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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국 서적의 수입과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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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김문식-
dc.date.accessioned2010-05-06T04:48:39Z-
dc.date.available2010-05-06T04:48:39Z-
dc.date.issued2006-12-
dc.identifier.citation奎章閣, Vol.29, pp. 121-140-
dc.identifier.issn1975-628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64253-
dc.description.abstract1567년(명종 22)에 명나라 사신 許國과 魏時亮이 조선을 방문했다. 奇大升은 遠接使

從事官이란 자격으로 이들을 만났는데, 조선의 학문적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본국은 箕子가 와서 封해지면서부터 九疇를 가르치고 八條로 정치를 하여 仁賢의 교화가 저

절로 신명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공자.맹자의 心學을 터득하고 기자의 疇數에 밝은 士이면

서 세상에 이름난 사람이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중략)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5백여 년 동안 世道가 높아지고 文風이 점차 열리어, 중국에 유

학하는 士가 많아지고 經籍이 널리 퍼져 중화의 문명을 수용하여 오랑캐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난세를 치세로 바꾸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서의 은택과 예의의 풍속이 점차로 기자 구주의 옛 풍

속을 회복했으니 중국으로부터문헌의 나라, 군자의 나라로 칭찬을 받는 것은 그럴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라와 고려의 ..들은 학문의 중점이 언어와 문장에 있었습니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程朱의 서적이 점차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므로, 禹倬과 鄭夢周 같은 사람

들이 성리의 학설을 참고하고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국조(조선)에 와서는 태종 文皇帝가『四書五經大全』ㆍ『性理大全』등의 서적을 頒賜했고, 본국에서는 과거를 설치하여 士를 뽑을 때에도

사서와 삼경에 능통한 자가 선발되도록 했습니다. 이 때문에 士들이 외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공자ㆍ맹자ㆍ정자ㆍ주자의 말입니다.

기대승은 기자 이후 조선은 문명국이 되었고, 고려 말기에 程朱의 서적이 전래되어 성리학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명나라 成祖가『사서오경대전』과『성리대전』을 하사하자 조선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과거시험을 치러 관리를 선발했고, 모든 학자들이 공자ㆍ맹자ㆍ정자ㆍ주자의 학설을 학습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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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dc.title조선시대 중국 서적의 수입과 간행-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奎章閣-
dc.citation.endpage140-
dc.citation.pages121-140-
dc.citation.startpage121-
dc.citation.volume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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