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肅宗ㆍ英祖代 御眞圖寫와 奉安處所 확대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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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지영

Issue Date
2004-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27, pp. 55-76
Abstract
1688년(숙종 11) 肅宗은 全州 慶基殿의 太祖影幀을 서울로 가져와 새로 모사한 후 南別殿에 봉안하였다. 영정을 실은 배가 한강을 건넜을 때 숙종은 직접 나루에까지 나가 영정을 맞이했고 함께 궁궐로 들어왔다. 1695년(숙종 21) 숙종은 태조의 영정을 모사했던 화원에 게 자신의 御容을 그리게 한 후 이를 江都에 봉안하였고 그 봉안처에 長寧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1713년에는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尊號를 올리고 稱慶• 陳賀하는 여러 의식 과 함께 다시 御容을 그린 후 江都와 궐 내의 眞殿 및 五臺山 濬錄閣 에 봉안하였다. 兩亂 이후 국왕의 초상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숙종대부터이다. 世傳되던 선왕의 어 진을 보수하는 정도에 그쳤던 前例에 비추어볼 때 숙종이 태조의 영정을 그려 都城內 의 진 전에 봉안하고 자기의 御容까지 그려 봉안처소를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숙종에 이 어 英祖도 선원전에 봉안되었던 숙종의 어진에 흠이 있다면서 永禧殿을 5실로 확장한 후 새로 그린 숙종의 어전을 봉안하였다. 英祖는 10년에 한차례씩 어진 그리는 것을 정례화하 여 13본에 이르는 어진을 남겼다. 그리고 이 어진들을 慶熙宮의 泰寧殿, 江都악 萬寧殿,生母의 사당인 毓祥宮 및 자신의 私家인 彰義宮에 봉안했다. 또한 숙종대에서 영조대를 거쳐 정조 초반에 이르기까지 國家典禮에서 眞殿 관련 의식은 크게 불어났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64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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