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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엽 기녀제도 개편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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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조광국

Issue Date
2000-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23, pp. 31-46
Abstract
조선시대 기녀 계층의 삶, 기녀의 의식, 그리고 기녀제도 및 기녀풍속에 관한 학계의 관심과 연구는 그 동안 소홀하였다. 최근 필자는 이 분야 및 기녀의 自意識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조선시대 기녀 계층은 위로 王候將相에서부터 아래로 아전, 상인, 노비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남성을 상대로 하는 특수 계층이었다. 이에 따라 기녀 계층과 관련한 자료는 조선시대 풍속의 한 양상을 추적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고 할 것이다.

기녀 계층이 왕이나 양반의 상류층의 풍류생활에 동원되는 특수 신분계층으로서 수동적인 입장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향은 기녀제도가 존속한 이래 조선중기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기녀들의 신분상승의식, 애정희구의식, 풍류주도의식, 실리추구의식 등 기녀 자의식이 표출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제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변동과 맞물린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로 이행하면서 기녀들의 자의식이 여러 양태로 표출될 수 있었다는 것은, 기녀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남성들의 유흥의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종래의 기녀제도 넓게는 신분 제도가 사회 운영에 있어서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6세기 초엽 연산군 시대의 기녀제도의 확대 양상은 주목을 끈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당시보다 기녀제도가 누에 띄게 확대 개편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기녀제도의 확대 개편과 병행하여, 기녀의 입장에서 기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다룬 문헌 자료가 많이 나타났어야 할 것이라 추정할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기녀는 양반이나 왕 중심의 입장에서 수동적으로 다루어졌던 것이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6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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