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奎章閣의 지식기반사회적 의의와 동아시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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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정옥자
Issue Date
2006-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29, pp. 93-120
Abstract
조선왕조는 기본적으로 지식기반사회였다. 조선왕조가 국교로 채택한 유교의 근본정신

은 평화공존을 위한 文治主義였다. 문치란 글로서 다스린다는 것이니 글이란 지식을 의미하고 그것은 책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책을 통하여 습득한 지식이 국가사회운영의 기초였고 ‘박학다식하다’거나 ‘유식하다’는 말이 인물평에서 최고의 칭찬이었다.

조선시대 국왕들은 하루 세 번씩(朝講, 晝講, 夕講) 신하들의 강의에 참석하여 공부해

야만 하였다. 박학다식한 신하들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도 그 자신 유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조선국왕들의 운명이었다.

조선왕조의 관료체계에서 가장 각광받던 직책을 淸職이라 하였는데 청직은 처음부터 끝

까지 글로 벼슬사는 홍문관과 예문관의 兩館에서 일하던 文官翰을 말한다. 양관의 대제학을 속칭 文衡이라 하였는데 글을 저울에 달아 가늠하는 직책으로 청직의 꽃이었다. 문형은당대 제일의 문장가들이 담당하여 文風을 주도하였다.

조선왕조에서 치성했던 명문의식은 문형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다. 권력을 행사하는 三政丞 六判書를 얼마나 배출하였느냐 하는 기준보다는 문형을 얼마나 배출하였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문형을 많이 배출한 연안 이씨와 광산 김씨가 대표적 가문으로‘연리광김(延李光金)’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나 명문의 대명사가 되었을 정도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6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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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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