues in Japanese mainland and, moreover, took the head of the academic research trend, by introducing the latest statistical methodology from Western countries into the Japanese medical society and created a demographic research frame applicable to the population phenomena of anywhere in Japanese empire. Through the case of the DHPMK, this paper reveals that the colonial science encompassed the broad spectrum of research activities from local case studies to ‘universal’ theoretical studies.
Third, the demographic studies by the DHPMK reflected the Japanese governors’ discriminatory perspective on the Korean, and reinforced the perspective at the same time. The DHPMK regarded some statistical data published by Korean colonial government indicating that Korean was healthier than Japanese as ‘errors’ on the belief that the vitality of Korean must be inferior than that of Japanese. To reveal the ‘true’ vitality of Korean, the DHPMK devised the statistical method to correct these ‘errors.’ Their correcting method already reflected the Japanese governors’ prejudice against Korean, and the corrected result was considered as the scientific evidence of it. Against the view considering the inferiority of Korean to be immutable, some Korean medical scientists at the DHPMK conducted the research in the aim of showing the potential for progress of Korean and their independence from Japan tacitly. Nevertheless, their research also was not free from the prejudice, and was used by Japanese governors’ as the ‘scientific’ evidence to justify the Japanese colonial rule over Korea unlike the original intention of the Korean medical scientists.
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의 위생 체계와 그 실행에 과학적 기반과 구상을 제공한 위생학 연구 체계의 형성 과정을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활동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이 교실은 일본 제국의 인구가 지닌 ‘생명력’, 즉 어느 인구 집단의 생물학적 증식 및 생존 능력을 파악한다는 목표 아래 일본 제국에 포함된 서로 다른 민족의 생명력을 산출하는 일관된 통계적 연구 체계를 구축했다. 이 논문은 그 생명력 연구가 성립, 확대, 변형되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식민지 위생학 연구가 지닌 성격을 검토한다.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연구는 어느 민족의 생명력이 저하되는 지점과 그에 영향을 준 환경을 다룬다는 점에서, 인구 관리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은 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민족별 생명력의 패턴에 입각한 새로운 방식으로 인구현상을 파악 및 관리할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는 인구 관리의 실행자인 조선총독부의 입장과 충돌하며 긴장을 야기했다. 이 논문은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인구통계 연구 및 조선총독부와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이 조선총독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인구 관리 기획을 받아들이고, 조선총독부의 인도자 역할을 자임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본 논문은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활동이 지닌 의미를 식민지 과학사 연구의 맥락에서 고찰함으로써, 식민지에서의 과학 활동을 ‘지역적 사례 연구’로만 간주해 온 전통적인 시각에 문제를 제기한다.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은 제국대학이 지닌 제도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조선이라는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여 일본 제국의 의학계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서구의 최신 통계적 방법론 일본 의학계에 소개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일본 제국 전역의 인구현상을 다루는 보편적인 연구 체계를 도출함으로써 일본의 인구통계 연구를 선도했다. 이와 같은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사례를 통해 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에서의 연구 활동이 초국적, 이론적 연구부터 지역적 사례 연구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인구통계 연구를 통해 성립된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시각과 방법론은 그 뒤에 이어진 조선의 보건위생 문제에 관한 연구들에도 적용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조선인에 대한 시각과 조선인 통계를 다루는 방식이 형성되었다. 본 논문은 이 연구들이 수행된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연구가 지닌 성격을 검토한다. 그럼으로써 이 논문은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조선인 통계 연구가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통념을 반영하면서 그와 동시에 그 통념을 강화한 경로를 드러낸다.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생명력의 위계질서가 존재함을 보이는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의 연구는 주로 조선인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통제와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식민통치 정당화의 논리에 사용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경성제대 위생학예방의학교실 소속 조선인 의학자들의 조선인 인식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이 논문은 이 조선인 의학자들의 조선인 아동 신체계측 연구와 조선인 체위향상에 관한 논의를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연구가 민족주의적 동기에서 시작되어 생명력 개념을 조선인의 발전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재해석했음을 밝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연구들은 조선인의 발육 과정에서 ‘민족적’ 특징을 일본인과의 차이, 특히 열등함을 중심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조선인 의학자들의 의도와 달리 전시체제 대비를 위해 조선인의 체위를 관리해야 한다는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본 논문은 조선인의 민족주의적 논의와 일본인의 제국주의적 논의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생명력의 위계가 존재한다는 ‘과학적’ 관념을 공동 기반으로 하면서도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전개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였음을 드러낸다.
Language
kor
URI
http://hdl.handle.net/10371/162440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58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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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Natural Sciences (자연과학대학)Program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협동과정-과학사및과학철학전공)Theses (Ph.D. / Sc.D._협동과정-과학사및과학철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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