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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災實分等과 還穀의 환수책
DC Field | Value |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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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 | 梁晋碩 | - |
dc.date.accessioned | 2010-05-04T04:48:41Z | - |
dc.date.available | 2010-05-04T04:48:41Z | - |
dc.date.issued | 2002-12 | - |
dc.identifier.citation | 奎章閣, Vol.25, pp. 121-149 | - |
dc.identifier.issn | 1975-6283 | - |
dc.identifier.uri | https://hdl.handle.net/10371/63887 | - |
dc.description.abstract | 17세기 후반은 양난으로 말미암은 피해를 복구해가는 시기였으며, 자연적인 재난과 질병이 많은 시기였다. 따라서 국가는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그 중 하나가 飢民들에 대한 진휼책을 시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휼곡이 부족한 상황에서 진휼책들은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국가는 진휼곡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찾았고, 환곡을 확보함으로써 이를 해결하려 하였다. 이는 환곡의 분급 및 환수 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환곡을 제대로 거두어들이지 못하여 그로 인한 문제점들이 발생하였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제해의 정도와 수확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재해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눈 災實分等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환곡의 환수율과 밀접하게 연계되었다. 환곡을 제때에 거두어들이지 못하였을 때, 그 정도를 조절하기 위해 재실분등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특히 17세기 후반은 환곡운영에서 미수곡을 환수하는 것이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 미수곡이 커질수록 농민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수확정도와 농민들의 부담을 고려하여 환곡의 환수율을 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dc.language.iso | ko | - |
dc.publisher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 |
dc.title | 17세기 후반 災實分等과 還穀의 환수책 | - |
dc.type | SNU Journal | - |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 | 양진석 | - |
dc.citation.journaltitle | 奎章閣 | - |
dc.citation.endpage | 149 | - |
dc.citation.pages | 121-149 | - |
dc.citation.startpage | 121 | - |
dc.citation.volume | 2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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