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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전설집 편찬과 개국전설 재편에 관한 연구 : 満洲伝説集の編纂と開国伝説の再編に関する研究
1930년대 후반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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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광은

Advisor
조현설
Issue Date
2020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만주전설집개국전설전설재편향토만주국역사신화계보満洲伝説集、開国伝説、伝説、再編、郷土、満洲国、歴史、神話系譜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2020. 8. 조현설.
Abstract
본 논문의 목적은 1930년대 후반 『만주의 전설과 민요』, 『만몽전설집』, 『만주의 습속과 전설·민요』, 『이 땅 이 사람 만주의 전설』, 『만주야화』에 수록된 부여와 고구려의 개국전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근대 초기 한국 설화의 존재 양상을 검토하는 것에 있었다. 다섯 편의 문헌을 만주전설집으로 통칭하고, 만주전설집이 수록한 개국전설을 재편해 구축하려 했던 정치적 논리와 그 함의를 규명하고자 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우선 2장에서는 만주전설집의 서지 사항을 살피고, 그 성격을 밝혔다. 이를 토대로 개별 문헌이 가진 공식성의 수준을 가늠했다. 공식성이 가장 높은 문헌은 『만주의 전설과 민요』였는데, 그만큼 내용 편제와 구성도 체계적이었고, 편찬 의도의 이념성도 명확했다. 반면 공식성이 가장 낮은 문헌은 『만주야화』였다.
3장에서는 특히 『만주의 전설과 민요』에 주목해, 만주전설집에 수록된 개국전설의 재편 방식과 의미를 분석했다. 개국전설의 출전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논형』 등의 문헌이었다. 만주전설집은 이 문헌에서 개국전설을 수집하고, 여기에 사진, 서문, 논평, 주석, 삽화 등을 부가해 재편하고 있었다. 이는 개국전설을 만주에 얽힌 전설로 재규정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1930년대의 전설 개념은 그 자체로는 오늘날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지역을 이상화하는 향토 담론과 결합해 그 영향을 받았다. 개국전설 역시 1930년대 전설 개념에 포섭되어 있었다. 따라서 개국전설은 만주전설집 문헌의 구성적 맥락에서 향토 담론의 구현자이자 매개자로 기능하면서, 다른 전설을 통괄하여 만주의 역사 계보와 심상지리를 구축했다. 전설을 활용해 구축된 역사와 지리는 다시 만주국에 전유되면서, 그 건국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4장에서는 3장의 고찰을 토대로, 개국전설이 구축한 만주사 계보의 위상을 규명하고자 했다. 당시의 역사 서술도 만주의 역사 계보를 구축하면서, 일본과 만주의 관계를 강조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역사와 전설이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바, 전설을 활용해 역사 계보를 구축한 이유를 밝히고자 했다. 이는 전설이 가진 진실성과 심성적 호소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만주국은 하나의 국가임에도, 그 역사 계보가 전설 층위에 머물렀던 이유도 확인하고자 했다. 사실상 만주국은 일본의 지배 영역으로, 제국 일본의 향토였다. 따라서 그 계보는 신화가 아니라 전설 층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개국전설이 구축한 만주사 계보의 유포와 확산에 관해서도 살피고자 하였다. 『만주의 전설과 민요』는 만주사 계보를 유포하는 기능도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 문헌은 그 자체로 수차례 재출간되는 한편, 다른 만주전설집의 편찬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가운데 하나인 『만주야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만주의 전설과 민요』에서 전재한 만주사 계보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다만 본래 의도한 바인 개국전설의 진지성을 지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는 향토 담론의 전개와 함께 발생한 내적 균열로 인해, 개국전설의 중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この論文は、1930年代後半の『満洲の伝説と民謡』・『満蒙伝説集』・『満洲の習俗と伝説·民謡』・『この土地この人 満洲の伝説』・『満洲夜話』に所収された夫余と高句麗の開国伝説を素材に、近代初期における韓国説話のあり方を検討する。そのなかで、以上五つの書物を「満洲伝説集」と名付け、最終的には満洲伝説集における開国伝説を再編したうえで構築しようとした政治的論理とその含意を解明せんとする。
具体的な構成として、先ず2章では、本論に先じて満洲伝説集の書誌を調べ、その性格を明らかにすること、すなわち各々の書物の帯びる公式性の水準を見計らった。五つのなか、最も公式性の高かった書物は『満洲の伝説と民謡』であった。『満州の伝説と民謡』は公式性も高い分、体裁も構成も体系的であり、編纂意図にこめられているイデオロギー性も明確であった。その一方、最も公式性の低い書物は『満洲夜話』であった。
次の3章では、特に『満洲の伝説と民謡』に注目し、満洲伝説集における開国伝説の再編方式とその意味について分析した。開国伝説の出典は『三国史記』・『三国遺事』・『論衡』などの文献であった。満洲伝説集はこれらの文献から開国伝説を搔き集め、それに写真・序文・評論・注釈・挿絵などを撮り添えることで開国伝説を再編するものであった。それは、開国伝説を満洲にかかわる伝説として規定し直すがためであった。
一方、1930年代における伝説の概念は、それ自体では今日のそれと大差なかったのだが、各地域の理想化を謀る郷土言説と結びつき、その影響を受けた。開国伝説も1930年代の伝説概念に包摂されていたのである。したがって、開国伝説は満洲伝説集の構成的な脈絡のなかで、郷土言説の具現者かつ媒介者として、他の伝説を統括しつつ満洲の歴史系譜と心像地理を構築していた。伝説を通して構築された歴史と地理は、またもや満洲国によって専有されながら建国を正当化する機能をも果たした。
4章では、3章の考察に基づき、開国伝説が築き上げた満洲史の系譜の位置を解明しようとした。当時の歴史叙述も満洲の歴史系譜を構築しながら、日本と満洲との関係性を強調するという政治的機能を果たしていた。歴史と伝説は相互に同じ役割を担っ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伝説を以て歴史の系譜を構築した理由―伝説の有する真実性と感情的伝達力を出すため―を明らかにした。あわせて、あくまで満洲国とは一つの国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その歴史系譜が伝説のレベルにとどまっていた理由も確認しようとした。満洲国は事実上帝国日本の「郷土」たる支配領域であった。それゆえ、その系譜は神話ではなく、伝説レベルにととまるほかなかった。
のみならず、開国伝説の構築した満洲史の系譜の流布及び拡散についても調べた。『満洲の伝説と民謡』には、満洲史の系譜を広める機能もあったからである。この書物は数回にわたって再刊行されるにとどまらず、他の満洲伝説集の編纂にも影響を及ばした。そのなかで『満洲夜話』は商売の面でも成功をあげており、なおかつ『満洲の伝説と民謡』より転載した満洲史の系譜の拡散にも貢献した。しかしこれは、本来の意図の開国伝説の真摯さを守ることには失敗した。これは、郷土言説の展開とともに生じた亀裂によって、従来より開国伝説の重要性が落ちてきたからである。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70553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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