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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ㆍ正祖代의 咸鏡道 地域開發과 位相强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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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姜錫和

Issue Date
1995-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18, pp. 27-67
Abstract
조선시대에 함경도는 흔히 豊沛之鄕 이라 지칭되었다. 조선왕조를 창건한 太祖 이성계와 그 선조들의 활동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제 조선후기에 함경도는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뒤떨어진 곳이었다. 四郡과 六鎭을 개척한 이후로 조선은 白頭山 일대와 鴨綠江, 豆滿江 이남을 강역으로 차지하였으나 함경도 북부지역에는 女眞人들이 뒤섞여 사는 곳이 많았다. 조선 후기에는 정묘 ·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도 전체가 극도로 펴폐해지고 淸의 中原 침공에 따라 여진인들이 이동한 뒤에도 오랜기간 중국의 정세가 안정되지 않아 전란의 위험성이 많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숙종대에 들어 청의 중원장악이 대세로 굳어진 후에도 청의 재침공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았다. 청이 몇차례 변경조사를 요구하였을 때 그 대비책을 두고 朝野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속적이거나 적극적인 경영이 추진되기는 지극히 곤란하였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63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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